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예배라면 교회 예배는 왜 드리는가?
레위기 23장 9~14절, 22절
교회 예배의 중요성은 왜 퇴색되고 있는가?
지난 2000년 동안 교회는 모든 신자가 주일 예배로 모이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어요.
최근 들어 예배를 등한시하는 경향이 늘어나고 있어서 한 달에 한 번만 교회 예배에 참석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이러한 변화는 예배와 삶의 관계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가 약해졌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삶이 예배라면 교회 예배의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요.
예배와 기도보다 삶이 중요하다는 주장에는 일리가 있으나, 실제 삶에서 예배와 기도의 중요성을 무시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요.
많은 지성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죄인인지 잘 모르고 있으며, 자기 의에 빠지는 경우가 많아요.
과거의 기독교인이 아닌 조상들조차 삶의 죄성을 인식하고 솔직한 태도를 보였어요..
도덕적 삶과 예배의 관계: 어떤 점을 주장하고 있나요?
한 청중이 아내의 감리교 교회 목사의 발언을 언급하며, 일요일에 예배에 참석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주장해요.
그러나 이 청중은 실질적으로 사업상의 거짓말 때문에 교회를 못 다닌다고 고백해요.
김지찬 교수는 윤리적인 삶만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해요.
그래서 외적인 도덕성만으로 예배를 대신할 수 없다고요.
이사야 선지자의 말씀(이사야 64:6)을 통해 우리의 의인은 다 더러운 옷 같음을 상기시키며,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윤리적인 삶을 예배로 착각하는 것을 경고하고 삶 자체가 예배가 되려면 올바른 예배와의 관계가 중요하다고 주장해요..
김지찬 교수의 신앙생활 관점?
김지찬 교수는 요즘 유행하는 "주일성수와 봉사만으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주장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는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공부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는 신앙생활에서 예배 출석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고 설명했어요.
예배 출석, 주일성수, 새벽기도 등을 신앙생활의 기본 원리로 강조하죠.
또한 김 교수는 레위기 23장을 통해 예배와 삶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했어요.
이 장은 안식일, 유월절, 초실절, 칠칠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등 7가지 절기를 다루며, 일상에서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배려하는 규례를 언급했어요.
따라서, 김 교수는 우리 삶이 예배가 되기 위해서는 예배뿐 아니라 일상에서의 행동도 중요하다고 결론지었어요..
첫 이삭을 드리는 행위의 의미는?
예배를 드려야 삶의 기본적인 것들을 누릴 수 있죠.
첫 이삭 한 단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이스라엘의 사랑과 관심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표지예요.
이는 가족 간의 우선순위가 바뀌는 경우와 비유될 수 있어요.
가족 내 음식 배분에서도 우선순위가 중요한데, 이는 권력관계에 영향을 미쳐요.
마찬가지로, 첫 이삭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가장 중요한 사랑과 관심을 하나님께 먼저 드리라는 의미예요..
흔드는 제사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제사장이 단 앞에서 흔드는 예식을 하도록 명령하셨어요.
제사를 흔드는 것에 대해 현대 사람들은 혼동할 수 있을 거예요; 예를 들어 고스톱과 같은 게임에서 흔드는 행위와 연결 짓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흔든다는 행위는 단순히 보상을 두 배로 늘리는 마법과 같은 의미는 아니에요.
전통적으로 '흔들다'라는 번역이 사용되었으나, 최근에는 '들어 올리다'라는 표현으로 해석되기도 해요.
흔드는 제사를 '테누파 제사'라고 부르는데, 이는 해당 동사의 명사형이에요.
테누파 제사는 모든 제사에 적용되지 않고, 특정 두 가지 경우에만 사용된다죠..
예배와 첫 이삭의 중요성
예배는 우리의 존재와 소유를 하나님께 바치는 행위예요.
화목제에서는 재물 일부를 제사장과 드리는 사람이 먹는데, 이를 방지하기 위해 흔들어 하나님께 드립니다.
보리 추수의 첫 이삭도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이후의 곡식을 먹을 수 있어요.
첫 이삭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으면 영원한 규례를 어기게 되죠.
이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인정하고, 감사와 찬송을 드리며 예배하는 의미예요..
기억상실증과 예배의 관계는?
인간은 기억상실증에 걸린 존재라고 말하기 때문에, 땅과 소출은 이스라엘의 소유가 아니라고 인식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가난한 땅은 가나안 민족이 살던 곳으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인 땅을 차지한 것이라고 설명돼요.
