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02 금요철야예배

Q.T/수영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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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경건

본문 / 야고보서 1:19~27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다 믿음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대부분은 믿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는 믿음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다닌다고 해서 예수님을 영접한 것은 아닙니다. 평생 교회 다니지만,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장로님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모두 거듭난 신자가 돈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믿음을 가지면, 믿음이 있다는 증거가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그것은 변화입니다. 경건하지 못하던 사람이 경건한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옛날에는 교회에 다니면서도 세상에서는 술 한 잔 하고 별별 짓을 하며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살았는데, 어느 날부터인가 변화가 나타납니다. 습관화되어서 바꾸기 힘든 것들이 달라집니다. 이것은 굉장한 변화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불가능합니다.

경건하지 않던 사람이 경건한 사람으로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온전한 경건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수준은 경건의 수준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사람을 아주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거룩한 자가 되어서 이 세상에서 경건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경건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좋아하십니다. 경건하지 못하던 사람이 변화되어 경건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증거가 축복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서 아주 귀하게 쓰십니다.

디모데전서 4장 7~8절에 보면,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너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경건한 삶을 사는 것은 힘듭니다. 단순하지 않습니다. 쉽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운동선수가 많은 훈련과 연습을 통해 어느 수준에 올라가는 것처럼 경건한 사람이 되는 과정은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단 경건한 사람이 되면 축복을 받습니다. 육신을 단련해서 굉장한 힘을 가지게 되고 훌륭한 챔피언이 되는 것도 유익하지만, 경건에 이르는 훈련을 통해 경건한 사람이 되면 범사에 유익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서 받을 상만 큰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도 받는 축복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어도 적당히 믿으시는 분들을 보면 똑똑하고 잘난 것 같지만 사실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어도 적당히 믿으려고 하고, 거기서 좀 더 지나치면 돌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기준을 세워놓고 그 정도면 모범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평생 예수 믿어도 그 모양 그대로입니다. 은혜를 받을 수 없고, 믿음이 크지 않고 오히려 교만해집니다.
자기가 세워놓은 표준에 맞추어 사니까 자기는 모범적 신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느냐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은혜받은 사람들은 은혜받으면 받을수록 자기가 얼마나 부족한가를 압니다. 자기 믿음이 얼마나 나약한가를 압니다. 영안이 밝아서 자기 자신을 압니다.
자기 안에 옛사람의 타락의 속성이 있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게 하는 것을 알고, 한 시도 기도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고, 한 시도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다니엘은 참으로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니엘 1장 8~9절에 보면,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고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하여금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은 비록 포로로 붙잡혀 갔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게나 살지 않았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왕이 주는 음식을 먹어야 하지만, 다니엘은 그것을 먹지 않겠다고 뜻을 결정하고 환관장에게 이야기했습니다. 목숨을 건 신앙이 없으면 이렇게 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나가면 먹을 것 먹지 말아야 할 것을 가리지 않고 얼마나 잘 먹는지 모릅니다.
먹는 것이라고 다 먹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경건한 삶은 그렇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있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으시는 것은 먹지 않아야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우상 앞에 제사 지낸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경건을 사수한 것입니다. 거룩하게 살기 위해 경건한 삶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다니엘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축복하셨는지 모릅니다.
다니엘 1장 17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학문을 주시고 모든 서적을 깨닫게 하시고 지혜를 주셨으니 다니엘은 또 모든 환상과 꿈을 깨달아 알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다니엘 1장 20~21절에 보면, “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 아니라 다니엘이 고레스 왕 원년까지 있으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에게 지혜를 주시돼 바벨론의 모든 박사들보다 열 배 이상의 지혜를 주셨습니다. 기도의 사람 다니엘, 경건의 사람 다니엘, 목숨을 걸고 경건을 지킨 다니엘에게 영안이 밝아 환상과 꿈을 깨달아 올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은사까지 주시고 총리가 되게 하시되 바벨론 시대와 메대와 바사 시대 고레스 왕 원년까지 쓰임 받도록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를 축복하십니다. 경건한 자를 귀하게 쓰십니다.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벨사살 왕이 망해서 죽고 바벨론이 끝났습니다. 그다음 메대 사람 다리오가 새 나라를 세워서 왕이 되었는데, 이때 총리 세 명을 두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가장 뛰어난 다니엘을 대표로 세우려고 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시기 질투해서 다니엘을 어떻게 해서든지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작전을 짠 것이 한 달 동안 왕 외에는 아무 신에게도 경배하지 못하고 기도하지 못하도록 법령을 만들어 어리석은 왕에게 도장을 찍도록 해서 조서를 내린 것입니다.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라는 말은 ‘다니엘은 평소대로 기도하면 죽을 줄을 알고도’라는 의미입니다.

