김문수의 증언, 나의 좌익 체험과 전향: 자유 민주주의 열망과 수호

Q.T/사랑침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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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 운동,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을까요?

 

김문수 전 지사님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좌익 운동을 시작하셨다고 해요. 1969년에 박정희 대통령의 삼선 개헌에 반대하는 시위에 참여하셨죠. 이때 시위 참여로 무기정학을 받기도 하셨대요. 정말 대단하죠? 다행히 학교에서 용서해 줘서 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좌익 운동은 더욱 깊어졌어요.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들어갔는데, 이곳이 해방 직후부터 좌익 성향이 강했다고 해요. 당시 경제학 수업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배웠는데, 이게 아주 매력적이었다고 합니다. 좌익 이론이 왜 매력적인지는 나중에 더 이야기해 드릴게요.

대학 첫 수업 시간에 선배 심재원 의원의 연설을 듣고 큰 감동을 받으셨대요. "여러분 대학에 출세하라고 왔습니까? 민중들이 얼마나 고통받는지 안 보입니까?"라는 말에 빠져들어 바로 좌익 서클에 가입하셨다고 해요. 이 서클에서 반박정희, 반재벌, 반일 민족주의를 공부하며 좌익 사상에 빠져들게 되셨죠.

판자촌과 광주 대단지, 현실을 마주하다

 

좌익 서클 가입 후 선배들은 김문수 전 지사님을 청계천 판자촌으로 데려갔어요. 당시 판자촌은 전기와 물도 없이 호롱불을 켜고 살아야 할 만큼 열악했죠. 한 방에서 열 명 가까이 생활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어릴 때 비슷한 판잣집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던 김문수 전 지사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대요.

겉으로는 좋아 보였던 서울에 이런 곳이 있다는 사실에 실망하고, 출세하기보다는 힘든 사람들과 함께 살아야겠다고 결심하셨어요. 선배들은 대학 졸업장이 필요 없다고 격려했습니다.

청계천 판자촌이 철거되면서 사람들은 광주 대단지로 강제 이주당했어요. 광주 대단지는 산을 깎아 만든 텐트촌이었는데, 큰 텐트에는 여덟 가구, 작은 텐트에도 두세 가구 이상이 살았죠. 버스나 일자리도 없어 사람들이 살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못 살겠다며 폭동이 일어났는데, 이게 먹고사는 문제로 일어난 최초의 폭동이라고 김문수 전 지사님은 기억하셨어요. 이런 경험들을 통해 재벌 때문에 가난한 사람이 생긴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쿠바 혁명기 같은 책을 읽으며 계급 적개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노동 현장에서 겪은 좌익 운동의 현실

 

현실의 빈곤을 목격한 후, 김문수 전 지사님은 노동 운동에 투신하셨어요. 전태일 열사의 분신 사건 이후, 청계천 피복 노조 활동에 참여하며 노동자들을 돕기 시작했죠. 직접 재단사가 되기 위해 공장에 들어가 일하셨습니다.

여름 방학 때는 구로공단에 위장 취업하기도 하셨대요. 그때 김근태 선배를 만났고, 퇴근 후 계급 착취와 혁명에 대해 배웠죠. 공장에서 일하며 근로 기준법을 가르쳐주기도 했는데, 당시 근로 기준법이 한자로 되어 있어 읽기 어려웠기 때문이에요. 법률 한자를 가르치며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하지만 공장 생활은 쉽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졸업생들도 하는 일을 대학까지 나온 분이 잘하지 못해 매일 욕을 먹고 해고당했다고 합니다. 한 달 일하고 받은 돈이 만 원밖에 안 될 정도로 힘들었죠.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노동 운동을 계속하며 노동자들과 함께하셨어요.

민청학련 사건과 감옥 생활, 그리고 전향의 시작

 

좌익 운동에 매진하던 김문수 전 지사님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구속되셨어요. 당시 유신 헌법에 반대하고 정부 전복을 모의했다는 혐의였죠. 이 사건에는 지학순 주교나 목사님, 교수님 등 많은 분들이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구속된 후 감옥 생활을 시작하게 되셨죠.

