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7일
우리는 우리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야 하는 용서를 놓고 자주 실수를 범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생각해 봅시다. 저는 하나님께 용서를 구할 때(아주 주의하지 않는 한) 실제로는 제가 그분께 전혀 다른 것을 구하고 있음을 발견합니다. 용서가 아니라 양해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용서와 양해는 전혀 다릅니다. 용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다. 너는 이런 일을 했다. 하지만 네 사과를 받아들인다. 나는 이 일에 대해 네게 앙심을 품지 않을 것이고 우리 사이의 모든 것이 이전과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양해는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어쩔 수 없었다는 것과 본심이 아니었다는 걸 알겠다. 정말 네 잘못이 아니었구나.” 이런 의미에서 용서와 양해는 반대말에 가깝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사람 사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건, 수십 가지의 경우, 용서와 양해가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죄로 보였던 것의 일부가 실제로는 누구의 잘못도 아님이 드러나 양해가 됩니다. 그리고 남은 부분은 용서를 받습니다. 명백한 이유가 있는 경우라면 용서가 필요 없을 것입니다. 행동 전체에 용서가 필요하다면 그 일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라고 하는 일이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해명을 받아 주시기를 구하는 일일 때가 아주 많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 대부분의 행동에는 어느 정도의 핑계, ‘정상 참작을 할 만한 상황’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하나님께(그리고 우리 자신에게) 알리느라 바쁜 나머지 정말 중요한 것을 잊기 쉽습니다. 남은 부분 말입니다. 어떤 행동에서 핑계 댈 수 없는 부분,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감사하게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있는 부분 말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잊어버린다면, 실제로는 우리 자신의 핑계에 스스로 만족하면서 자신이 회개했고 용서받았다고 상상하며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영광의 무게>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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