성경에선 이스라엘 땅보다는 가난한 땅에 대한 언급이 두 배 더 많고, 그 땅이 이스라엘의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고 해요.
가나안 성도라는 표현을 비판하며, 교회를 떠나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없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예배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며, 어떤 교회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변명으로 예배를 포기하는 건 좋지 않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예배의 본질을 알게 된 메커니즘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주인이시라는 사실을 고백하게 돼요.
헌금을 통해 우리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실제로는 하나님이 주신 것임을 인정하게 되죠.
예배를 등한시하면 우리가 가진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잊게 되므로 삶 자체가 예배가 되기 어렵다고 해요.
진정한 예배를 경험한 사람들은 예배의 중요성과 그 가운데 일어나는 변화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있어요.
그래서 예배를 통해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들이 일어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되고, 이는 예배를 통해 얻게 되는 예상치 못한 감동이나 눈물 등의 변화를 예시로 들 수 있어요..
예배와 삶의 상관관계
예배는 곡식초단을 하나님께 드리며 소유와 존재를 올려드리는 행위예요.
그러나 이는 예배의 끝이 아니며, 일상에서도 그에 맞게 살아야 해요.
레위기 23:22에서는 밭의 곡물을 벨 때, 반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고 남겨두라고 지시하죠.
이는 가난한 자와 나그네를 위한 배려인데, 하나님은 가난한 자들을 위해 경제적 손해를 감수하게 하셨어요.
그래서 예수님도 마태복음 10:8에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라고 말씀하셨어요.
목회자는 성도들에게 끊임없이 거저주는 삶을 살아야 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은 모든 것을 주는 삶이 돼야 해요.
성도들이나 목회자는 서로에게 조건 없이 사랑과 복음을 나누며 살아야 하며, 생계비는 봉급이 아닌 ‘사례비’로 불려요..
목회자와 성도의 관계는?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생활비를 제공하며 복음을 듣기 위한 환경을 마련해야 해요.
성도들이 거저 복음을 받았듯이 목회자도 거저 은사와 복음을 전해야 해요.
목회자를 고용하여 봉급을 준다고 생각하면 복음을 돈으로 사는 셈이 돼요.
목회자와 성도는 서로 거저 받고 거저주는 관계를 유지해야 해요.
세금 문제와 관련하여 목회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나 대다수는 최소 생계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성도들도 세상 속에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정신으로 살아야 해요..
성경에서 예배의 본질은?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했고, 이는 병자들을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귀신을 쫓아내는 등의 활동을 포함했어요.
예수님의 가르침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원칙을 강조하며, 교회는 이를 따를 공동체로 구성되며, 정기적인 예배를 통해 이 원칙을 실천하고 은혜를 확인해요.
이는 다시 남에게 주는 힘을 얻기 위함이죠..
예배는 무엇을 통해 경험이 되는가?
예배는 하나님에게 받은 선물을 고백하고 감사하는 행위예요.
예배 중 하나님의 임재와 능력을 경험하면서, 그에 맞는 삶을 살게 된답니다.
예배는 과거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기억하고 미래의 비전을 맛보는 시간이죠.
그래서 예배는 축제가 되며, 감동과 환희를 경험할 수 있어요.
과거에 믿음의 선조들이 생명을 걸고 예배를 드린 이유는 예배의 감격과 감동 때문이라고 추정돼요..
예배와 삶의 관계는?
마태복음 10장 8절에 따르면, 예배를 통해 거저 받은 은혜를 거저 주라는 비전을 얻게 되고요.
삶은 예배의 연장이며, 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삶 자체도 예배로 변하지 않아요.
마태복음 5장 23절에서는 예배 중에 형제와 화목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어요.
일상에서 원망할 만한 일을 예배 중에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고요, 예배 참여 태도는 대표기도 같은 예배 순서에 헌신하여 강조돼요..
바울은 무엇을 강조했나요?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산제사로 드리는 예배를 강조했어요.
'산제사'는 영어로 living sacrifice로, 죽음을 통한 제사가 아닌 삶을 통한 제사로 해석됩니다.
그러나, 삶 자체가 예배라고 하여 공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에요.
예수님도 삶 자체가 예배였지만, 여전히 십자가에서 몸을 드리는 제사를 드렸어요.
공예배와 삶이 상호 보완적인 관계임을 이해하고, 예배 회복에 힘써야 해요..
산제사의 의미와 중요성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예배에 대한 해석자들이 등장하며, 이는 제2의 종교개혁으로 간주되기도 했어요.
바울은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라고 말하며 '몸을 드리는 것'이 영적 예배임을 강조했어요.
