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12/30 한신교회 주일예배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故 이중표
728x90

 

신부여 행복하라

요한계시록 21장 1절

 

이 세계를 보는 역사적 사고관이다. 불교는 윤회적인 사고관이며 원형적이다. 유물론적 사고관은 정반합의 원리이다. 기독교의 사고관은 창조적인 사고관이어서 시작과 끝이 있다. 심판이 있는 것이다. 종말이 반드시 있는 것이다. 사람이 나올 때가 있으며 흥할 때가 있고 망할 때가 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살펴보니 사도들이 보았던 종말의 사고관이 다르다. 베드로는 이 세상이 끝날 때 완전히 불타버리며 천년이 하루 같으니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힘쓰라고 말한다. 사도바울은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소망하는 자들 같이 슬퍼하지 말고 소망 중에 부활을 기다리라고 하였다. 사도 요한은 사랑의 은혜로 보는 것이다. 신부가 신랑을 맞이하는 그런 날을 기다리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이다. 이전 세상이 아니고 새로운 세상인 것이다. 거룩한 새 예루살렘이 하늘로부터 내려온다고 하였다. 신랑이 신부를 위하여 단장한 것 같다는 것이다. 새로운 하나님의 성전인 신부의 교회인 것이다. 베드로는 종말을 두려워했다면 바울은 부활의 소망이라고 하며 사도 요한은 사랑의 심정으로 맞이하는 사랑의 묘사로 표현한다. 천국은 이 땅의 세계가 아니라 철저히 사랑의 세계인 것이다. 우리도 한 해를 보내며 이런 생각을 갖는다. 평가를 하고 결산을 한다. 성공 지향적인 사람들은 출세와 돈, 사업 확장에 관심을 갖는다. 인격 지향에 사람들은 성숙과 배움, 인격의 성결을 지향한다. 소수의 사람이 인격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더 소수의 사람들은 인생의 행복에 초점을 맞춘다. 거의 소수이다. 산 다는 것을 행복에 맞추는 사람들은 소수인 것이다. 헌금 얘기는 하지 않겠다. 그저 결산에 대해 말하겠다. 그리스도인은 인격적으로 평가해 보아햐 한다.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주님의 제자에 대한 것이다. 예수님의 인격을 얼마나 본받느냐를 보아야 한다. 둘째로 사도는 일하는 사람인데 얼마나 복음에 힘썼는지 평가하는 것이다. 주님을 따를 때 이것을 알고 행하라고 보여주시는 것이다. 땅끝까지 내 일을 하게 될 것이라 하였다. 세 번째는 천국에서 맞이하는 것인데 신부를 맞이하는 것이다. 제자가 될 때는 주님을 스승이라 한다. 사도라 할 때는 주님이라 부르며 자신이 종이 된다. 주님을 사랑할 때는 주님을 당신이라고 한다. 모두의 주님이기 때문에 당신이라고 부르면 안 된다. 일체 이것으로 부르면 안 된다. 단 둘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주님과 깊은 일체의 관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위대한 성자와 신부, 수녀들은 수도원에서 간절히 불렀을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눈물이 나는 것이다. 저는 성도님들이 주님을 닮는다면 영광스러운 제자가 되고 사도에 충성스러운 종으로 업적을 남기면 창조적 존재로서 승리자로 상급을 받는다. 그런데 신부의 단계는 인격이 성숙했는지와 충성을 묻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천국을 향하는 신부의 모습인 것이다. 목회에 3단계이다. 높은 질서에 이른 교회는 훈련한다. 어떤 교회는 교인들을 몰아세운다. 교인들을 훈련시킨다. 저는 눈물을 쏟고 주님의 행복한 신부 되는 교회를 추구한다. 압구정동에 지성적으로 유명한 설교자가 있어서 모이기도 하지만 성공 얘기로 힘쓰는 교회도 있다. 그저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섬기는 것이다. 미친 듯이 성공하려 들기 때문에 이것은 상관 안 한다. 인격적으로 아무리 가르쳐도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이다. 학력이 없어도 인물이 없어도 재물이 없어도 사랑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떤 사람도 주님을 만족시킬 수 없다. 우리에 헌신에도 한계가 있다. 주님 한분 만으로 만족할 수 있다면 주님이 얼마나 좋아하시겠는가? 주님과 나도 만족할 수 있는 게 있는데 서로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 못생긴 부인이 있어도 잘 사는 사람이 있으며 잘 생긴 부인을 만나도 못 사는 사람이 있다. 주님이 질문하신다. "너 나를 닮았냐? 너 나를 위해 얼마나 충성했느냐?"라고 물으신다. "주님 제가 주님을 좋아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라고 대답하자. 이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질문이면서 천국에서도 질문하실 것이다. 모든 성도에게 한마디 하실 질문이 있다면 "그대가 나를 사랑하는가?"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의 일반적 비밀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짝사랑이 되어 버렸다. 긍휼과 자비를 베푸시는데 혼자 짝사랑하고 계신다. 하나님이 뒤쫓아 가신다. 인간은 이것을 모르고 있다. 독생자를 못 박으시기까지 하셨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도 짝사랑이다. 자녀가 부모처럼 사랑할 수 있는가? 서로 사랑해야 가치 있는 것이다. "엄마 없이는 못 살아~"라고 한 적도 있을 것이다. 잠시 시장에 가는 것도 못 버티고 울어댄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사랑했는데 입으로만 고백하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그래서 주님은 천국에서도 외로워하신다. 