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16 금요부흥회

Q.T/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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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적 신앙

마태복음 14장 28~33절

찬송가 446장  오 놀라운 구세주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을 주실 때 테스트를 거쳐서 주시는 경우가 많다. 저희도 교회를 개척할 때 정자동 상가를 얻어서 갔다. 4층에 80평 정도 공간에 복도와 화장실, 사무실을 내면 본당은 조그마했다. 결정이 나고 잔금을 치르는데 이웃 교회 목사님에게 이 곳에 못 들어온다고 연락이 왔다. 아마 통일교로 오해한 것 같다. 부동산에 연락을 해서 하루만 연기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 목사에게 찾아가서 비굴하게 사정했다. 처음으로 개척한다고 얘기했다. 사랑의 교회에서 후원해서 개척하는 1호 교회라고 빌었다. 처절하게 2시간을 빌었다. 2년만 있다가 나가겠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십자가와 간판도 안 걸겠다고 하였다. 주보에도 인근 교회 성도는 안 받는다고 쓰겠다고 하였다. 청소년 사역만 하였었다고 생각해 달라고 하였다. 수련회 장소로 가기까지가 너무 힘들었다. 기력을 소진한 것이다. 집으로 향했다. 막내아들이 3살이었는데 전속력으로 달려왔다. 갑자기 눈물이 났다. 내가 너한테 부끄러운 삶을 살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잠이 오지 않았다. 경기도 마석에 수련회 장소로 갔다. 2000명 가까이 모여있었다. 저녁에는 비가 부슬부슬 왔다. 식당이 모자라서 바깥까지 줄이 이어졌다. 식당 안에도 줄이 말도 못 했다. 또 눈물이 났다. 제가 또 다짐을 했다. "너희들한테 부끄러운 목사가 되지 않으마."라고 하였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정말 염려가 많았다. 창립멤버가 30명 정도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성경에 두 인물이 스쳤다. 에서였다. "이까짓 장자가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했었다. 한 끼 안 먹는다고 죽지 않는다. 마치 제 꼴이 에서와 같았다. 죽을 것 같았다. 사실 죽을 만큼은 아니다. 옥한흠 목사님이 기도해주시고 있고 창립멤버도 30명 정도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 인물은 이삭이다. 고뇌에 마음이 툭 내려앉았다. 마음에 자유를 얻고 그 목사님에게 메일을 보냈다. 젊잖게 보냈다. "목사님 기도해봅시다. 걱정 마세요."라고 썼다. 그 당시 천만 원정도 손해를 보았다. 그건 피 같았다. 이웃 교회에 헌금했다고 생각했다. 깨끗이 포기했다. 미금역에 70평 공간을 보았다. 인근 교회로 찾아갔는데 그 목사님 표정이 너무 안 좋았다. 그래서 또 포기했다. 그래서 연결된 곳이 송림 중고등학교이다. 그런데 타 교회에서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예비해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좋은 곳을 주시기 전에 테스트하고 계셨던 것이다. 송림 중고등학교는 만평이 넘는 곳이다. 그런데 저는 80평도 안 되는 곳을 보고 안쓰러워 잠도 잘 못 잔 것이다. 피를 말리는 두 달이었다. 기왕 주실 거면 확 주시면 되는데 시간이 걸려서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어야 하는 것이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때 멱살이라도 잡았다면 지금도 아찔하다. 분당 우리 교회에 일등공신은 아마도 그 목사님 일지도 모른다. 그분을 초청할까도 생각했지만 차마 그러진 못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좋은 것을 주시길 원하신다. 그런데 80평을 원하는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믿을 때 통과하는 것이다. 다윗에게 가장 고마운 생명의 의인은 누구겠는가? 요나단? 정답이 아니다. 골리앗이다. 세상에 골리앗이 없었다면 다윗은 초라한 목동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 다윗이 물맷돌에 죽는 바람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것이다. 