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30 분당우리교회 주일예배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이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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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신 하나님

이사야 40장 26절

우리들의 찬양 26장 -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이름 높여 드립니다.

우리들의 찬양 32장 -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

찬송가 96장 - 예수님은 누구신가

 

성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살펴보겠다. 사도신경으로 2가지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되어있다. 굉장히 중요하다. 창세기 1장 1절을 보자.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성경에서 무엇을 강조하시는지 알 수 있다. 골로새서 1장 16절을 보자. 그를 위하여 창조된 것이다. 내 존재 자체가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이사야 43장 15절을 보자. 너희의 왕이라고 되어있다. 혼동되지 않는다. 전도서 12장 1절을 보자.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라고 되어있다.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굉장히 중요한 시기가 청년기이다. 인생의 중심인 청년의 때에 삶의 중심이 잡히는 때인 것이다. 베드로전서 4장 19절을 보자. 곤고한 날에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다. 욥을 보자. 창조주 하나님을 인식했기에 혼란하지 않은 것이다. 욥기 23장 10절을 보자.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고백할 때 혼란은 사라진다. 둘째로 성부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라틴어로 번역할 때 조금 더 정확하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훨씬 더 전방위적이다. 전지전능하시다. 아브라함에게 나타낸 선포를 보자. 창세기 17장 1절을 보자. 하나님께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시다."라고 얘기하셨다. 창세기 16장 18절을 보자. 16장에서 아브라함이 범한 실수를 볼 수 있다. 여종 하갈을 통해 아들을 낳았다. 불신앙을 통해 선포를 하시는 것이다. 불신으로 혼란스러움 중에서 하나님은 선포하시는 것이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시다."라고 말이다. 이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약속을 믿는 것이다. 더디 응답되어도 이 사도신경을 통해 선포함으로써 이기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6장 18절을 보자.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시라."라고 되어있다. 선포하여야 하는 것이다.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인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와는 차원이 다르신 하나님이심을 인식하여야 한다. 이사야 40장 26절을 보자.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다고 하였다. 포로로 끌려간 그들이 인식해야 할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전능하시다는 것을 기억하고 되새기는 것이다. 여전히 강한 하나님인 것이다. 차원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강령함으로 나를 회복할 것을 믿는 것이 신앙인 것이다.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차원이 다른 하나님을 선포할 때 놀라운 능력이 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난 바다를 잠재우기를 원할 때 주님이 나타나셨다. 마태복음 14장 28절을 보자. 베드로가 주님께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였다. 무능한 나보다 차원이 다른 주님을 인식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난관에 있는가? 그 순간 우리보다 차원이 다르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베드로의 한계도 보인다. 계속 그 파도를 본 것이다. 마태복음 14장 30절을 보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고 되어있다. 대부분의 성도가 이런 상태이다. 저는 믿음이 있어 개척을 했다. 그런데 어려운 일이 겹치면 두려워 잠을 못 잘 때도 있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베드로의 모범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말했다. 자주 두려울 지라도 부르짖어야 하는 것이다. 마가복음 9장 24절을 보자.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하였다. 정말 모범 답안이다. 매일 되네여야 한다. "주여 저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주소서"라고 되네여야 한다. 삶 가운데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차원이 다른 하나님을 주목하여야 한다. 두 번째 기억해야 할 것은 섭리이다.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십론은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관여는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의 정반대가 섭리이다. 