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1 주일 3부예배

Q.T/수원송원교회
728x90

 

성장하는 교회, 성숙한 신앙

사무엘서 강해 -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

 

성령의 사람은 기쁨이 넘친다. 감사하면 시원함으로 이겨낼 수 있는 것이다.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다윗이 성숙해졌구나라고 느낀다. 성장하는 교회가 중요하다. 그 안에 있는 것도 중요하다. 성숙한 신앙, 성장하는 교회라고 해도 괜찮다. 성장하는 교회에는 반드시 성숙한 신앙을 가진 성도가 필요하다. 따라서 먼저 성숙한 신앙을 가진 성도가 필요한 것이다. 정말 성장하는 교회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모두가 성숙한 신앙을 가진 성도가 되자. 다윗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 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연단을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시련을 내리시고 있다. 다윗은 계속 도망자의 삶과 도피의 생활을 한다. 사울 왕이 죽기까지 다윗의 도피생활은 계속된다. 크게 3기로 나눌 수 있다. 9장에서 보면 자기 집에서 도망하면서 헤렛 숲으로 도피한다. 2기는 23장에서 26장 말씀이다. 광야에서 여러 군데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신학자들은 3년 정도 얘기한다. 3기는 27장부터 사울이 죽는 순간까지이다. 블레셋까지 4년여의 시간이다. 도피 시간이 얼마나 긴 것인지 볼 수 있다. 헤렛 수풀 - 그일라 - 십 광야 수풀 - 아라바의 마온 광야 - 엔게디 요새- 십 광야 앞 하길라 산으로의 과정이다. 만약 우리도 이런 도망자의 삶을 산다면 매우 힘들 것이다. 1기 때는 사울의 칼날 때문에 피하기에 급급하여 하나님에게 온전하게 맡기지 못하는 삶을 산다. 그러나 사울을 죽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대한 신앙이 2기에서 회복된다. 다윗이 이전보다도 성숙한 자세로 서 있게 된다. 우리 안에 대한 귀한 도전이 된다. 오늘은 3가지 다윗의 성숙함에 대해 나눠보자. 첫째로 다윗의 열정이다. 그일라는 유대 땅의 경계선에 있다. 그일라는 요새화 되어 있는 성읍이다. 우리나라로 보면 최전방과 마찬가지다. 그일라 사람들이 약탈도 일삼았다. 이 나라의 왕은 사울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돌아보지도 않고 외면한다. 그는 다윗에게만 집중하고 있다. 다윗은 그일라 사람을 도와야 하는지를 하나님에게 묻는다. 하나님은 블레셋을 치고 그일라 사람들을 구원하라고 하신다. 그가 나가게 되면 사울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공격해올지도 모를 일이다. 한편으로는 그일라 사람들을 무시하고 싶을 것이다. 다윗의 마음을 아는 무리들은 다윗을 가로막는다. 사무엘상 23장 3절을 보자. 그일라 사람들에게 가는 것을 막는 것이다. 블레셋을 쳤다가 큰일이 일 수도 있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실은 합리적인 것이다. 다윗은 다시 하나님에게 묻는다. 여호와께서는 그일라로 내려가라고 얘기하신다. 하나님이 사지로 모는 것이다. 대단한 모험인 것이다. 그럼에도 구원하라고 명하신다. 다윗은 순종할 것이다. 그러나 왜 그일라로 내려가서 구원하라고 하시는가? 첫째는 과거를 생각하게 함이다. 골리앗을 쓰러트려 구원한 것을 말이다. 다윗은 기름 부 음 받은 자이다. 하나님이 기름 부어 세웠고 사명을 다해야 함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명을 다하는 것이다. 사명자는 자신을 부르시는 하나님을 회피하거나 부정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도 사명자인 것이다. 집사, 권사, 장로, 목사도 마찬가지다. 그 사명을 받아들이고 감당해야 한다. 왕이 직무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 사람에게 집착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 사람은 사명자가 아닌 것이다. 다윗이 사명자의 길을 향하여 결단하여 묻고 명령에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다윗에게 깨닫게 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살아남을 수 있음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블레셋과 사울 사이에 끼인 다윗이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면 능수능란하게 둘 사이에서 빠져나갈 수 있게 하시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헤렛 숲 속에서 가만히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모험적인 안전을 선택해야 한다. 