두 번째로는 사울이다. 사울만큼 또 고마운 존재가 없다. 잠도 안 자고 옥상을 다니다가 그 여자를 보고 불러 임신시키고 또 남편을 죽이고.. 사울을 통해 연단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 바깥에 사울을 불러 다윗 내면에 사울을 죽인 것이다. 하나님은 다윗을 세우기 전에 자기 자신을 위하는 욕망 덩어리를 죽이기 위하여 바깥에 사울을 사용하셨다. 다윗에게 가장 고마운 존재는 사울이다. 우리가 감당을 못해서 허우적대는 것이다. 이 사람의 성격을 죽이려고 하나님이 주신 도구인 것이다. 시어머니도 마찬가지다. 그런 시어머니라도 만났기 때문에 기도하러 오는 곳이다. 못된 며느리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하여 연단하시는 것이다. 환경이 문제가 아닌 것이다. 강한 믿음이 필요하다. 서울 영동세브란스 병원에 이희대 교수가 있다. 여성 유방암과 갑상선 암에 대가라고 한다. 일 년에 암 수술 600회를 한다고 한다. 주일과 토요일 빼고는 하루에 두 번을 해야 한다. 그런데 당신이 대장암에 걸린 것이다. 4기였다. 수술해도 회복이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평상시처럼 환자들을 돌보았다. 기자가 "아니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보통 암 1기만 되어도 자포자기하게 되는데 이박사는 그렇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 어려움을 도전정신으로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났는데 예수님을 만났다. 베드로만 예수님 앞으로 찾아갔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도 주님 앞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모험하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폴 트루니라는 기독교 상담가가 있다. "모험하는 인생"이라는 책에서 하나님께서는 모험하도록 지으셨다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급 압제로 힘겨워할 때 이스라엘 후손들은 태어나자마자 종 살이를 하였다. 그래서 2가지 선택이 가능하다. 비굴하게 사는 것과 저항하게 사는 것이다. 선택권이 없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험하는 분이시다. 압제하는 백성에게 비굴하게 살기를 원하시지는 않는 것이다. 홍해를 건너시기를 바라는 것이다. 가나안으로 가야 하는 것이다. 비굴한 것도 부정적인 사고도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것이다. 홍해를 건너야 하는 것이다. 임신하신 분도 보이시는데 예수님을 잉태한 마리아처럼 복 받은 존재도 없다. 마리아도 거저 된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이 모험을 요구하셨다. "네 몸을 빌려 아기 예수를 낳아도 되겠니?"라고 물으셨다. 처녀가 잉태한 것은 상상하기도 싫은 것이다. 그 당시 여자가 임신한 것이 발견되면 사형이었다. 하나님은 그럼에도 제안하셨다. 여기서도 금요철야에 나오신 분들은 믿음의 여인일진대 하나님이 물으신다면 자신 있게 손들 수 있는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제안하신 모험정신은 상상할 수 없는 요구였지만 믿었던 것이다. 순종하고 수용한 것이 마리아인 것이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모험을 요구하실 때 거절하며 살았던 우리이며 가난한 것도 하나님 탓이 아닌 것이다. 시카고 한 교회에 존 오토 버그는 "네가 만약 물 위를 걷는 기적을 얻으려면 배에서 뛰어내려야 한다."라고 하였다. 뛰어내리지 않으면 기적은 없는 것이다. 오늘 이것을 붙잡자. 물 위로 걷고 기적을 경험하고 싶지 않은가? 제가 사랑의 교회를 10년 사역하다가 분당에 개척하려니 죽을 맛이다. 옥한흠 목사는 지혜의 왕이다. 무슨 문제이든지 1분 안에 해결이 나왔다. 정말 안전한 배였다. 생각만 해도 죽을 것 같다. 너무 두려웠지만 사랑의 교회를 뛰어내렸다. 불신앙으로 붙잡고 있는 뱃머리에서 뛰어내리는 결단이 내려지길 바란다. 두 번째는 굉장히 중요한 것인데 모험하되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야 한다. 