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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27 제자광성교회 금요철야예배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박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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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부르짖으라(90) - 기도하는 사람만 변한다, 누가복음 9장 28~36절

 

 

 

기도로 변화되는 삶, 정말 가능할까요? 

세상의 흐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을 믿음의 눈으로 해석하는 것이 중요해요. 지진 같은 자연재해나 동성애 같은 사회 현상을 세상 사람들은 그냥 일어난 일로 보지만,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이해해요. 성경이라는 안경을 끼고 세상을 제대로 살아야 하죠. 그래야 주님 앞에 바로 설 수 있어요. 세상의 시각과 믿음의 시각은 완전히 달라요.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세상을 분별해야 해요. 잘못된 흐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서죠. 믿음의 눈으로 보면 세상의 문제들을 영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요. 성경적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하는 훈련이 필요하답니다. 이렇게 세상을 보면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분명해져요. 믿음은 우리 삶의 나침반과 같아요. 

 

 

나쁜 교육, 왜 그렇게 심각한 문제일까요? 

 

이번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중도 교육감이 물러나고 보수 진영 후보가 단일화된 소식이 있었죠. 저는 보수, 진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하지만, 교과서에 나쁜 내용이 많고 학생 인권 조례 때문에 아이들이 망가졌다는 주장이 있어요. 나쁜 교육은 정말 심각한 문제예요.

건물은 잘못 지으면 부수고 다시 지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잘못 키우면 돌이킬 수가 없어요. 이게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몰라요. 많은 사람들의 기도와 노력 덕분에 극적으로 후보 단일화가 이루어졌다고 해요. 저는 이 후보가 잘 당선되었으면 좋겠어요. 교육은 우리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랍니다. 

 

 

동성애 문제, 교단에서는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이번에 우리 교단에서 중요한 결정이 통과되었어요. 총회장이나 목사 후보생, 신학교 교수 등을 임용할 때 동성애, 동성결혼, 젠더주의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 교단에서 이런 결정이 시작된 것이 중요해요. 다른 교단들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답니다. 

신학대학교 임용 규정에 이런 내용을 넣으려는 노력도 있지만, 교육부에서는 인권 문제를 제기하며 반대하는 어려움도 있어요. 하지만 학교에서부터 잘못된 사상을 가진 학생들이 목사가 되는 것을 막아야 해요. 교단의 이런 결정은 우리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일이에요. 동성애와 관련된 이런 흐름들을 꺾는 계기가 될 것으로 믿고 있어요. 이 결정은 다른 교단에도 큰 영향을 미칠 거예요. 

 

 

왜 200만 성도가 서울역에 모여야 할까요?

 

10월 27일 오후 2시부터 서울역 일대에서 연합 예배와 큰 기도회가 열릴 예정이에요. 무려 200만 명이 모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는 것은 일부 기독교인만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예요. 몰라서 그렇지, 사실 이 땅의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반대하고 있답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도 상식적으로 동성 결혼 합법화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악법을 막고 기독교인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모여요. 자신과 자녀들을 위해 모이는 절박한 마음으로요. 이 연합 집회가 동성애 쓰나미를 막아내는 전선이 되기를 소망해요. 한국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똘똘 뭉쳐 지켜내고 있어요. 이것은 우리가 잘못한 것도 많지만 포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죠. 

 

 

인권, 어디까지 가고 있는 걸까요? 

 

지금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학부모들이 들고일어나기 시작했어요. 세상이 도대체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죠. 자녀가 성전환 수술을 한다고 하는데 부모가 간섭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어요. 이게 정말 인권 문제일까요? 인권의 개념이 너무 확장되고 있어요.

스페인에서는 원숭이의 인권을 챙겨주자는 주장이 통과되기까지 했어요. 원숭이도 사람과 비슷한 인격체라는 정의를 내렸죠. 이제는 자기가 아파치 헬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나타났어요. 두 손에 날개를 달고 자신은 남자도 여자도 아닌 아파치 헬기라고 말하고 다녀요. 이게 정신병이 아니라 인권이라며 건드리지 못하는 현실이에요. 나중에는 자기가 개라며 물고 다니는 사람도 나올지 몰라요. 이런 극단적인 주장까지 인권으로 포용해야 하는 걸까요?. 

