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함 받은 자를 택함 받은 자녀로
마태복음 22장 1~14절
지난 40년 동안 한국 경제의 성장을 주도하고 한국 교회에 고난 속에서도 강인한 모습으로 앞장섰던 교회가 여의도순복음 교회이다. 감사를 드린다. 오늘 저를 불쌍히 여겨주셔서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길 바란다. 제임스 케네디 목사님이 만든 전도 폭발 프로그램이 있다. 저는 집사람을 보고 알았다. 전도 폭발 프로그램을 받고 오더니 사람이 달라지더라. 전도할 사람이 있으면 뛰어나가고 기쁨이 충만하더라. 굉장히 얼굴에 기쁨이 충만한 것을 보았다. 저희 교회에도 도입했다. 저희 교회에는 수천 명이 전도에 열정을 가지고 뛰고 있다. 사랑의 교회는 공간이 워낙 좁기 때문에 전도한 만큼 받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열정은 살아 있는 것 같다. 그 프로그램에 질문 두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한 가지는 "형제여, 오늘 밤이라도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대답을 못한다. 이번에 미국 무역센터에 911 테러가 일어났다. 여객기 자살사고였다. 그중 인상 깊었던 것은 90층에 사람이 창 밖으로 하얀 수건을 흔들며 살려달라고 하였다. 40분 후 빌딩은 붕괴되었다. 그 사람을 보며 예수를 믿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 순간에 예수님을 붙들었으면 하였다. 우리는 30, 40년 후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들에 꽃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먼지 속에 묻히는 것이다. 역사에 뒤안길로 간다. 남은 것은 구원이다. 하나님이 나를 영접하실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목회하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구원의 확신을 물었을 때 10명 중에 4명이 안 나오더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냐고 진짜 믿습니까? 물으면 대답이 안 나온다. 로마 가톨릭은 선행을 강조하며 교인을 붙든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공로를 세우려 한다. 이런 경우에는 구원의 확신은 불가능하다. 그런 불안을 갖는다. 그러나 성경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잘못된 교리이다. 과연 나를 받아들이실까? 하는 불안을 갖는다. 제자훈련을 하는 자리에서 육군 장성이 있더라. 한 분씩 돌아가며 물었다. "지금이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천국 간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 육군 장성이 화를 냈다. "사회에 나가면 예수 믿는 사람답게 순종도 못하고 제대로 생활도 못하면서 믿냐고 하면 예라고 대답하고, 너무 기분 나쁘다. 모순이 있는 것 같다."라고 얘기하더라. 그다음부터 제자훈련에 나오지 않았다. 요즘은 믿음이 좋아져 있더라. 또 어떤 사람들은 몇 날 몇 시에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다. 저는 모태신앙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언제 중생받았는지 모른다. 성경을 달달 외우고 다녔고 성경 신구약을 통독했지만 언제 구원의 확신을 받았는지 시일을 얘기하라고 하면 한마디도 못한다. 그러면 "그게 무슨 신앙이요, 엉터리요." 사탄 같은 소리를 한다. 구원파 같은 곳이다. 구원의 확신도 위험한 사안도 있지만, 정상적인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한다면 구원의 확신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것이 정상이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을 보자. "너희가 믿음이 있는가 시험하고 확증하고 검증해보라."라고 하신다. 확신이 없으면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물이 새는 항아리이다. 시간이 갈수록 물이 줄어든다. 순복음교회는 대단한 믿음이 있는 것을 알고 있지만 여기에 못질을 더 하자. 마음이 흔들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5가지 이유를 얘기하겠다. 왜 불안이 자주 생기는지 이유를 얘기하겠다. 만약 여기에 한 가지라도 저촉된다면 오늘 이 시간 해결함 받기를 바란다. 첫째는 하나님에 약속의 말씀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다. 