이 세상은 우리를 향해 달려오고 있고 거친 바람과 파도로 덮칠지라도 그것을 헤쳐가며 하나님의 안전을 경험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순종을 원하시는 것이다. 나를 인도하시고 함께하시며 품에 안으셔서 날아오르시는 것을 경험하자. 그 분과 함께 날아오를 때 모험적인 안전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소명과 비전이 확실하다면 날아오르자. 다윗에게 주신 성숙한 자세는 더 적극적으로 남을 돕고 스릴 있는 모험 있는 안전을 경험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그릴라를 구하러 가는 모습이다. 사무엘상 23장 5절을 보자. 이전과 다른 성숙한 신앙과 열정을 회복시키시면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다. 내 안의 하나님이 주신 열정과 뜨거움이 잠자고 있다면 사명을 다시 감당하겠다고 고백하고 생명을 구하는 일에 달려갈 수 있길 바란다. 높이 비상할 때 다윗의 열정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달려 나가는 가을이 되길 바란다. 또 하나는 다윗의 기도이다. 우리가 인생 살면서 연륜이 많으신 분들은 더 많은 경험이 있을 것이고 결정을 해야 할 것도 많이 있다. 결과를 알 수는 없지만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질문하는 기도를 해야 한다. 저희 집에서도 둘째가 계속 질문한다. 아이들이 말하면 놀랍기도 하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한 성도와 전화 통화하였다. 불의한 일을 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다. 많은 얘기를 들은 후 결론적으로 "잘하고 계십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우리도 하나님께 이런 일을 겪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묻는 것이다. 바로 이렇게 하라고 대답하시지는 않지만 잠시 뒤에 내 상황이 바뀌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내면의 확신을 기도 가운데 부어주시는 것이다. 다윗을 가로막으면서 다윗은 기도하게 된다. 마음이 흔들릴 때 기도하는 다윗이다. 경우에 수마다 장점과 단점이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가? 질문해야 한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인지 물어야 한다. 확신이 생기면 위험하더라도 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설득하면서 그 일을 진행해야 한다. 다윗이 그일라 사람들을 도왔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신 일이 일어나게 된다. 7절을 보자. 사울이 죽일 계획으로 달려든다. 다윗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다윗은 머리를 굴리지 않는다. 세 번째도 하나님 앞에 묻는다. 11절과 12절을 보자. 하나님께 "그일라 사람들이 저를 넘기겠나이까?" 묻는다. 사울이 내려올지도 묻는다. 하나님은 그들이 넘길 것이며 사울도 내려온다고 대답하신다. 두 가지 엿볼 수 있는 것이 있다. 다윗과 함께하는 공동체가 존재함에도 사울이 내려온다고 하는 것을 듣는 순간 힘들게 생각되는 것이다. 밥 맛이 뚝 떨어지는 것이다. 다윗은 두려움에 입에서 나오는 데로 질문한다. 하나님은 논리적으로 알려주신다. 결국 그들이 배신할 것도 말씀하신다. 다윗이 왜 이런 질문을 하였을까? 그일라는 정착할 만한 성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도망해야 한다고 말하신다. 그일라 사람들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다윗을 잘 대접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의 친절함을 믿지 않았다. 다윗은 인간적인 친절함도 의지하지 않고 묻는 것이다. 하나님과 가까운 영적 삶을 회복한 것이다. 기도의 재미를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서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상황을 바꾸시고 확신을 주시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것을 경험할 수 있길 바란다. 