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난 날에 응답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35장 1~5절
알렉산더 화이트라는 설교자가 야곱을 놓고 이렇게 얘기하였다. 야곱처럼 하나님께 잘 데이고 용서를 받은 사람도 없다고 하였다. 야곱은 거짓말도 가끔 하면서 욕심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을 것처럼 두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태에서부터 사랑하셔서 135년이 넘도록 동행하시며 모든 길을 인도하시고 축복하셨다. 야곱은 대단히 매력적인 존재이다. 야곱은 거짓된 곳도 있고 사랑받을 만한 것이 없지만 하나님이 사랑하셨다. 이런 면에서 매우 흥미로운 인물이다. 가족을 모아놓고 하나님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나에 환난 날에 인도하시며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우리도 이 말씀을 담고 음미해보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이와 같이 고백할 수 있겠는가? 환난이라는 것을 사전에 찾아보면 의미가 조금 다르다. 뜻밖에 근심에 쌓여 불안해하는 상태를 뜻한다. 야곱이 자기 부모를 떠나서 홀로 내동댕이 쳐진 순간부터 20여 년간을 기록하고 있다. 야곱이 겪은 환란은 어떠한 것인가? 우선 28장에 보면 자기 형 에서를 속이고 축복을 훔쳤다. 에서가 야곱을 미워하여 죽이겠다고 하였다. 목숨을 건지기 위해 라반에게 갔다. 혼자 먼 사막 길을 가다가 사막 모퉁이에 돌을 베었다. 앞으로의 인생을 생각하였다.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하나님이 꿈속에서 나타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지키며 이 땅에 돌아오게 할 것이다."라고 하셨다. 굉장한 응답을 받았다. 31장을 보면 처가살이를 한 덕에 자수성가한 성공한 사람으로 나온다. 야곱이 고민에 빠졌다. 고향으로 갈지 말지를 고민하였다. 선택에 기로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셨다. "네 조상에 땅으로 돌아가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라고 하셨다. 32장에 보면 에서가 400명이 넘는 군사를 데리고 오고 있었다. 야곱은 근심하였다. 가족을 다 떼놓고 강 언덕에서 고민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씨름하게 하셨다. 천사가 이기지 못해 야곱을 장애인으로 만들었다. 야곱은 불구자가 돼버렸다. 하나님이 "네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물으셨다. "하나님과 맞서서 이긴 사람이 에서를 왜 무서워하느냐?"라고 하셨다. 야곱에게는 이쁜 딸 하나가 있었다. 추장 아들이 그 딸을 성추행하였다. 야곱에 가정에 무서운 시험이 불어닥쳤다. 아들들이 그 성에 남자를 다 죽였다. 하나님이 "일어나서 베델로 가라~"라고 하셨다. 야곱은 선택에 기로에 섰을 때 생명에 위기가 왔을 때 시험이 왔을 때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였다. 그는 자식들에게 하나님을 자신 있게 고백하였다.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할 수 있다. 야곱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는가? 우리도 환난을 당하고 있다. 우리도 한동안 근심과 고통에 흔들린다. 경우에 따라 오랫동안 환난이 머문다. 하나님이 나에게 응답하시는가? 심각하게 질문해야 한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꿈에서 응답하였다. 환상 중에도 야곱을 만나주셨다. 우리에게는 이런 일이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은 하나님이 그런 식으로는 돕지 않으신다. 성경을 날마다 읽으며 기억해야 할 원칙은 동일시의 원칙이다. 성경 내용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이 아니다. 그 말씀에 대상이 있는 것이다. 그 성경의 내용은 그 당시에 계시에 말씀을 들어야 할 대상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그것으로 따지자면 전부다 남에 소리이지 내 소리가 아닌 것이다. 그러면 어떤 자세로 읽어야 할까? 이 말씀을 기록한 분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 환상을 보게 하시고 그것을 보게 하시는 것이 성령 하나님이시다. 그것을 지배하시고 감동하시게 하시며 깨닫게 하신다. 성령은 상황과 시대를 넘어 진리 되도록 이어주는 능력을 갖고 계신다. 그분 때문에 성경을 볼 때 남에 이야기지만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에 자리에 나를 세우는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인물이 동일시되지는 않는다. 경우에 따라 성령이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실 수 있는 것이다. 야곱의 처지와 우리를 동일시하시는 것이다. 그 말씀이 자기 말씀으로 다가오는 것이며 응답으로 다가오게 하시는 은혜를 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믿으면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야곱보다도 훨씬 좋은 조건을 갖고 있다. 야곱은 예수님 오시기 이전에 인물이다. 우리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직접 가르치시고 행사와 이적을 보여주시거나 십자가의 영광과 부활도 보지 못하였다. 그의 부활과 능력을 보고 영광을 소유한 우리를 하나님께서 우리의 환난을 그대로 두실까? 절대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얼마나 자상하시고 치밀하게 응답하시는지 의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응답은 다양하다. 어떤 경우에는 환난을 막아주시며 어떤 경우에는 큰 피해 없이 물러가게 하시며, 어떤 때는 환난을 내버려 두시고 엉뚱한 응답으로 주실 수 있다. 그러므로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크럼리 부인은 '사막에 골짜기를 다닐지라도'라는 책을 내었다. 세 자녀가 있었는데 백혈병과 교통사고로 자녀들 모두를 잃었다. 그의 자녀는 33살에 임파선 암을 앓다가 떠났다. 크럼리 여사는 57세에 선교하던 대만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이 기가 막힌 고통을 통해 깨달은 것은 무엇이냐면 어떤 환란 속에서도 결코 그의 자녀들을 방치하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그 응답의 내용이 다양하고 똑같지 않지만 자기의 응답은 보상받지 못하였지만 나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위로를 체험하였다. 놀라운 위로를 느꼈다. 남편이 수만 번 힘을 쓰는 밤에도 찾아오셨다. 환란을 당하고 보니 상투적인 말씀 하나도 거짓이 아니며 진리였다. 연약한 자에게 들려주시는 지팡이였다. 과연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응답하셨다. 남편과 아이들을 돌려주시지 않았지만 말씀으로 놀랍게 응답하셨다. 저도 여러분의 사정을 모르지만 마음에 고통 없이 있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조금만 이야기를 해보면 다 영혼에 환란을 겪고 있다. 우리가 환난에 고통할 때 어떤 방법으로든지 응답하신다. 자신의 아들을 희생시키신 아버지가 가만히 계실리가 없다. 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자랑스러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밤에 잠을 자지 못해 눈물 흘리는 자신을 내버려 두시겠는가? 시기가 늦게 오느냐 일찍 오느냐의 차이이다. 야곱의 고백을 다시 듣자. 나의 환난 날에 응답하시고 나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라~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아무도 우리를 대적하지 못할 것이다. 영원한 승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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