창조하셨으며 내 삶의 완전하게 개입하시는 것이다. 창조하셨으며 우주의 역사에도 마찬가지로 개입하시는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7문은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인가?라고 질문한다. 섭리는 "하나님께서 항상 지니고 계신 전능하신 능력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을 붙드시고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꽃잎과 풀잎,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양식과 음료, 건강과 질병, 번영과 궁핍, 이 모든 것들이 사실상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애로운 손길로부터 오는 것입니다."라는 것이다. 요셉은 섭리를 믿었다. 그러나 배다른 형제들이 시기하였다. 노예로 팔려갔으며 또 성폭행 미수범으로 몰려 감옥도 들어갔다. 창세기 45장 8절을 보자.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다."라고 하였다. 창세기 50장 20절도 보자.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라고 하였다. 보통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한다는 것에만 집중한다. 나만 억울하다. 저것도 이것도 울분에 꽉 찬다. 그러나 섭리로 넘어가는 인생도 있다.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심을 믿는 것이다. 이 복잡한 세상에서 욱여쌈을 당해 당해낼 자가 누구인가? 저처럼 주목받는 사람은 더하다. 올가미를 씌우려 한다. 제명대로 못 살 지경이다. 이것을 어떻게 견디나? 섭리 신앙이다. 다윗을 보자. 사무엘하 16장을 보자. 권력에 눈이 어두운 압살롬이 그것이다. 자식이 쿠데타를 일으켰다. 왕궁을 빠져나가는 다윗이다. 다윗의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다윗이 죽으려는데 저주를 퍼부었으며 돌을 던졌다. 사무엘하 16장 9절을 보자. 부하들이 억장이 무너졌다. 죽이려고 다윗에게 얘기한다. 그러나 다윗은 말린다. 사무엘하 16장 10절을 보자. 맞상대하지 않은 것이다. 섭리 신앙이다. 저 사람의 저주를 통하여 자신에게 경고를 주심으로 해석하였다. 우리는 환경에 함몰되어 억장이 무너짐이 잦다. 대안이 없을까? 극복할 수 없을까? 사도신경을 고백하자. 하나님의 섭리이다. 내 삶의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자. 상처를 주는 사람에게도 선한 뜻이 미칠 것임을 기대하는 것이다. 결국 나중에 시누이가 다윗에게 납작 엎드렸다. 저희 정진영 목사에 대해 말해본다. 오해할 수도 있다.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지 말자. 섭리를 기대하자. 혼미하지만 일찍 자자. 일찍 일어나 마음을 비우고 기도하자. 이 일을 통하여 어떤 것을 기대하시는지 기대하는 것이다. 섭리라는 필터로 점검해보면 하나님 앞에 두려움만이 남는다. 저는 많이 깨닫는다. 한국교회가 갈라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가 너무 상처를 주고받는다. 과연 이찬수 목사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쓰임 받게 만들 수 있는가? 에베소서 2장 14절을 보자. 우리는 절대로 적이 아니다. 골리앗이 따로 있다. 예수님 앞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 쓰임 받기를 기도하자. 제가 반성한 것도 있다. 동성애 문제에서 말이다. 반동성애 단체 사람들에 대해 알았다. 말씀도 많이 알더라. 교회가 할 일이 있음을 알았다. 젊은이들에게 정확한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숙제도 있었다. 젊은이들이 떠나간 책임이 우리에게도 있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면 과업이 너무 많아 생각이 많다. 분당 우리 교회에 각 분야에 전문가가 많다. 시대에 사명을 깨워 지지해주기를 바란다. 할 일을 회피하지 않게 기도해달라. 이번 일 때문에 치유되지 못함도 있다. 가짜 뉴스도 많다. 제가 선거 운동을 했다고도 하더라. 더 이상 이런 것에 연연하고 반응하지도 못한다. 섭리를 믿고 나아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못을 박는다. 저는 17년 목회하는 동안 어떤 후보라도 인사를 시키지 않았다. 저는 저질이 아니다. 이념에 프레임도 그만 했으면 좋겠다. 하나님의 섭리만 믿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심을 믿는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8문을 보자.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앎으로써 얻는 유익은 무엇입니까?"라고 되어있다. 답은 "범사에 감사하게 되고 역경에 처할 때는 인내하게 되며 장차 아무것도 우리를 당신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게 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큰 확신을 갖게 됩니다. 만물이 온전히 그의 것이기에 그의 뜻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움직이거나 움직여지지 않는 것입니다."이다. 이 섭리를 믿는 사도 바울의 고백으로 마무리하려 한다. 빌립보서 1장 12절을 보자.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였다. 교회적으로 개인적으로 억장이 무너지는 일이 많아도 오늘도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순금과 정금같이 나오리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능력의 주님을 찬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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