 

 

기적은 병이 낫는 것일까요, 아니면 변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은 보통 병이 낫거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는 것을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그것도 기적이죠. 하지만 병이 낫고도 죄를 짓고 비참하게 죽은 사람도 있어요. 이건 은혜를 헛되이 받은 결과예요. 성경은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답니다. 

안진뱅이가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집배원이 되었지만, 나중에 예수 믿어도 헛것이라고 말하고 다닌 사례도 있어요. 이런 것을 보면 진짜 기적은 무엇일까요?. 저는 병이 낫는 것보다 사람이 변하는 것이 더 어렵고 진정한 기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주변에서 병 나은 사람은 봤어도, 진짜 변한 사람은 보기 어렵죠. 변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는 사람들도 많아요. 

 

 

변하지 않는 사람, 왜 그럴까요? 

 

목사가 되거나 직분을 받는다고 변하는 것이 아니에요. 봉사를 열심히 하는 것도 원래 가지고 있는 기질일 수 있어요. 봉사도 믿음으로 해야 진짜 봉사죠. 우리가 진짜 변했는지 아닌지는 고난이나 비방, 인정받지 못할 때 드러나요. 그때도 묵묵히 주님 바라보며 가는 것이 진짜 변화의 증거랍니다. 

목회를 하다가 힘들어서 그만둔 사람은 그동안의 목회가 거짓일 수 있어요. 그 사람은 장사를 해도 그렇게 열심히 할 사람일 뿐이죠. 우리는 나타나는 능력이나 역사 때문에 속는 경우가 많아요. 기도를

하면 능력이 나타나니까 자기가 변했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변해서 나타나는 능력이 아니라 그저 기술이 늘어난 것일 수도 있답니다. 

 

 

예수님과 상관없이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도 있을까요? 

 

마가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길거리에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는 사람을 봤어요. 이 사람들은 예수님과 아무 상관이 없었는데 말이죠.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함부로 사용하지 말라고 말렸지만, 예수님은 말리지 말라고 하셨어요. 

주님과 상관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이용해 능력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거예요.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오해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제자가 아니었죠. 가롯 유다도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고 능력을 행했지만, 결국 천국에 가지 못했어요. 예수님을 따라나섰다고 다 제자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그들은 변하지 않았고, 누가 더 크냐며 싸우기도 했죠. 고난이 오면 예수를 버릴 사람들은 아직 진짜 믿음이 없는 거랍니다. 

 

 

진정한 변화는 언제 일어날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언제 변했을까요? 십자가를 통과하고 성령을 받은 후에야 변했어요. 그때부터는 핍박과 고난이 와도 물러서지 않고 예수님을 떠나지 않았죠. 사역하면서 서로 부딪치거나 싸우지도 않는 놀라운 변화를 보여주었어요. 이것은 그들이 거듭났기 때문이에요. 더 이상 땅의 사람이 아니라 하늘의 사람이 된 거죠. 

부자가 되거나 병이 낫는 것이 진정한 복이 아니에요. 어떤 사람에게는 병이나 가난조차도 복이 될 수 있어요. 왜냐하면 그것 때문에 겸손해지고 주님을 만나 기도하며 주님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진정한 복은 환경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영적으로 변화되는 것이랍니다.

 

 

기도하면 정말 변할 수 있을까요? 

 

기도할 때 사람의 용모가 변화되고 옷에서 광채가 났다는 성경 말씀이 있어요. 이 구절을 보고 기도해야 변하고, 기도해야 진짜 사람이 된다는 제목을 잡았어요. 예수님도 변화산에서 기도하실 때 완전히 변하셨어요. 인간 예수에서 하나님의 모습으로 바뀌신 거죠. 

결심이나 환경의 변화는 잠깐만 우리를 바꾸어요. 며칠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거나 환경에 적응해 버리죠. 고생하거나 망신당해도 변하지 않아요. 술을 끊겠다고 머리를 깎고도 결국 다시 술을 마시고 문제를 일으킨 사람의 사례처럼 말이죠. 기도만이 사람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답니다. 

 

 

세상에는 사람을 바꿀 힘이 없다고요? 

