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18 주일예배

Q.T/은혜샘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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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를 보면 정말 말도 안 되는 왕들이 나온다. 유다 왕 중에서 가장 하나님께 반역한 왕이 남 유다에 아하스 왕이다. 북이스라엘중에서는 아합 왕이다. 여기에 므낫세가 등장한다. 산당을 복원하여 우상숭배를 한다. 그의 아들은 므낫세보다 더 악한 길을 걷는다. 그다음 요시야 왕도 마찬가지다. 자식은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하는 통로이다. 당신의 자식들은 믿음 안에서 잘 자라고 있는가? 나를 닮았으면 그런 자녀가 나올 리 없다? 사무엘 같은 신앙에서도 불량한 자식들이 나오는 것이다. 우쭐하지 말고 주님의 은혜와 감사의 말을 해야 한다. 므낫세는 55년을 통치하였다. 그다음 아사 왕이다. 악순환의 패턴은 악을 행하는 것이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의 길을 행한 것이다. 우상숭배로 말미암아 왕국이 쪼개졌다. 우상숭배의 배교는 우민화 정책이다. 우상숭배의 매이는 것은 백성을 감시하고 통제하기에 괜찮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시선을 빼앗는 성행위로 넘쳐났다. 고대 왕의 권력이 절대적이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히 취약하여 반역이 일어났으며 수없이 일어났다. 우상숭배의 길을 가로막는 것은 왕에게도 위험한 선택이었다. 모든 것이 제사 중심이며 재정의 일치를 이루었다. 이 집단의 영향력이 가장 컸다. 그런데 그것을 뒤집는 것이다. 아사 왕에게는 그것이 두려운 일이었다. 예수님도 사두개인의 눈 밖에 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열왕기에서 왕을 소개할 때 어머니를 소개한다. 아사 왕의 어머니는 누구인지 모른다. 그런데 할머니를 소개하는 것이다. 그녀가 살아있는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마하 가이다. 2대에 걸쳐 권력을 장악한 것이다. 아사 왕은 할머니에게는 허수아비였다. 그래서 아사 왕은 하나님께 철저히 순종하며 나아간다. 그는 성전 남창들을 몰아낸다. 아세라를 섬기는 사람들을 몰아낸다. 할머니를 폐위시키고 길거리에 버렸다. 어떠한 타협도 없었다. 선대왕으로부터의 통치기반을 무너트렸다. 이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정직했다. 이런 선택을 가능하게 했던 원인이 무엇인지 열왕기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동일한 역사를 역대하에서는 아사 왕의 일생으로 기록하고 있다. 역대하 15장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사 왕에게 전해진다. 왕과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께서도 버리시는 것이다. 선지자를 통해 말씀을 듣게 된다. 8절을 보자. 예배를 회복하는 아사 왕으로 나온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무엇인지 그의 선왕들이 걸어왔던 길을 뿌리치고 하나님께 돌아갈 근거가 나온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마음인 것이다. 그 어떠한 상황도 넘어서서 섭리에 따라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모하는 것은 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경청하는 태도이다. 아사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지 않았다. 무시하지도 않았다. 그가 들은 말씀을 경청하여 순종하는 것이다. 이것이 개혁이다. 제도를 뜯어고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며 부유하고 힘이 있어도 근본이 변하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만이 그것이 가능하며 붙드는 것만이 가능한 것이다. 그분의 말씀을 담고 순종하려고 몸부림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목장이다. 목장에서 성경공부는 안 하냐고 묻기도 한다. 목장은 성경말씀을 나누는 것이다. 순종하여서 적용한 것을 나누는 것이다. 내 삶의 변화를 고백하고 가정과 교회와 직장에서 행하셨는지 나누는 것이다. 연약함과 실패 속에서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는 것이다. 목장은 정보교환이나 사교모임이 아니다. 스포츠나 경제 같은 화제는 삶의 나눔 시간에서는 안된다. 이런 것을 목장에서 나눌 필요가 없다. 목장 모임에서는 자신의 성경 지식을 과시하지 말자.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감정에 따라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사는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만큼 사랑받는 백성이 없음에도 우상을 숭배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을 아는 것이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 알 수 있으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삶을 위해 헌신하여야 한다. 