감옥 안에서는 많은 운동권 학생들을 만났다고 해요. 특히 주사파 성향의 후배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생각과 사정을 알게 되었죠. 광주 교도소에서는 남파 간첩이나 자생적 간첩 등 다양한 좌익 사범들을 만나 토론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경험들은 공산주의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옥에서 놀라운 소식을 접하셨는데, 바로 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연설문이었어요. 고르바초프가 공산당 통치의 문제점을 인정하고 개혁과 개방을 이야기하는 내용을 읽고 충격을 받으셨죠. 이는 공산주의 이론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마르크스 공산당 선언을 성경처럼 믿었던 분에게는 큰 변화였죠.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 해체, 공산주의의 몰락을 목격하다

 

감옥에서 출소한 후, 김문수 전 지사님은 세계사의 큰 변화를 목격하게 됩니다. 바로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였죠. 사람들이 장벽을 부수고 넘어가는 모습을 보며 큰 감동을 받으셨다고 해요. 특히 독일이 전쟁 없이 평화롭게 통일되는 과정을 지켜보며 자유민주주의의 힘을 느끼셨습니다.

독일 통일 방식은 김문수 전 지사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어요. 동독 사람들이 스스로 공산당 정권을 축출하고 서독과의 통일을 결정했죠. 통일 후 독일의 국기는 서독의 깃발 그대로였고 국가 명칭과 헌법, 화폐도 서독 것을 따랐어요. 동독의 행정 체계와 지방 자치는 모두 서독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를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공산주의 체제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셨대요.

이어서 1991년에는 소련이 해체되면서 15개 독립 국가로 나뉘었습니다. 70년간 인류의 3분의 1이 실험했던 공산주의가 완전히 무너진 것이었죠. 철의 장막이 걷히면서 공산주의의 허상이 드러났습니다. 계획 경제는 실패했고, 토지나 주택 국유화, 직장 배급 등은 사람들의 자유와 인권을 박탈했으며 결국 나라를 망하게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통해 공산주의는 인간 본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하고 전향을 결심하게 되셨다고 해요.

왜 좌익 이론은 지식인들에게 매력적일까요?

 

김문수 전 지사님은 왜 좌익 이론이 특히 지식인들에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는지에 대해 설명하셨어요. 좌익 이론은 역사, 철학, 경제, 국가, 문화, 교육, 조직, 혁명 등 모든 분야에 대한 체계적인 이론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죠.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노동 가치론이나 계획 경제론은 수학적인 이해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좌익 이론을 공부하면 마치 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은 것 같은 지적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해요. 성경이나 다른 학문은 소용없고 좌익 이론만이 완벽한 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이론이 매우 완결적이고 체계적이며 결론이 선명해서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완벽한 이론에 빠져들면 혁명적 사명감을 느끼고 모든 것을 바치게 된대요. 마치 교회에 모든 것을 바치는 것처럼요.

마르크스나 엥겔스, 레닌 같은 주요 혁명가들이 대부분 중산층 이상의 지식인 출신이었다는 사실도 흥미롭죠. 이들은 사회 모순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김문수 전 지사님은 우리나라에도 강남 좌파들이 있는데, 이들은 부동산으로 돈을 벌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돈 벌면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고 비판하셨어요. 서울대 경제학과, 정치학과, 사회학과 등에서 좌익 운동권이 집중적으로 나왔고, 교수들도 좌익 성향이 강해 학생들에게 계속 가르치면서 좌익 사상이 퍼졌다고 설명하셨습니다.

 

김일성주의, 왜 한국 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었을까요?

 

김문수 전 지사님은 김일성주의가 마르크스-레닌주의보다 훨씬 쉽고 종교와 비슷해서 한국 사회에 쉽게 퍼질 수 있었다고 분석하셨어요. 김일성주의는 수령님을 하나님처럼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죠. 어려운 영어, 수학 같은 학문적 지식이 많이 필요 없다는 점에서 성경과 비슷하다고도 하셨습니다.

그냥 수령님 말씀만 잘 들으면 집도 생기고 땅도 생기고 학교도 보내준다고 하니, 말만 잘 들으면 된다는 논리가 사람들에게 쉽게 먹혔다는 거예요. 김일성주의는 대학뿐만 아니라 전문대학까지 빠르게 퍼져나갔습니다.