성경을 보고 믿는다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신뢰하는 것과는 차이가 생길 수 있다. 예수님은 구원의 확신에 대해 확실하게 얘기하신다. 요한복음 5장 24절을 보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소유했다고 한다. 죄와 죽음에 권세에서 해방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인 자리로 옮겨졌으며 돌아갈 수 없다. 구원받은 사람인 것이다. 그런데 이 말씀을 신뢰하지 않는다. 예를 들겠다. 부목사로 있는 교회에서 미국 가기 전에 사임하게 되었다. 대신 방을 제가 맡았다. 3개월이 걸리더라. 대신 방을 좋아하지 않는다. 길에서 시간낭비를 너무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요한 목회 방법이었다. 그런데 미국 가야 하니 60살이 넘는 분들에게 확신에 대해 물어볼 마음이 생겼다. 신방 다니며 권사님과 집사님께 질문드렸다. 한 30명 정도 물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제가 사역했던 교회는 소문난 교회였다. 제 질문에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는 분은 딱 두 사람이었다. 기가 막혔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을지 모른다. 여자일까? 남자일까? 여자였다. 두 분이었다. 나머지는 불안하다고 얘기하더라. 유명한 권사님인데 인물도 좋았다. 자식도 잘 되었다. 병상에 계시더라. "권사님. 제가 유학 떠나면 만나지 못하잖아요. 그래서 물어봅니다. 만약 비행기가 폭격을 해서 다 죽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확신이 있죠?" 그런데 눈물을 뚝뚝 흘렸다. "겁이 나고 자신이 없어요." 기가 막혔다. 그런데 유학 갔다 와서도 안 돌아가셨다. 하나님이 구원의 확신이 안 생기면 안 데려가시는 것 같다. 또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시고 은퇴하신 분이 계셨다. 똑같이 물었다. 신약을 100번을 보았다고 하더라. 그런데 "목사님이 질문하시는 것에 대답을 하기가 힘드네요."라고 하였다. 기가 막혔다. 성경을 신뢰하지 않고 그냥 읽은 것이다. 또 더 걸작같이 얘기하시는 할아버지도 계셨다. "아니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나요? 하나님이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가고 나가라 하면 나가는 것이지."라고 하였다. 듣고 보니 그럴듯하였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가? 믿기만 하면 하나님이 의인으로 인정하신다. 성경에 너무 많이 나오지만 100% 신뢰를 안 한다. 날마다 흔들거린다. 이런 생활하지 말기를 바란다. 갈대와 같지 않길 바란다. 알파와 오메가 되신 하나님은 말씀하시면 거두는 법이 없으시다. 그분의 말씀은 영원한 법칙이며 흔들리지 않는다.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두 번째는 믿음의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믿음 때문에 고민한다. "믿음이 약해서."라고 얘기한다. 겸손한 말이지만 분별하자. 그러나 그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하는 것이다. 진짜 믿음은 반드시 있는 것이다. 보석이 눈곱만 해도 진짜가 존재하는 것이다. 성경에서는 겨자씨라고 표현하였다. 작아도 진짜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주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것을 믿는 것이며,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내 믿음을 논할 때 강하냐 약하냐를 논하지 말고 가짜인지 진짜인지를 분별하자. 한국에서 가장 큰 믿음을 가진 목사를 써내라 한다면 조 목사님을 쓸 것이다. 그런데 조 목사님도 개인적으로 물어보면 그렇지 않다고 얘기하실 것이다. 걱정하는 입장에 있을 수밖에 없다. 뭔가 앞을 향해 가려고 한다. 아무도 자만할 사람은 없기 때문에 진짜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예수님 옆에 강도를 보자. 평소에 설교를 듣지 않았고 기도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그러나 "오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하였다. 그것도 믿음이라고 구원하셨다. 존 칼빈의 예화가 있다. "작은 믿음이지만 진짜 믿음은 능력이 있다. 구원시킬 능력이다."라고 하였다. 지하감옥은 위생시설이 엉망이다. 지하감옥의 죄수 얘기다. 두더지가 구멍을 뚫고 들어왔다. 하루에 한 번 햇살이 구멍에 들어왔다. 지하감옥을 환하게 하였다. 죄수들이 그 순간 햇빛에 일광욕을 하였다. 