다니엘은 죽을 각오를 하고 지금까지 해오던 대로 기도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 앞에 감사했습니다. 죽을 줄 알고서도 감사했습니다. 대단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경건한 삶을 위해 목숨을 건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기도생활을 했습니다. 다니엘이 경건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은 목숨 건 기도생활에서 나왔습니다.
다니엘은 적당히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죽어도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는 것을 절대 양보하지 않았습니다. 기도생활을 이렇게 철저히 하면 다니엘처럼 복을 받을 줄 믿습니다.

우리가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무엇보다도 기도생활에 성공을 해야 합니다. 기도생활에 성공하는 사람은
첫째, 큰 은혜를 받습니다. 성령의 은혜 가운데서 경건한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간증 거리가 많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하루에 세 번씩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학교 가기 전, 학교에서 돌아올 때, 저녁 먹고 나서 교회에 가서 기도했습니다.
그때는 돗자리 깔아놓은 예배당이니까 거기서 꿇어앉아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형식적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교회까지 간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절대로 외면하시지 않으십니다. 마음에 작정하고 매일 새벽 빠지지 않고 나와서 예배드리고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은혜받을 기회를 반드시 주십니다. 어떤 때에는 무릎 꿇고 앉자마자 눈물이 쏟아지고, 성령의 역사하심을 경험합니다. 그런 날은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기도가 터져 나옵니다.

그리고 응답받은 간증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특별히 아주 중요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주십니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중요한 고비고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것을 다 준비해놓으셨습니다. 평소에 기도한 것이 축복을 쌓은 것입니다. 필요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채우시고 채우셔서 간증 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꾸준히 나아와서 기도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 자신의 기도가 부족한 것 같은데도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시는 것을 보게 되므로 간증 거리가 많이 생깁니다.
요한복음 9장 31절에 보면,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하게 사는 사람,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다 들어주십니다.

셋째, 경건의 능력을 가집니다.
경건하게 사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경건하게 살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도 경건하게 살 수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7절에 보면,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세에 사람들이 타락을 하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들이 많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의 특징은 겉으로 보면 예수 잘 믿는 척하는데 경건의 능력이 없습니다.
어리석은 여자 하나 찍어 놓았다가 ‘저 여자는 내가 한마디 하면 넘어가겠지’라고 생각하며 여자를 유인해서 음란한 짓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평소에 교회에서 말씀을 듣고 배워도 그렇게 사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 완전히 회개하고 깨어지기 전에는 경건하게 살 수가 없습니다.

왜 이렇게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경건의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되느냐 하면, 기도생활에 실패하기 때문입니다. 적당히 형식적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기도생활에 성공해야 경건의 능력을 가지게 됩니다. 경건의 능력을 가지게 될 때 마귀를 이길 수 있습니다. 죄를 이길 수 있습니다.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가 유혹할 때 담대하게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요셉이 항상 기도생활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기도생활을 통해서 경건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시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시는 사람이 됩니다.
디모데후서 2장 20~22절에 보면,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그릇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십니다. 그런데 자기를 깨끗이 하면 아주 귀한 일에 쓰임 받습니다.
다니엘을 보십시오. 바벨론 총리로 하나님께서 세우셔서 얼마나 영광 받으셨습니까.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셔서 애굽 사람뿐만 아니라 만민을 굶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살게 하는 귀한 일에 쓰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와 함께해주십니다. 그러므로 경건한 사람은 범사에 형통하고, 모든 것이 전화위복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습니다.
요셉이 범사에 형통하고 모든 것이 전화위복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은 것은 그가 경건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덮어놓고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는 복을 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경건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셔서 범사에 형통하고, 어려운 일이 와도 전화위복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게 됩니다.