천국은 예수님 닮아가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하는 것이다. 영생은 생명적 원리로만 말하는 게 아니라 영원히 오래오래 사랑하는 것을 말한다. 영생이라는 말은 영원히 산다는 말과 동시에 함께 사랑한다는 것이다. 미워하는 것은 영생이 아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이 영적 비밀이다. 제자에 단계에서 사도에 단계로 주님의 신부에 단계로 사랑에 관계에서 생활할 수 있어야 한다. 이 관계가 일대일의 관계이다. 이것이 한 몸의 관계이다. 주님은 머리시고 우리는 몸인 것이다. 이것은 생명의 원리이다. 몸은 머리로서 생명을 유지한다. 주님과 우리는 따로 있는 관계가 아니다. 내가 있어야 한다. 몸을 이루어 한 몸이 되는 것이다. 몸이 살기 위해 숨이 들어와야 산다. 신경이 통해야 내가 산다. 그렇지 않으면 식물인간이 되는 것이다. "주님 주님은 저의 생명이십니다. 주님을 통해 내가 삽니다."라고 해야 한다. 이것이 고백이다. 길에서나 가정에서나 고백해야 한다. 한 집사님이 방에서나 길거리에서나 고백한다. 수녀에 모습 같았다. 저는 오늘 성도들과 함께 그런 관계에 서길 바란다. 20대는 꿈을 그리며 살고 30대는 환멸을 느끼며 40대는 체념해 버린다고 한다. 결국 인생을 산 다는 것이 매력이 필요하고 돈도 필요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똑같이 된다. 결국 산다는 것이 사랑하는 마음뿐이다. 성탄이 되어 가족에게 카드를 썼다. 세월이 흘러서 산다는 것을 체감한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만이 남는 것이다. 그것만이 새로운 것이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얘기하신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향해 내 마음을 여는 것이다. 온 세상이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것이다. 하늘과 땅은 분리할 수 없다. 이와 같이 머리와 몸이 갈라지면 둘 다 죽는 것이다. 주님이 없이 우리가 없고 우리가 없이 주님이 없는 것이다. 이것이 천국이다. 주님이 나의 생명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카타콤이라는 동굴에서 기독교 핍박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였을 때 한 청년이 한 여자를 사랑하여서 그 애인을 찾아 노크하였다. "누구요?" "당신을 사랑하는 나요~" 거기서 둘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숨을 거두는 것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하는 입장에서 이 고백이 우리의 것이 되길 바란다. 제가 신학교에 다니던 시절 인물이 훤한 여학생이 있었다. 찻집에 앉아있는데 "이 선생 같은 분과 살면 든든할 거요~"라고 하였다. 세월이 흘러 졸업을 하고 그녀와 헤어졌는데 신학교 아내가 되어 나갔다. 고생하다가 사모 수기를 쓴 것을 보았다. 남편이라는 사람이 사랑에 비 한 방울 주지 못하였지만 예수님을 통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는 지금도 제 아내의 생일과 결혼기념일도 모른다. 이 땅의 사는 어느 남편이 아내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될 수 있는가? 하늘의 단비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이 되길 바란다. 우리가 맞이할 신랑이 누구인가? 사랑이 미친 듯이 솟아도 3년이면 설렘이 끝난다고 한다. 눈이 화끈해도 3년이면 그게 그거이다. 미친 듯이 사랑하는 분이 우리 주님이다. 그런 사랑을 주님께 보낸다면 직장과 가정과 사회가 아름다워질 것이다. 산다는 것이 아름다운 것을 보는 것이며 새로운 세계를 본다는 것은 과거를 끝내고 새로 창조하는 것이며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사랑한다면 완전한 새 하늘과 새 땅을 맞이하는 것이다. 신랑과 신부의 관계 속에 기억할 것은 단장을 해야 함을 잊지 않는 것이다. 여자들은 일생동안 화장하고 단장한다. 화장할 때 얼굴을 물로 씻고 마사지하고 몸에 좋은 옷 입고 단장한다. 이것이 여자의 일생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진실과 거짓이 있다. 화장하면서 옛 님을 그리워하며 화장을 한다. 화장하는 순간에 행복해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 행복하다. 성경은 인간의 단장에 대해 설명한다. 구약에서 율법으로 우리의 얼굴을 보게 한다. 마음에 얼굴을 보게 한다. 죄인 됨을 발견한다. 예수님의 피로 씻겨준다. 날마다 빨간 것을 칠한다. 이것으로도 만족하지 못해 성령의 마사지로 아름답게 된다. 참으로 주님을 사랑한다면 내 몸과 마음을 순결하게 하고 복장을 아름답게 하여 자기 신랑을 맞이하는 것이다. 어떤 여자는 갈 때는 그렇게 하는데 자기 신랑에게 갈 때는 흐지부지하게 한다. 화장도 주님에게 올 때는 가장 아름답게 하고 마음도 깨끗하게 하여야 한다. 향수는 뿌리지 말자. 저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옷을 입히시고 한 말씀하신 게 기억이 난다. "우리 아들 인물 나네~"라고 하셨다. 저는 세월이 흘러 목회하면서 주님이 "인물 나네~ 나 믿고 출세했구나~"라고 들려주신다. 주님께서 몸과 마음, 외모까지 입히셔서 아름답게 만들어 살게 하신다. 우리가 "주님은 나의 행복이십니다."라고 고백할 때 주님도 좋아하신다. 혼자 길을 걸어가며 이것을 고백할 때 최고의 신부가 된다. 그 행복을 얻어 가정에서 행복하게 살자. 이것이 영광이요 은혜인 것이다.

728x90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 > 故 이중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나님의 형상  (0) 2019.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