두더지 구멍이 있는 죄수는 병이 걸릴 확률이 더 낮았다. 생명 연장에 도움을 주었다. 그 햇살은 진짜이기 때문이다. 건강과 생명에 이로움을 주었다. 진짜 믿음은 천국으로 인도하는 것이다. 확신이 없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다. 믿음을 갖자. 세 번째는 사죄에 축복을 잘 몰라서 생긴다. 용서의 축복이다. 죄 책 감에 구원받지 못한 그리스도인이 굉장히 많다. 확신하냐고 물으면 "나 같은 죄인이 자신 없어요."라고 한다. 불안과 공포가 있다. 물론 70살이 되도록 잘못한 것이 없다고 느끼면 죄 책 감이 덜할 수 있다. 그러나 간음죄와 사기죄를 범하고 돌아온 분들은 죄 책 감에서 해어 나오지 못한다. 결혼하고 나서도 과거에 잘못된 죄를 범한 부인들도 마찬가지다. 과거에 범한 죄 때문에 뿌리가 흔들리는 고통을 당한다. 죄책감이다. 요즘처럼 여성의 정절을 지키지 않는 때에는 더 그렇다. 마음 한 구석에 불안이 상주한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로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예수님의 보혈이 얼마나 대단한가? 예수님의 피가 얼마나 대단한가? 골로새서 2장 13절을 보자.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100% 모든 죄를 사하셨다. 거짓말하지 않으신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몇 번 부인했는가? 3년 동안 따라다니며 신앙고백을 청산유수로 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저주하며 모른다고 하였다. 어떻게 용서받는가? 가롯 유다와 베드로나 무엇이 다른가. 베드로는 고백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용서하셨다. 베드로 전후서와 사도행전을 읽어보라. 베드로가 자기 죄 때문에 고통하던가? 전혀 아니다. 정말 무결하게 씻어주신다. 사도 바울은 보통사람이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사람이지만 용서하셨다. 사도 바울이 자기 죄 때문에 고민하던가? 자기의 가시가 있었지만 자기의 핍박하던 죄 때문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자유한 사람이었다. 수가성의 여인도 마찬가지다. 한 번 용서하시면 완전히 용서하신다. 저의 이름은 옥한흠이지만 이상하게 지었다고 생각한다. 조 목사님은 이름이 멋있다. 그러나 은혜를 깨닫고 성령께서 알려주셨다. 한이 없이 흠이 많은 옥이더라. 진주이다. 예수 믿고 나서 한 개의 흠이 없는 옥이 되었다. 할렐루야. 그것을 생각하면 감사하다. 한 번씩 마귀가 흔든다. 겁이 나지만 불안하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물러나라. 나는 한 개의 흠도 없는 옥이다."라고 외친다. 떨지 말자.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로마서 8장 33절을 보자. "누가 정죄하리오?"라고 하였다. 이런 문제 때문에 확신이 없다면 십자가의 놀라운 은혜를 생각하자. 그 피는 놀랍고 보배로운 피이다. 영광스러운 보혈이다. 믿음과 감정이 흔들리면 불안하게 된다. 신앙생활에서 감정은 중요하다. 특별히 성령의 역사를 받는 사람은 더 중요하다. 냉랭하게 앉아 있을 수 없다. 믿음의 있어서 감정은 중요하다. 장로교는 너무 억누르는 측면이 있었다. 은혜를 받아도 기뻐할 수 없어 골방에서 춤을 췄다. 신앙의 기현상이다. 순복음교회는 감정을 존중한다. 처음 오면 흥분할 수 있다. 믿음과 감정은 혼동하지 말자. 감정을 믿음이라고 혼동한다. 감정이 식어지지 않을 때도 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이 세상 모든 것이 천국처럼 보인다. 그러나 날마다 계속되지 않는다. 점점 감정에 물이 빠진다. 원점으로 돌아간다. 또 남편과 싸우고 신경질 부린다. 교회에서는 괜찮은 척한다. 목사도 마찬가지다. 목사의 은혜가 날마다 충만한가? 잘못된 것이다. 저도 밑바닥으로 떨어진다. 엘리야를 보라. 사탄은 교역자를 공격한다. 감정 컨트롤이 안된다. 기분이 안 좋다고 하여 냉각상태 빠졌다고 해서 그 사람 믿음이 가버린 것인가? 내 감정이 식었다고 내 믿음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내 감정 때문에 올라가고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은 여전히 살아계신다. 내 감정이 올라가서 믿음이 좋다고 판단하지 말자. 내 감정이 측정도구가 아니다. 오직 말씀에 있는 것이다. 기분이 안 좋으면 입 다물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모세에 인도를 받아 출발하는 마지막 밤이다. 유월절 지키는 날 애굽의 공포의 밤이 오기 전에 말씀하셨다. 애굽의 장자는 모두 죽이는 공포의 밤이었다. 어린양을 잡아라. 그 피를 문설주와 좌우 방안에 발라라. 고기를 먹어라. 절대로 문 열고 나오지 말아라. 