성경에 보면 무엇이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승리하고 성공했습니다. 다윗을 보면 언제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어디로 가든지 이겼습니다.
하나님을 이길 자가 천하에 누가 있습니까. 다윗은 혼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셔서 어디를 가든지 이겼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신학교 2학년이었을 때, 개척 교회에 가서 설교한 적이 있습니다. 그 교회의 목사님께서 저를 설교자로 선택하셔서 설교하러 갔습니다.
교인은 몇 명 되지 않았지만, 1주일에 일곱 번 새벽예배 시간에 설교해야 하고, 주일 낮 예배, 저녁예배 설교해야 하고, 수요예배 시간에도 설교해야 하니 1주일에 최소한 열 번은 설교해야 했습니다.

신학교에 다닌 지 1년 된 학생이 열 번 설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요령도 없고 설교도 많이 해보지 않은 학생이 갑자기 설교해야 하니까 구할 수 있는 책은 다 구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설교에 대한 책도 많지 않았습니다. 공부하기도 바쁜데 설교 준비하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에게 무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하루에 세 번 이상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기도생활이라는 무기가 있으니까 하나님 앞에 울면서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감당할 수 없으니까 그냥 울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여자 집사님 한분은 연세가 어머니뻘이 되는데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어린 총각이 제가 혼자 심방하려니 어렵다고 같이 심방하자고 부탁드렸더니 기쁨으로 늘 함께하셨습니다.
알고 보니 기도 대장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종을 얼마나 잘 섬기시는지, 심방 갈 때마다 차비를 내주시고 점심도 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돕는 천사를 붙여주셔서 모든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어느 날, 집사님께서 제게 “전도사님, 우리 교회에 교인이 꽉 차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교회에 교인이 꽉 차려면 눈물이 차야 교인들이 꽉 찹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도 안 됩니다.”라고 대답했더니 집사님은 계속 “아닙니다. 눈물이 차야 교인이 찹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귀에 남았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배당은 눈물로 채울 수 없고, 설교하는 강단은 작으니까 눈물로 채울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날 밤부터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덮어놓고 울었습니다. 눈물 콧물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닦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돌아앉아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강단 위에서 한 바퀴 돌았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개척한 지 3개월이 지나고 4개월이 되었습니다. 4개월 첫 주일에 보니 107명이 출석했습니다. 작은 예배당이 꽉 차서 뒤에는 서서 예배드렸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큰 곳으로 옮기고, 또 큰 데로 이사했습니다. 1년 만에 그런 큰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눈물의 기도가 그런 기적을 가져왔습니다. 1년 만에 170~180명이 모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아이들까지 합치면 2백 명이 넘었습니다.

경건하게 살면,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해주시면 승리합니다. 성공합니다.
사도행전 10장 1~2절에 보면, “가이사랴에 고넬료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달리아 부대라 하는 군대의 백부장이라 그가 경건하여 온 집안과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넬료는 군인이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항상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도생활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경건하기 어려운 형편 중에도 그는 경건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경건은 지키기 어렵지만, 잃어버리기는 삼손을 보세요. 그는 사사로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께서 구별되게 선택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은 기도생활을 소홀히 하고 기생을 가까이하다가 결국 머리를 깎이고 두 눈이 뽑히고 비참한 종말을 고합니다.
꼭 명심하십시오. 기도생활을 등한히 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건한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솔로몬도 보세요. 기도생활이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세상 향락에 빠졌습니다. 나중에는 우상 숭배했습니다.