 

세상에는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 있는 힘과 능력이 없어요. 오직 주님만이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믿어요. 죽은 딸의 신발을 팔아 술을 사 먹었던 막장 인생의 부흥사 멜티 아도 목사의 사례를 보세요. 그는 주님을 만나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어요.

도박 중독자가 손을 잘라도 발가락으로 화투를 치는 것처럼, 인간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아요. 집 평수가 늘어나도 감사하지 않고 더 넓은 집을 원하는 모습. 이런 것을 보면 환경이나 노력으로는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음을 알 수 있죠. 오직 주님의 능력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어요. 

 

 

기도해도 안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기도해도 안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는 실제로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는 척하기 때문이에요. 바리새인들은 기도를 많이 했지만 변하지 않았어요. 금식도 일주일에 두 번씩 했지만요. 기도원이나 유튜브를 쫓아다니며 아는 것은 많지만 변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죠. 

예배당에 온다고 다 예배하는 것이 아니고, 기도의 무리에 섞여 있다고 다 기도하는 것이 아니에요. 구경하거나 호기심으로 기도하는 자세로는 변하지 않아요. 진짜 기도는 주변을 의식하지 않고 주님 앞에 나아가는 거예요. 겉모습만으로는 알 수 없는 내면의 상태가 중요하답니다. 

 

 

진짜 기도는 어떻게 드려야 할까요? 

 

진짜 기도를 하는데 왜 응답이 없을까요? 죄가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고 비밀을 가르쳐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어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해야 한답니다. 기도해도 안 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두 번째 이유는 변해가는 과정이 더디기 때문이에요. 나무가 자라는 것이나 아이가 크는 것이 눈에 바로 보이지 않아도 계속 자라고 있는 것처럼요. 

우리가 기도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바꿔가고 계신답니다. 단지 우리 눈에 안 보일 뿐이죠. 진정한 기도는 말씀 안에서 드려야 해요. 말씀을 통해 내 안에 죄나 문제가 있음을 깨달을 때 그 기도가 능력이 있어요. 말씀을 깨달아야 치료와 구원의 길이 열리고, 내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해야 답이 보인답니다.

 

 

말씀과 기도는 어떤 관계일까요? 

 

말씀과 기도는 분리될 수 없어요. 말씀은 나침반 같고, 기도는 엔진과 같죠. 말씀 없는 기도는 거칠고, 기도 없는 말씀은 무기력해요. 말씀이 없으면 무엇이 문제인지 분별이 안 되고 에너지 낭비를 하게 된답니다. 

말씀 안에서 기도해야 제대로 된 길로 갈 수 있어요. 말씀을 붙들고 기도할 때, 말씀이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답을 보여주시죠. 말씀과 기도를 양손에 짊어지고 함께 갈 때 인생이 변화되고 복을 받게 될 거예요. 뜬구름 잡듯이 예수 믿지 말고, 말씀의 중심과 기도의 동력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답니다. 

 

 

회개가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진정한 변화를 위해서는 회개가 반드시 먼저 있어야 해요. 말씀을 들으면 이해가 되고 깨달아져요.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깨달을 때,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죠. 말씀은 우리를 조명해서 죄를 드러내게 한답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교만하고 잘못 살았음을 깨달을 때 기도가 능력이 있어요.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가 결실을 맺는다는 성경 말씀처럼요. 말씀을 듣고 깨달을 때 변화가 시작된답니다. 자신이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해요. 바울이 끊임없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고백하며 겸손하게 사역할 수 있었던 것은 말씀 안에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이에요. 

 

 

말씀으로 수술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말씀으로 수술받는 것은 자신의 교만하고 오만한 생각들, 죄와 자아를 깨뜨리고 깎아내는 것을 의미해요. 그래야 살 길이 열린답니다. 진정한 기도를 위해 회개가 먼저인데, 회개는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깨닫는 것에서 시작돼요. 그리고 말씀을 통해 드러난 죄와 아픔을 견디고 뉘우치는 의지를 가지고 행동해야 하죠. 

말씀이 자신을 조명하여 죄를 드러내고 끊어버리게 만드는 경험은 실제적이에요. 변하지 않는 사람은 틀림없이 말씀과 기도가 없기 때문이에요. 변한 사람은 말씀 안에서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단언할 수 있죠. 멸망의 길로 가지 않으려면 말씀과 기도로 돌아와야 한답니다. 