저는 주일학교 선생님이 원망스럽다. "베드로가 성질이 급해서 물에 뛰어내렸다."라고 망언하였다. 그래서 나중에 알아보니 그것이 아니었다. 주님이 허락하셔서 뛰어내린 것이다.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따른 것이다. 뚜렷한 응답을 가지고 모험하였던 것이다. 남에 성격을 가지고 정말 이상한 주일학교 선생님이었다. 그렇다고 사표 던지라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모험하는 인생 가지고는 불안정하다. 하나님의 뜻도 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냥 뛰어내리면 빠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복된 밤이 되길 바란다. 토레이 박사가 쓴 기도의 능력이라는 책을 보았다. "왜 초대교회에 능력과 말씀의 능력으로 살던 교회가 초라하게 되었는가?"라고 물었다.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정마다 자녀들이 우상이 되어서 죽을 고생인데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하였는데 독일이 신성모독을 사과하라고 벌떼처럼 일어났다. 니체는 신이 죽었음을 증거 할 수 있다고 하였다. 교회를 가리켜 신의 무덤이라고 낭설 하였다. 목사로서 자존심이 상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교회가 신의 무덤이라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으로 간 교회가 포위당했을 때 마음이 아팠다. 분당 우리 교회가 신의 무덤이 아니라고 우리가 보여주자고 외쳤다. 짧은 6년 동안에 기적이 많이 일었다. 뇌종양 걸렸던 형제가 회복되고 자궁암 3기로 절망했던 여학생의 병이 떠나갔다. 수십 쌍에 이혼 가정이 회복되는 역사도 일어났다. 신의 무덤이 절대 아니다. 마치 골리앗 앞에서 싸움질하는 비참한 한국 교회 앞에서 도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가 되어야 한다. 베드로는 분명히 뜻을 구했다. 주님이 허락하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분명히 허락하셔서 나아갔는데 빠져버린 것이다. 창업도 사업도 실패할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알아야 하는 것은 허락을 받아도 낭패와 좌절과 잘못됨을 경험할 수도 있지만 일시적 실수가 절망이 아닌 것이다. 베드로의 몰락이 아닌 것이다. 너무나 작은 파도 앞에서 물에 빠지는 것이 우리 모습이다. 성령님이 우리를 위로하신다고 믿는다. 치료해주심을 믿는다. 우리는 일어날 수 있다. 회복될 수도 있다. 모험정신을 가지되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가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주일설교를 마치고 집에 왔는데 한 자매에게 이메일이 왔었다. 이 분이 결혼을 했는데 폭력을 경험한 것이다. 이혼을 하였다. 그런데 직장 상사가 위로해 줘서 몸을 줬다. 그런데 유부남이었다. 이 여자분이 예배를 드리다 은혜를 받은 것이다. 자신의 옳지 않은 것에 대한 가책을 느낀 것이다. 그 유부남과의 관계를 끝내기로 결단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았다. 그 유부남이 용돈도 준다는 것이다. 정신적으로 감성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도 끊어지지가 않았다. 그 이메일을 읽으며 너무 가슴이 아팠다. 보통 예배가 5부를 드린다. 저는 흥분하면서 드려서 고갈이 빠르다. 그 날은 잠도 안 오고 피곤한데 정신이 말짱했다. 그런데 너무나 단호하게 "끝내여야 합니다."라고 보냈다. 베드로를 안전하게 도와주는 것은 배다. 그런데 예수님은 계시지 않는다. 배에서 뛰어내리면 죽을 것 같지만 그 건너편에는 예수님이 계시는 것이다. 그 유부남과의 관계를 끊으면 죽을 것 같지만 예수님이 계시지는 않는 것이다. 그것을 청산해도 죽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이다. 회개는 배에서 뛰어내리는 것이다. 날마다 우는 것이 아니다. 주님 계시지 않는 그 무엇으로부터 뛰어내리는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죽을 것 같은데 거기에 주님이 계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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