다윗은 기도를 많이 한 사람입니다. 다윗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결정한 것은 다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실수하고 실패했을 때는 기도하지 않고 결정했을 때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가 목욕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께 기도했다면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가 경건을 지키려면, 기도생활이 빠지면 안 됩니다. 기도생활을 적당히 하면 안 됩니다. 기도생활 없이 결정하면 안 됩니다.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 앞에 정결한 경건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입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19절부터 보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6절에 보면,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물리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혀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혀는 다스리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적게 합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러므로 많이 듣고 잘 듣고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이 아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가 쓸데없는 말을 함부로 하면 경건을 지킬 수 없습니다. 더러운 말을 하면 마음이 더러워집니다. 영이 더러워집니다. 말을 하는 사람도 더러워집니다. 듣는 사람도 더러워집니다.

에베소서 4장 29~32절에 보면,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3~7절에 보면,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너희도 정녕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 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입을 잘 관리해야 하나님 앞에서 더럽지 않고 정결한 경건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둘째, 성내지 말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6~27절에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화가 나서 분을 품고, 참지 못해서 계속 화를 내면 마귀에게 틈을 주어서 사탄이 역사해버립니다. 그래서 실수합니다.
야고보서 1장 19~20절에 보면,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성전에서 화를 낸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두시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큰소리치거나 성질내지 마십시오. 받은 은혜가 떠나버립니다. 다음부터는 교회에서 존재가 없는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웃시야 왕은 교만해져서 제사장들이 하는 분향하는 일을 자기가 하려고 했습니다. 그때 제사장들이 “웃시야여 여호와께 분향하는 일은 왕이 할 바가 아니요 오직 분향하기 위하여 구별함을 받은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이 할 바니 성소에서 나가소서 왕이 범죄 하였으니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영광을 얻지 못하리이다(대하 26:18)”라고 만류했습니다. 그러자 웃시야 왕은 화를 냈습니다.
그 순간, 웃시야의 이마에 나병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별궁에서 외롭게 살다가 죽고 말았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울 왕도 얼마나 성질이 고약한지 모릅니다. 자기 아들에게 욕을 하는 내용을 보면, 얼마나 입이 더럽고 악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받은 은혜도 다 잃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절대로 성질내지 마십시오. 아멘!

셋째,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려야 합니다.
이것들은 사탄의 속성입니다. 믿음이 없던 사람이 믿음을 가지면 회개합니다. 그래서 점점 거룩해집니다. 그리고 믿음이 생기면, 성품이 변화됩니다. 악한 본성이 없어지고 착해지기 시작합니다. 어두움에 속했던 사람이 빛의 사람이 됩니다.
에베소서 5장 8~11절에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옛날에는 어두움에 속해 있었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빛의 열매가 나타납니다. 점점 더 착해집니다. 불의하던 사람이 의로워집니다. 거짓된 것이 많았던 사람이 진실해집니다.

넷째, 말씀을 잘 받고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1~25절에 보면,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누구든지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아서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습이 어떠했는지를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롭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천하는 자니 이 사람은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말씀을 잘 듣고 받아들이고 행하면 복을 받습니다.

다섯째, 고아와 과부를 돌보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27절에 보면,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가난하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물질 관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물질 관리를 어떻게 하는가를 보면, 믿음의 수준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재산은 하나님께서 주셔서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재산이 생기지 않습니다.
우리의 재산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것을 맡아서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재물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는 재물을 땅에 쌓아놓으려고 하지 말고 하늘에 쌓아놓으려고 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6장 19~2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둠이 얼마나 더하겠느냐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 되지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경건하게 살 수 없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 6~10절에 보면,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경건하게 살려고 해도 절대 경건하게 살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이 돈과 재산을 어떤 식으로 관리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의 믿음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경건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여섯째,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않아야 합니다.
경건하게 사는 것은 세속에 물들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핍박이 옵니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보면,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사는 식으로 살지 않으니까 매사에 부딪힙니다. 그들과 함께 도둑질하고 그들과 함께 나쁜 짓을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니까 친구가 되지 않으니까 왕따를 당하고 핍박을 당합니다.

우리가 경건하게 살려고 하면 핍박은 물론이요 목숨까지 내걸어야 합니다. 죽어도 좋다는 믿음의 각오로 먹지 않아야 할 것은 먹지 않아야 합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나아갈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경건한 삶을 사셔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기 바랍니다. 더러운 세상에서도 경건하게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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