외투를 입고 허리를 동이고 신발을 신고 날이 밝아 출발할 때 어린양을 먹어라. 그 피가 있으면 넘어가리라. 그러나 없으면 사람이고 짐승이고 처음 난 것은 모두 죽이겠다고 하였다. 한 집에서 어린양 고기를 먹고 있었다. 깊은 밤에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들이 둘러앉았다. 고기를 먹고 있는데 분위기가 아이스 박스이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죽음의 천사 얘기를 하였기 때문이다. 조금도 정신을 놓지 말라고 일러 주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어붙은 것이다. 그런데 다른 집을 보니 싱글벙글하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얘기하였다. 우리 집은 죽음의 천사가 넘어갈 것이라고 기뻐하였다. 기분 좋게 먹자고 하였다. 비교해보자. 한 집은 얼어붙었고 한 집은 기쁨이 가득했다. 천사가 어느 집을 들어갔을까? 두 집다 안 들어갔다. 감정은 관계가 없는 것이다. 문설주에 피가 발라져 있기 때문이다. 그 피가 우리 집에 묻어 있는 것이다. 어떤 사탄도 이기지 못한다. 과거에 죄가 많아도 문제가 안된다. 기뻐하지 않던지가 관건이 아니다. 감정 때문에 구원의 확신이 흔들리면 안 된다. 끝으로 다섯 번째는 순종을 하지 못해서이다. 이것은 중요하다. 믿기만 하면 된다고 하니 순종을 등한시한다. 죄짓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적당하게 타협하고 세상을 산다. 교회 안에서 회개하면 된다고 한다. 순종이 병이 들었다. 믿음과 순종은 하나이다. 예수님은 이것을 나무와 열매로 보았다. 믿으면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도 우리가 100% 순종 못할 것을 인정하신다. 그러나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 다 하여 순종에 성의를 다하지 못하면 잘못된 것이다. 이런 것이 반복되면 구원의 확신이 없어진다.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순종은 반드시 믿음을 따라간다. 믿는 것만큼 중요하다. 따라서 순종의 생활을 제대로 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제대로 못하면 흔들린다. 담대함이 사라진다. 떳떳하지 못하게 된다. 5가지를 얘기하였다. 기억하자. 지금은 말세이다. 흔들리지 아니한 확신이 필요하다. 천하가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사탄은 유혹한다. 괜찮다고 한다. 확신을 갖지 말라고 한다. 전략이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30년 동안 드러나지 않게 사생활을 하시다가 대중 앞에 드러내셨다. 자신이 메시아임을 확인시켜 주셨다.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셔서 보여주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광야에 갔는데 마귀가 시험하였다. 왜 시험할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을 떡이 되게 하라." 흔드는 것이다. 확신을 흔드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구유에 태어나셨을 때 확신하셨을까? 지각이 자라고 성장하셨던 것이고 확인하셨던 것이다. 12살 때 하나님의 아들이었음을 알았다. 요단강에 세례 받고 확신하셨다. 십자가에 길을 가셔야 하겠다고 확신하셨다. 그런데 마귀가 흔들었다. 세상의 구원 계획을 방해하였다. 우리가 이것을 볼 때 마귀가 확신을 갖지 못하게 흔드는 것처럼 지금도 계속 흔들고 있음을 알자. 정신이 가물 해질 때 찾아왔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라." 공격하였다. 만일 예수님의 마음에 확신이 흔들렸다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탄은 지금도 돌아다니며 훼방을 놓는다. 구원의 확신이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 말씀을 무장하고 배우자. 천하가 무너져도 거룩한 백성임을 의심하지 말자.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 > 故 옥한흠'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01/07/08 사랑의교회 주일예배 (0) | 2020.02.09 |
---|---|
1983/10/02 사랑의교회 주일예배 (0) | 2020.02.03 |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 (0) | 2019.08.03 |
바다를 주목하자 (0) | 2019.07.16 |
성벽 다시 쌓기의 중요성 (0) | 2019.07.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