 

 

말씀과 기도로 어떻게 인도받을 수 있을까요? 

 

인생의 길을 갈 때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기도의 동력을 사용해야 해요. 바쁘더라도 한 구절이라도 읽으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답을 찾아야 하죠. 성경 속에 답이 있으며, 하나님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답니다. 말씀은 우리 길의 빛이고 인도이며, 기도는 그 길을 가는 데 필요한 에너지이자 동력이에요. 

말씀과 기도를 양손에 짊어지고 함께 갈 때 반드시 인생이 변화되고 복을 받게 될 거예요. 뜬구름 잡듯이 예수 믿지 말고, 말씀의 중심과 기도의 동력을 가지고 나아가야 한답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인생을 살 수 있어요. 

 

 

거듭나지 못하면 천국에 갈 수 없을까요? 

 

기도를 안 하면 똑똑해지고 세상적인 복을 받을 수는 있지만, 속은 주님만 아세요. 변했는지 안 변했는지도 주님만 아시죠. 성경은 분명히 거듭나야 천국 간다고 말씀하고 있어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결코 갈 수 없다고요. 

집사, 권사, 장로, 목사 같은 직분으로는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에요. 거짓 선지자들도 선지자 노릇을 했지만 천국에 가지 못했죠. 선지자 노릇, 믿는 척, 거듭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가 되어야 해요. 주님만이 우리가 거듭났는지 아신답니다. 거듭남은 천국에 가기 위한 필수 조건이에요. 

 

 

주님이 나를 모른다고 하시면 어떡하죠?

 

마지막에 주님이 오셔서 우리를 모른다고 하시면 정말 끔찍한 일이에요. 나는 주님을 아는데 주님은 나를 모른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아찔하죠. 주님이 모른다는 것은 천국에 이름이 없다는 의미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시는 분인데, 모른다는 것은 우리와 상관없다는 뜻이죠. 

내 멋대로 믿지 말고 말씀대로 믿어야 해요. 캐나다에서 돈 많고 강퍅했던 노인이 목사님 설교를 듣고 변화된 사례가 있어요. 그는 말씀대로라면 자신이 지옥 갈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변화가 시작되었죠. 말씀을 통해 자신의 상태를 깨달을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된답니다. 

기도로 변화되어 천국 시민이 되기를 소망해요! 

 

기도할 때 우리는 사람이 되고 정상이 돼요. 기도할 때 새 사람이 되고 겸손해지고 힘이 생기며, 궁극적으로 천국에 간답니다. 진정으로 거듭나고 변화되어 천국 시민이 되기를 소망해요.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의 상태를 말씀 앞에 비춰보고 새로워져야 해요. 

결심이나 힘, 능력, 결단으로는 거룩해지고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없어요. 오직 말씀과 기도로만 가능하죠. 나라와 민족, 가정, 교회, 우리 후대를 위해 기도해야 해요. 우리 자녀들이 말씀으로

돌아오고 성령 받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는 변화되고 천국을 향해 나아갈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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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22 제자광성교회 주일예배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박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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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여, 영원하라(36) 이중결혼? 한 교회 - 요한계시록 2장 12~17절

 

 

 

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 삶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예측하기 어렵죠? 이런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까요?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세상의 기준은 왜 자꾸 흔들릴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변화무쌍해요. 어제는 맞다고 했던 것이 오늘은 틀리다고 하기도 하죠. 마치 법정에서 재판장이 판결을 내릴 때, 개인적인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법전이라는 기준을 따라야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학교에서 시험을 볼 때도 마찬가지죠. 학생의 글씨체나 선생님 마음에 드는 학생이 쓴 답이 정답이 아니라, 교과서에 있는 답이 진짜 정답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세상의 기준은 이렇게 명확하지 않고 자꾸만 흔들리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정상 혈압 기준만 봐도 그래요. 예전에는 180도 정상이라고 말했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보통 120에 80 정도를 이야기하죠. 그런데 이게 또 낮으면 좋다고 하는데, 너무 낮으면 저혈압이라고 안 좋다고 하기도 해요. 도대체 어디까지가 기준이고, 누가 이 기준을 정한 걸까요? 세상에는 이런 기준들이 너무나도 많고 계속 흔들리고 있어요. 