'산제사'는 자기를 죽이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하며, 바울은 자기 욕심과 옛 자아를 버리는 과정에서 새로운 생명을 찾는다고 설명했어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은 부활의 생명의 첫 열매로 산제사의 본질을 나타낸다고 해요..
예배의 참된 의미
예배는 삶 자체가 예배라 해서 자동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니에요.
로마서 1장부터 11장까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 설명하며, 우리의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바꿔야 한다고 권고해요.
거저주는 정신으로 살면 새로운 생명 맛볼 수 있어요.
김지찬 교수의 예배와 신앙에 대한 강조 내용은?
김지찬 교수는 예배와 삶의 관계를 강조하며, 예배 중 하나님에게 거저 받았음을 고백해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로서, 우리는 그의 돌보심을 받는 양이라고 합니다.
양이 결국 재단에 오르는 것은 그의 운명이며, 우리는 그 사실에 감사해야 해요.
김지찬 교수는 자신이 21살 때의 경험을 공유하며, 예배와 신앙의 중요성을 설명해요.
목회자의 목표는 성도들이 거저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복음 전도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김지찬 교수의 예배와 삶에 관한 주장
김지찬 교수는 66세이며, 그의 설교에서는 과거의 경험을 통해 예배와 삶의 관계를 논하죠.
대학을 다니던 21세 시절, 양의 운명이 제물이 되는 것임을 깨달았어요.
그는 주님의 부르심을 본받아 옛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해요.
예배는 주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기억하며, 그 가르침을 따라야 함을 상기시킨답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 거저 받은 은혜를 깨달아, 삶에서 다른 이에게도 나눠주는 비전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예수님의 말씀과 레위기 연관성은?
누가복음 6장 38절에서 예수님은 '주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 말씀은 레위기 본문을 염두에 두고 있으며, 우리는 거저 받았으므로 거저 주어야 한다고 강조해요.
곡식을 쌓아 올리고 흔들어 더 많이 담는 장면을 비유로 사용하여, 하나님이 넉넉하게 채우실 것을 시사한답니다.
마틴 루터는 흑사병이 유행할 때에도 예배의 중요성을 보여주었어요.
1527년 흑사병이 퍼진 비텐베르크에서 루터는 자신의 도시를 떠나지 않고, 예배와 섬김을 지속했죠.
루터의 태도는 우리가 예배에 어떻게 임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예요..
루터의 행동과 결단은?
루터는 비텐베르크 시에서 흑사병이 창궐함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았어요.
부목사의 아내와 아들이 흑사병으로 사망했으며, 루터의 아들 한스도 병에 걸렸다죠.
루터는 집을 개방해 환자들을 받아들였으며, 자신도 여러 번 쓰러졌어요.
목사들은 루터에게 치명적인 죽음의 소문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공개서신을 요청했고, 루터는 목사는 피신할 수 없다고 주장했으며, 병든 시민들에 대한 안전조치를 취한 후 피신할 수 있다고 말했어요.
흑사병 시대의 루터의 결정은 현대 한국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과 비교되며, 루터의 결단은 용기와 믿음의 상징으로 여겨졌죠..
루터와 예배의 중요성은?
루터는 이웃 사랑과 하나님 섬김을 위해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흑사병 당시에도 루터는 비텐베르크에 남아 환자를 돌보고 예배를 드렸죠.
사람들에게 교회에 참석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지를 배우라고 권면했습니다.
루터는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성찬에 참여하라고 가르쳤어요.
마귀는 두려움과 혐오감을 주어 사람들이 삶에서 안식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했고, 그러므로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를 위해 예배에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루터의 주장
루터는 사람이 죽음을 준비해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루터는 흑사병 시기에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죠.
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성찬에 참여하고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언급했어요.
요즘 사람들은 하나님을 향한 삶(Living on to God) 보다 자신을 향한 삶(Living on to man)에 더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에 대해 루터는 예배 공간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지 나를 섬기는지를 검토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라고 강조했어요.
결국,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방식을 알 수 있는 길이라고 이야기했고, 죽음을 모르면 삶도 모른다고 결론지었어요..
예배의 중요성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삶 자체가 예배가 될 수 있어요.
예배에 목숨을 걸지 않고는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 수 없죠.
예배를 통해 하늘의 초월적 능력과 은혜를 얻을 수 있어요.
예배의 중요성을 깨달아야 사탄과 유혹을 이길 수 있어요.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비전을 가지고 살아야 해요.
예배의 열풍이 기도의 열풍과 함께 한반도를 덮기를 기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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