책이 없어도 저녁에 단파 라디오만 들으면 김일성주의 강좌를 들을 수 있었죠. 수령론에 대해 설명하고, 수령님 말씀은 무조건 믿고 따라야 한다고 세뇌시켰어요. 학생들은 밤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북한 방송을 듣고, 다음 날 전국 대학에 내용을 퍼트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김문수 전 지사님은 이런 과정을 통해 김일성주의가 우리나라 청와대까지 깊숙이 침투했다고 주장하셨어요.

 

한국 사회에 좌파 선동이 잘 먹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김문수 전 지사님은 우리나라에서 좌파 선동이 잘 통하는 몇 가지 이유를 설명하셨어요. 첫째, 북한이 모든 국력을 적화통일에 쏟아붓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엄청난 공을 들여 우리나라를 공산화시키려 노력하고 있어요. 반면 우리는 개인주의가 강해서 가족의 행복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죠.

둘째,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가 매우 불리하다는 점입니다. 공산 종주국인 소련, 거대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고 바로 옆에는 북한이 있죠. 옛날부터 가난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독립운동을 피해 소련이나 만주로 갔고, 그곳에서 공산당과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좌익 운동의 뿌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죠.

셋째, 우리나라의 주자학에 기반한 강한 평등사상입니다. 전 세계 어디를 봐도 우리나라만큼 평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없다고 하셨어요. 다른 나라에서는 동네마다 차이가 있고 계층 간 구분이 있지만, 우리는 옆집보다 못 살거나 과외를 시키지 못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는 거죠. 이러한 평등사상이 좌파 선동에 취약하게 만든다고 분석하셨습니다.

 

좌파 선동,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요?

 

김문수 전 지사님은 좌파 선동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하셨어요. 가장 먼저 '우리 민족끼리'라는 구호를 극복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구호가 북한의 적화통일 전략에 이용되어 반미 운동과 연결된다는 거죠. 우리 군인들이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는데, 뒤에 있는 미군을 몰아내자는 주장이 결국 공산화로 이어진다고 경고하셨습니다.

'우리 민족끼리' 구호 때문에 미국 소고기 반대, 미군 철수 주장 등이 나온다고 하셨어요. 만약 한미 동맹이 없었다면 우리나라는 중국 정도 수준으로 살거나 심하면 북한처럼 될 수도 있다고 하셨죠. 미국만큼 잘살거나 그 이상을 원한다면 한미 동맹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지금 학교 교과서나 노래에서 '우리 민족끼리'를 계속 강조하는 것이 좌익 청산이 안 되는 큰 이유라고 지적하셨어요.

둘째, 평등사상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노동자와 자본가 모두 똑같다며 자본가를 타도하고 계급투쟁, 파업을 주장하는 것이 회사를 망하게 만들고 결국 노동자 자신에게 피해를 준다는 거죠. 한번 나쁜 습관이 들면 고치기 어렵듯, 투쟁으로 이득을 본 경험은 노동자들을 더욱 투쟁하게 만든다고 하셨습니다.

셋째, 인간 본성이 이기적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인간은 하나님이나 예수님처럼 공동선을 위해 희생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거죠. 주교 같은 성직자도 성추행을 저지를 수 있듯,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이기적이며 욕심 덩어리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매일 기도하고 예배를 보더라도 본성을 다스리기 어렵다고 하셨어요. 공산주의 이론은 인간의 혁명적 열정만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하지만, 이는 인간 본성과 맞지 않는다는 거죠.

 

자유민주주의, 왜 승리할 수밖에 없을까요?

 

마지막으로 김문수 전 지사님은 공산주의가 역사적으로 모두 실패했으며 인간 본성과도 맞지 않기 때문에 결국 자유민주주의가 승리할 수밖에 없다고 결론지으셨어요. 인류의 3분의 1이 70년 넘게 공산주의를 실험했지만 모두 망했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하죠. 아무리 우수한 혁명가들이 노력했어도 인간 본성과 맞지 않는 이론은 성공할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북한과 중국도 결국 망할 것이라고 전망하셨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뽑은 정부가 망할 사람들을 살려주려고 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하셨죠. 독일의 통일 사례처럼 우리나라 역시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가야 한다고 다시 한번 강조하셨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인간의 자유로운 본성을 인정하고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기 때문에 결국 승리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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