진짜 기준은 어디에 있을까요? 

이렇게 세상의 기준이 흔들릴 때, 우리는 무엇을 따라가야 할까요? 성경은 우리에게 단호하게 이야기해요. 이 세상을 따라가지 마라고요. 로마서 12장 2절 말씀에 이렇게 쓰여 있어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세상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르침, 이념들은 정답이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것들을 자꾸 쫓아가지 말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변화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잘 분별해서 지켜 살아가라고 하죠.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바로 말씀이에요. 심지어 내 가족이라도 말씀에서 벗어나면 따라가면 다 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어요. 

지식이 없으면 왜 망할까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기준이 말씀이라면, 말씀을 아는 것은 정말 중요하겠죠? 호세아 4장 6절 말씀에는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라고 쓰여 있어요. 백성이 망하는 이유가

게을러서도 아니고, 때를 잘못 만나서도 아니고, 처세술이 부족해서도 아니래요. 지식을 갖지 못해서 망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말하는 지식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에요. 우리가 말씀을 버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겠다고 하세요. 결국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말씀을 믿는 것이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에요. 우리의 기준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이어야만 해요. 

 

 

교회 안에도 가짜가 있을까요? 

 

슬프게도 지금 세상은 말씀의 기준을 흔들려는 사람들이 자꾸 나타나고 있어요. 성경을 정면으로 반대하거나 왜곡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해요. 어떤 사람은 자신이 동성애 크리스천이라고 주장하기도 해요. 하지만 성경적으로 보면, 동성애를 하는 진짜 크리스천은 있을 수 없어요. 

이런 사람들은 성경을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판단하지 말라고 하죠. 성령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성경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며, 성경을 우상화한다고 말하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시당하고 짓밟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어요. 사실 교회 밖에 있는 적보다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적이 더 위험할 수 있어요.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성경을 들먹이며 교회를 공격하는 것이 훨씬 더 치명적이죠. 점점 변질된 목사들도 많아지고 있다고 해요. 성경을 등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가짜 선지자들이 늘어나고 있는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거예요. 

 

 

버가모 교회는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버가모 교회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어요. 버가모라는 이름 자체에 이중 결혼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해요. 이건 마치 완벽한 남편 같지만 다른 아내가 있는 것처럼, 하나님도 섬기고 세상도 섬기는 이중적인 모습을 비유하는 거예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랬어요. 하나님을 떠난 적은 없지만, 동시에 세상을 섬겼어요.

버가모 교회에는 크게 두 가지 잘못된 가르침이 들어와 있었어요. 첫째는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에요. 발람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직접 저주하지 못하니까, 스스로 망하게 만드는 방법을 알려줬어요. 바로 우상에게 바쳐진 음식을 먹게 하고 음행 하게 만들어서 하나님이 진노하게 만드는 것이었죠. 이건 우리를 영적, 육적으로 죄짓게 만들어서 스스로 망하게 하는 사탄의 계략이에요.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미혹의 영이 들어와 성도들을 더럽히고 하나님이 징계하시도록 만들고 있어요. 

둘째는 니골라당의 교훈이에요. 니골라당은 영혼과 육체를 분리했어요. 육체로 짓는 죄는 우리의 신앙이나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거짓된 주장을 하기 시작했죠. 이건 오늘날 구원파 교리와 비슷해요. 구원받았으니 무슨 행동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요. 이런 가르침 때문에 버가모 교회 안에는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자신만만한 가짜 그리스도인들이 나타났어요. 오늘날 우리 안에도 '이 정도 죄는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며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서도 스스로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여기는 모습이 있을 수 있어요. 말씀대로 사는 사람을 오히려 율법주의자라고 정죄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죠. 

 

 

말씀을 아는 것과 지키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는 왜 성경 공부를 할까요? 성경을 알기 위해서 공부하는 거죠. 그럼 성경을 왜 알아야 할까요? 바로 지키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성경을 잘 모르거나, 알아도 말씀은 말씀이고 나는 나라고 생각하며 지키지 않아요. 동성애 크리스천처럼, 말씀에 반대되는 유혹이 와도 말씀을 믿고 지키면 물리칠 수 있는데 말이죠. 