시편 25장 14절을 보자. 여호와의 친밀함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도 요한복음 11장 9절을 향하여 말씀하신다. 어떤 대적이 올무를 설치해도 피할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8장 12절을 보자. 우리의 길이 암흑일지라도 낮이면 밝아서 피해 갈 수 있는 것이지만 지금은 어둠이 가득하다. 주님께서 빛을 비추시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분에 대답을 들으면서 가는 것이 친밀함이다. 우리의 길을 인도하심을 기억하자. 하나님 앞에 묻고 또 묻는 그 즐거움을 경험하자. 이전에 여호와의 친밀함과 경외함을 느끼는 신앙으로 올라서자. 주님과 깊이 동행하실 때 인도하심을 믿자. 내 기도의 삶을 어떻게 드릴 지 결단하자. 마지막으로 다윗의 온유함이다. 사무엘상 23장 13절을 보자. 더 많은 사람이 둘러싸고 있다. 600명 정도는 남자만 계산한 것이다. 전부 3000명 정도 되는 인원이다. 이들을 데리고 갈 수 있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다윗이 욕심을 낸다면 남자 600명으로도 싸울 수도 있는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일라 성이 전쟁터가 되는 것이며 곤경에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에 뜻을 받들어 도망하는 것이다. 꼭 피를 흘려 이기는 것이 다가 아닌 것이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정죄하여 자신의 의를 세우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동족끼리는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전쟁을 피하는 지혜를 주시는 것이다. 민족끼리 싸우라고 기름 부으신 것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정처 없이 떠나는 것이다. 이것이 다윗의 온유함이다. 하나님 앞에서 온유한 사람은 힘이 있는 사람이다. 성격 좋은 사람도 맞지만 힘이 있음에도 조절하는 사람이다. 권투선수가 사각 링에서 자신의 기술로 이겨내는 선수라고 힘자랑한다면 온유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목표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며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걸지 않는다. 다윗에게 그일라 사람과 사울은 적이 아닌 것이다. 동족인 것이다. 우리 공동체에도 마찬가지다. 교회에서도 증오하는 사람이 대적이 아닌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결코 사람과 싸우지 않는다. 싸움의 대적은 에베소서 6장 12절에 있다. 마귀이다. 귀신의 종류가 나온다.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를 지켜내기 위해 싸우는 것이다. 만일 사람이 있다면 돌아가야 하며 무조건 후퇴해야 한다. 마귀가 있으면 전진하고 사람이 있으면 후퇴하는 것이다. 이것이 온유함인 것이다. 이전에 다윗은 교만하였지만 2기에서는 납작 엎드렸다. 하나님은 다시 빛으로 인도하셨다. 2012년도에 제자훈련을 같이 했던 사람의 얘기를 하고 싶다. 이 분이 팀장으로 발령하였고 승진하였다. 7년 만에 벌어졌다. 도서관에서 근무하였다. 계속 신앙 때문에 핍박을 받았다. 핍박하던 그분 때문에 마음 아파하였다. 훈련이 끝난 후에도 상담을 계속하였다. 기도하였다. 함께 훈련받았던 집사님들도 카톡 방 안에서 위로하였다. 그런데 그 핍박하던 상사가 병가를 내었고 다시 복직하였을 때는 팀원으로 복직하게 되었다. 반전이었다. 그래서 똑같이 괴롭혀주겠다고 말을 하였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서 기도와 말씀으로 나가게 되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분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고 선언하였다. 베드로전서 5장 6절로 마무리하자.

728x90

'Q.T > 수원송원교회'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4/ 11/ 03 수원송원교회 주일 2부예배  (0) 2024.11.11
2024/ 10/ 27 수원송원교회 주일2부예배  (0) 2024.10.28
2019/07/28 주일예배  (0) 2019.09.06
2019/07/26 금요예배  (0) 2019.08.12
2019/07/21 주일예배  (0) 2019.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