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만약 예수가 인간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라면 그의 고통과 죽음은 “그에게 지극히 쉬운 일이었을 것이므로” 아무 가치가 없지 않으냐고 불평하는 이들의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런 반발을 배은망덕하고 무례하다며 나무라는 사람도 있겠지요(이런 나무람은 아주 정당한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선뜻 그렇게 못하는 것은 그들이 무언가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 이 말에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의미에서 그들의 주장은 옳습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생각보다 더 옳은 주장일 수도 있습니다. 완전한 순종, 완전한 고난, 완전한 죽음은 예수가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더 쉬운 일이었을 뿐 아니라, 오직 그가 하나님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 삼아 그의 순종과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한 일 같지 않습니까? 선생님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글씨를 써 주는 것은 그가 어른으로서 글씨 쓰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선생님은 아이보다 더 쉽게 글씨를 쓸 수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도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글씨 쓰는 것은 어른에게 쉬운 일’이라는 이유로 선생님의 도움을 거절하고 글씨 쓸 줄 모르는(따라서 ‘불공평한’ 이점을 갖고 있지 않은) 다른 아이에게 배우겠다고 우긴다면, 글씨 배우는 일은 아주 지지부진해지고 말 것입니다.
제가 급류에 빠졌는데, 강둑에 한 발을 딛고 있는 어떤 사람이 저의 목숨을 구해 주기 위해 팔을 뻗었다고 합시다, 그 때 제가 “아니, 이건 불공평해! 당신은 지금 유리한 위치에 있잖아! 강둑에 한 발을 디디고 있으니까”하고 (물에 빠져 숨을 헐떡거리면서) 소리쳐야 마땅하겠습니까? 그가 가진 이점-여러분이 ‘불공평하다’고 말할 수 있는-이야말로 그가 저를 도울 수 있는 유일한 이유입니다. 자기보다 강한 존재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하겠습니까? <순전한 기독교> 2장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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