티베트 불교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경전이 모셔진 신성한 곳을 돌면 경전을 한 번 읽은 것으로 쳐준다고 믿는대요. 몇 바퀴 돌고 나면 경전을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며 자부심을 느낀다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경전을 읽은 건 아니에요. 우리가 그들을 비웃을 수도 있지만, 우리 모습도 비슷할 수 있어요. 

교회를 오래 다녔는데도 성경책만 들고 다니고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요. 말씀을 모르고 지키지 않으니, 제자 훈련이나 셀 모임은 피하고 주일날 교회에 와서 앉아만 있다 가는 거죠. 성경책만 들고 왔다 갔다 하는 성도는 티베트 불교 사람들이 성지를 돌고 가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말씀을 알아야 지킬 수 있어요. 성경 공부를 했으면 변화가 일어나야 하죠. 변하려고 노력해서 변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 안에 자리 잡으면 변할 수밖에 없어요.

 

 

말씀대로 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 때 우리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요. 이시종 선생의 이야기가 좋은 예시예요. 큰 부자였던 그는 예수님을 믿은 후 성경을 끼고 살았어요. 성경을 읽고 가르침대로 행동하기 시작했죠. 삭개오 이야기를 읽고는 곡식을 빌려간 사람들의 빚을 탕감해 주기도 했어요. 예수님 말씀대로 아내를 자매님이라고 부르기도 했고요. 

두 번이나 바람이 난 아내를 용서하고 맞아주고, 도망간 아내에게 돌아오라고 편지를 쓰기도 했어요. 사람들은 그분을 호세아를 닮은 성자라고 불렀어요. 그는 원래 착해서 그렇게 산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이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순종한 거예요. 나중에는 그의 삶을 보고 아내도 변해서 성자가 되었다고 해요. 이시종 선생은 말씀대로 순종하며 하나님과 가까워져서 자기 죽는 날을 미리 알기도 했어요. 

우리가 말씀을 한 구절만 마음에 새겨도 우리 인생은 달라질 수 있어요. 세상이 어수선하고 뭐가 맞는지 헷갈릴 때, 우리는 말씀으로 돌아가야 해요. 성경을 읽고 기도하면 분명히 답을 찾을 수 있어요. 어떤 결정을 해야 할 때도 말씀 안에서 답을 찾고 순종하면, 우리 인생은 안전하고 보람될 거예요. 하나님께서 명확하게 알려주시니까요.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5장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면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예수님 안에 거한다는 말이 처음에는 추상적으로 느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바로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신 사건과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는 것을 똑같이 보셨다는 뜻이에요. 그러므로 말씀이 곧 예수님이에요.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은 돈이나 지위가 아니라 말씀이에요. 이 귀한 말씀을 손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사용하지 않으면 성령님께서 얼마나 답답하시겠어요?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말씀대로 가야 해요. 아무리 반대하는 사람이 있어도 말씀에 기록된 대로 가면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실 거예요.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은 무엇일까요? 

 

요한계시록에서 이기는 자는 구원받고 거듭나서 천국에 갈 사람을 뜻해요. 교회 안에 이기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두 가지 놀라운 약속을 주셨어요. 첫째는 감추인 만나를 주시겠다는 약속이에요. 감추인 만나는 눈 뜬 자에게만 주시는 특별한 선물처럼, 말씀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순종하는 이기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거예요. 말씀이 바로 만나라고 할 수 있죠. 

둘째는 흰 돌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에요. 흰 돌은 당시 고대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람에게 주던 것이래요. 억울하게 죄인으로 몰렸다가 무죄 판결을 받았을 때, 이 흰 돌을 보여주면 모든 것이 해결되었죠. 예수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흰 돌을 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죄인이었지만 예수님의 공로로 의롭게 된다는 뜻이에요. 마지막 심판 날, 예수님께서 주시는 이 흰 돌이 있어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약속하신 거예요.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며 세상을 이기는 자에게 이 귀한 흰 돌을 주시는 거죠. 

 

 

흔들리지 않는 삶,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말씀대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알아요. 하지만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우리가 승리하고 이기는 자가 되기 위해서는 말씀을 부지런히 알고 실천해야 해요. 말씀을 부지런히 읽고, 그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서 우리 삶 속에서 실천할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 신실한 성도가 될 수 있어요. 