더 이상 머뭇거리지 말자. 누가 알아주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 시선은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람은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애태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여기 있는가?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받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찾아 전해야 한다. 흩어져야 하는 공동체이다. 교회인 우리를 통하여 소원하시기 때문이다. 교회에도 사역이 많다. 하나 같이 중요하다. 사역에도 우선순위가 있다. 영혼 구원하는 사역에 가까우냐에 따라 틀리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많은 부대가 필요하다. 소총부대, 포병부대, 탱크부대, 보급부대, 행정, 운전병도 필요하다. 그러나 최전선에 병사가 가장 필요하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구령의 사역이 가장 필요하다. 다른 것은 이것을 돕는 역할이다. 목장이 필요한 것이다. 목장이 곧 목회자이다. 여러분의 목회자는 여러분의 목자이다. 그 목자에게 순종하기 바란다. 그것이 사는 길이다. 목원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목자이다. 누구보다도 여러분을 위해 엎드리는 자들이다. 교회 예산에서 선교사역이 최우선인 것도 그 선교가 구령 사역과 연관되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왜 우리 교회에는 성가대가 없는지 묻는다. 성가대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구령 사역과는 크게 연관이 없기 때문이다. 믿음 좋은 분들은 성가대에 가장 많이 가있다. 그러나 거기에 힘을 다 쏟아서 구령 사역에는 닿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는 성가대가 없다. 주변에 탁구 동아리가 보인다. 이것을 탁구 선교회로 고쳤다. 우상이 무엇인가? 우상은 우리를 갈망하게 만든다. 그 우상은 내가 만든 신이다. 애들러라는 사람은 이런 충고를 하였다. "당신이 무엇을 갈망하는지에 대한 질문하는 것을 바꿔라. 당신에게서 최고의 악몽이 무엇인지 질문하라. 혹시 무엇 때문에 절망한다면 그것이 우상이 아닌지 점검해보라."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심이다. 순종이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섭리를 믿는 마음이다. 아사를 통해 놀라운 신앙의 계승을 보지만 이것이 평화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그는 그 땅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봉헌한다. 그런데 그가 살아있는 동안에 늘 전쟁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정말 선하신가? 정말로 이 상황을 섭리하고 계시는가?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지점에서 신앙이 변하고 말았다. 아사 왕이 성전에 금과 은을 끄집어내어 다른 왕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역대기에서는 그것을 평가하는 것이다. 하난이라는 선지자가 등장했다. "아사 왕이 시리아 왕을 의지하였기 때문에 죄악이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미 하나님은 그 눈으로 온 땅을 두루 살피시고 계시는 것이다. 답답한 현실에서도 아사 왕을 비롯하여 백성들도 붙드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는 것이다. 인생의 어떤 위기에서도 하나님을 붙들 수 있는가? 아사의 마음은 한결같았지만 불신의 공격이 멈추지 않았다. 우리 인생에서도 두 가지가 찾아온다. 하나님은 과연 선하신가? 하나님은 주님이신가? 과거나 지금이나 이 두 가지는 우리를 흔들어놓는다. 하나님이 그렇게 선하시다면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는 것인지? 결정적인 순간에 세상의 가치와 가르침이 골리앗이 되어 절망으로 이끌리는 것이다. 이것을 이기지 못하면 온전한 신앙의 길로 가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변화를 일으킨다고 생각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순종하겠는가? 하나님은 언제나 선하시다. "주님의 뜻이라면 어둠 속에 있겠습니다. 주님의 뜻이라면 찬양하겠습니다. 고난 속에서도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옳기 때문이다. 이것이 사모하는 마음인 것이다. 어떤 상황인지 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아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사모하자. 하나님을 끊임없이 주목하고 의식하고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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