세상의 온갖 소리들이 들려오고 우리를 흔들 때, 우리는 말씀으로 들어가야 해요.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명령하시는지, 어떤 결정과 판단을 해야 하는지를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죠. 우리 모두 말씀을 무기 삼아 이기는 자가 되어서, 감추인 만나와 흰 돌이라는 복을 받아 누리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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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09/ 20 제자광성교회 금요철야예배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박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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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해야 변한다: 진짜 신앙은 무엇일까요? 

1. 한국 교회가 왜 200만 명을 모으려고 할까요? 

 

한국 교회가 200만 명이나 모여서 기도회와 집회를 계획하고 있어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이려고 할까요? 바로 악법을 막기 위해서랍니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교회를 대놓고 짓밟는다고 해요. 그 이유 중 하나는 한국 교회가 연합이 잘 안 되고, 성도들의 수가 투표로 잘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죠. 불교나 가톨릭 신자들처럼 똘똘 뭉치지 못하고, 교회 안에 정치색이 다양해서 정치인들이 기독교인들을 하나로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교회가 힘을 보여주려면 똘똘 뭉쳐야 한다고 해요. 200만 명이나 모이면 그 숫자를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거예요. 언론에서 교통 체증이나 혼잡을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우리가 하나로 뭉쳤다는 사실이죠. 이번 집회를 통해 한국 교회가 다시 한번 힘을 얻고, 이 나라의 나쁜 흐름을 바꾸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고 있어요. 

 

 

2. 종교의 영에 사로잡히면 어떤 모습일까요?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도 생명력 없이 형식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가 있어요. 주일 낮 예배를 본 교회에서 안 드리고 다른 장소에 가는 것에 대해 꺼리는 마음이 있을 수 있다고 해요. 코로나 때 예배당에 못 오고 온라인 예배를 봤던 것을 생각하면, 사실 11시에 현장에 가도 되는 건데,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못 한다는 거죠. 이런 모습이 바로 종교의 영에 사로잡힌 것이라고 말해요. 

우리는 형식적인 모습에 묶여 있을 것이 아니라, 생명을 찾아야 해요. 교회에 다니는 이유가 단지 습관 때문이거나,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라면 그것은 진정한 신앙이 아닐 수 있어요. 겉모습은 신앙이 좋은 것처럼 보여도, 내면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태일 수 있죠. 이런 종교적인 형식에 묶여 있으면 진짜 하나님을 만나기 어렵다고 해요.

 

 

3. 진짜 기적은 병이 낫는 것일까요, 아니면 변하는 것일까요?

 

기적이라고 하면 보통 병이 낫거나, 홍해가 갈라지는 것처럼 눈앞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일을 생각해요. 성경에 나오는 나사로가 죽었다가 살아난 일은 정말 엄청난 기적이죠. 나병 환자 열 명이 병이 나은 이야기도 있고요. 하지만 병이 낫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있다고 성경은 말해요. 

열 명의 나병 환자 중에서 병이 낫고도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한 명뿐이었어요. 예수님은 그 한 명에게만 "오늘 네가 구원받았다"라고 말씀하셨죠. 나머지 아홉 명은 병은 나았지만 구원은 받지 못한 거예요. 병 낫는 것이 중요할까요, 아니면 구원받는 것이 중요할까요? 부자 되는 것과 구원받는 것을 비교하면 당연히 구원받는 것이 더 중요하죠. 병은 나아도 결국 죽게 되지만, 구원받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으니까요. 

진짜 기적은 병이 낫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변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요. 죄 많고 강퍅했던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서 구원받고 변화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기적이자 축복이라고 말하죠. 예배를 드리고 찬송을 해도 마음이 변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기적이 아니에요. 기도원을 오래 다녀도 집에 가면 평안이 없고 시끄러운 사람들도 있다고 하죠. 겉모습만 신앙생활 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변한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기술만 늘어난 것일 수 있어요. 

 

 

4. 교회 오래 다니면 저절로 변할까요? 

 

교회를 오래 다닌다고 해서 저절로 변하는 건 아니에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기도원에 30년, 40년 다녀도 집에 가면 여전히 바람 잘 날 없는 사람들도 있대요. 이런 사람들은 은혜는 엄청 받는 것 같은데, 실제 삶에서 큰 변화가 없죠. 새벽기도를 열심히 나오고, 성경을 많이 읽고, 술 담배를 끊는다고 해서 변했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런 것들은 종교적인 기술이 늘어난 것일 수 있대요. 

교회 생활의 기술은 늘어나지만, 진짜 믿음으로 변한 건 아니라는 거죠. 예를 들어, 담배는 끊었는데 여전히 성질은 그대로인 경우가 많아요. 새벽기도에 나와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변한 것이 아니라고 해요. 진짜 변하는 것은 고난과 시련 속에서 예수님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과정, 즉 광야 생활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말해요. 고생한다고 변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주님을 만나야 변할 수 있어요. 

 

 

5. 제자들은 예수님을 왜 따라다녔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엄청난 결단을 했어요. 그물과 배, 그리고 아버지까지 버렸다고 성경은 말해요. 겉으로 보기에는 대단한 희생처럼 보이죠. 하지만 제자들은 처음부터 변했던 것은 아니라고 해요.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서로 시기하고 질투했어요. 

심지어 예수님의 나라가 임할 때 높은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죠. 이것은 예수님을 이용하려는 마음이었다고 볼 수 있어요.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닌 진짜 이유는 처음에는 자기들의 야망 때문이었을 수도 있어요. 그 증거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후, 제자들이 두려워서 도망가고 옛날처럼 다시 고기를 잡으러 갔다는 사실이에요. 

하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에야 제자들은 진정으로 변했어요. 인간 예수님이 아닌, 부활하신 신이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의 인생이 변화되고 거듭난 것이죠. 그때부터 제자들은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따르고 복음을 전하며 순교의 길을 걸어갔어요. 이것이 바로 진짜 변화이고, 기적이라고 말해요. 

 

 

6. 사람이 변하는 것이 왜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만큼 어려울까요?

 

옛말에 사람이 변하는 것이 "해가 서쪽에서 뜰 일이다"라고 했어요. 해가 서쪽에서 뜨는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만큼 사람이 변하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에요. 우리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는 등의 사소한 변화에도 "해가 서쪽에서 떴네!"라고 말하는 것처럼, 사람의 본성이 변하는 것은 정말 기적과 같다고 느끼는 거죠. 

광야에서 40년 동안 고생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세요. 그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는데도 그들은 변하지 않고 강퍅한 마음 그대로였어요. 하나님이 뱀을 보내서 물게 하시고, 질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하고 불순종했죠. 고생한다고, 환경이 바뀐다고, 결심한다고 사람이 변하는 것이 아니에요. 나이가 들어 경험이 쌓여 처세술이 늘어나는 것을 변화라고 착각하기도 하죠. 

 

 

7.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변할 수 있을까요? 해가 서쪽에서 뜨는 것만큼 어려운 변화를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요? 답은 바로 기도에 있어요. 기도해야 사람이 변하고, 기도해야 사람 된다고 말해요. 어떤 사람이 획기적으로 변했다면, 그것은 기도했기 때문이라고 하죠. 기도 없이는 변할 수 없어요. 

진정한 변화는 예수님을 만나고 기도할 때 일어난다고 해요. 또한, 우리는 거듭나야 해요. 거듭난 사람은 겉으로 성령의 열매가 맺히면서 자연스럽게 변하게 돼요. 변화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천국 갈 사람이기 때문에 변하는 것이죠. 

변화하기 위해서는 깊은 회개가 필요해요. 내 안에 있는 이기적이고 더러운 자아를 깨뜨리고 예수님의 피로 거듭나야 하죠. 과거의 종교적인 업적이나 의를 내려놓고 어린아이처럼 주님께 나아가야 해요.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작은 잘못을 보기 전에 자신의 잘못을 먼저 돌아보고 회개해야 하는 부족한 존재들이에요. 

기도만이 우리가 살 길이고, 기도해야 내가 변하고 교회도 변하고 세상도 변한다고 믿어요. 죽기 살기로 기도해서 변화되고 거듭나야 해요. 종교적인 기술만 늘리는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나서 변화되는 우리가 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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