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게 하소서
에베소서 1장 17-19절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천지와 사물을 만드신 다음 아담을 만드셨다. 아담에게 정복과 다스림의 복을 주셨다. 사람을 만드셨을 때 모든 것을 준비해 주셨다. 에덴동산은 낙원과도 같은 곳이었다. 그런 낙원을 만들어서 살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과 아담은 아담이 범죄 하기 전까지는 좋은 관계에 있었다.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먹지 않게 하셨다.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축복이 있다. 피조물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셔서 교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선악과를 따먹어서 저주를 받게 되었다. 땅에서 가시나무와 엉겅퀴를 제거해야 먹고살 수 있게 되었다. 여러분은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나길 바란다. 저도 고등학교 때까지 먹고사는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하지만 신학교 들어가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았다. 넘치게 부어 주셨다. 두 번째 저주는 여자가 해산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나빠져서 결국에는 하나님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모르는 저주이다. 노아의 여덟 식구들은 하나님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상숭배를 하였다. 결국 심판을 받았다. 노아의 여덟 식구들은 점점 하나님을 모르게 되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저주인지 모른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면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섬기게 되어 있는 것이다. 예수님 모르는 사람은 전부 우상숭배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아는 것이 얼마나 축복되었는지 모른다. 하나님을 만나야 한다. 하나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야 한다. 성경에 보면 모세가 가장 많이 받았다. 십계명도 받았지만 40일 금식 기도한 후 환상 중에 계시를 받았다. 모세오경을 쓴 것이다. 엄청난 계시를 받은 것이다. 신약시대는 누구인가? 사도바울이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을 보면 받은 계시가 너무 많다고 하였다. 사도바울이 기록한 모든 서신들만 봐도 사도바울은 보통사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마태복음 11장 27절을 보자.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다. 말씀 그대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말씀을 해주셨다. 창세기 12장 1~3장을 보자.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아브라함을 만나시고 놀라운 말씀을 전해 주셨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게 되어 큰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 창세기 12장 4절을 보자.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쫓아갔다. 사도바울은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으로 예수님을 몰랐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였고 스데반에게 돌을 던졌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 주님의 계시를 받았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구나"라고 하였다. 변화하여 새사람이 되었으며 사도가 되었다. 고린도후서 12장 1~7절을 보자. 사도바울의 서신 13권을 보면 사도바울이 받은 계시가 너무 많았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많이 알았다. 너무 좋아서 세상을 배설물과 같이 여겼다. 누가 주님을 가장 신뢰하는가? 주님을 많이 아는 사람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도바울은 자신이 계시를 받아 주님을 아는 것이 너무 좋아 에베소교회 성도들도 그렇게 되길 바랬다. 에베소서 1장 17~18절을 보자. 마음의 눈은 무엇인가? 눈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물체를 보는 육안이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가진 것도 축복이다. 하루만 붕대로 감고 있으면 얼마나 불편한가? 정말 고생이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평생 하면 어떠할까? 정말 감사하길 바란다. 두 번째는 지식의 눈이다. 아는 것이 곧 힘이라는 말도 있다. 지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배움을 통해 가질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배워야 한다. 엉터리로 배우면 엉터리가 된다. 우리나라가 지난 70년 동안 나라가 급성장해서 세계 10번째 나라가 되었다. 정말 놀랍다. 제가 어렸을 때는 소 팔아서 대학을 보냈다. 그 당시 무식했기 때문에 일본에 당했으며 식민지가 되었다. 그래서 공부시키느라 부모님들이 고생하였다. 그런데 뒷바라지가 어려운 사람들은 계속 알바를 해야 했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도 아르바이트했다. 그래야 동생 학비와 용돈을 마련할 수 있었다. 대학교 때는 잠도 못 잤다.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온 가정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렇게 고생해서 공부하였다. 배우고 지식이 있어야만 발전이 있었기에 공부했다. 이명박 대통령도 시골에 살았는데 집이 너무 어려워 청계천 냄새나는 곳에 방을 얻어서 하루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옆에 아저씨가 고려대 들어간 학생의 교과서를 가져다가 "공부해!" 하면서 던져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려대 경영학부에 들어갔다고 한다. 우리가 그렇게 공부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일어난 것이다. 중세시대에 전염병이 돌면 몇십만 명이 사라져 갔다. 그 병이 어떻게 전염되는지도 모르고 누가 매개체 인지도 몰랐으며 예방하는 법도 없었기에 대책도 없이 죽어갔다. 지식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다. 지식이 있어더라면 안 죽었을 것이다. 정말 지식이 중요하다. 6.25 때는 아이들이 불발탄을 가지고 놀다가 그것이 터져서 죽기도 하였다. 무식하니까 그런 일이 벌어졌다. 지식이 이만큼 중요한 것이다. 지금부터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소 미에트 연방을 비롯하여 반 이상이 공산화되었으며 사회 주의화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되면 지상낙원이 된다고 소리쳤다. 학원비, 병원비가 공짜가 된다고 거짓말하면서 모두가 잘 살게 된다고 하였다. 결국 공산주의를 택하여서 모두 다 공산주의가 될 것처럼 말했다. 그런데 70년 만에 모두 거지가 되었다. 똥과 오줌이 차서 발을 밟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땔감이 없어서 벽을 떼 가지고 갔다. 전등도 없어서 전등을 달자마자 없어졌다. 호텔에서 머물렀는데 수도꼭지를 트니 시뻘건 물이 나왔다. 밥도 해줄 수가 없어 완전 거지가 되었다. 그토록 강한 러시아가 왜 그렇게 되었을까? 우리도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불행해지지 않는다. 독재자들이 나와서 국민의 사유재산을 빼앗아 갔다. 농토를 모두 빼앗고 강제노동을 시켰다. 이것은 문제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하게 되었으며 단순 노동을 하게 되었고 일을 많이 하거나 못하거나 세끼 밥만 주었다. 그러니 수입이 없어 일을 하지 않아 의욕을 상실하였다. 북한에서는 배급마저 뺏겨 망하기 일보 직전이다. 사회주의가 왜 망하는가? 사회주의가 되면 노인들이 택시 탔을 때 그 값이 세금으로 나간다. 모든 게 공짜가 된다. 그 돈이 어디서 나오는가? 세금을 걷어야 하는 것이다. 세금이 너무 많아 고생만 하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다. 많은 사람들이 노는 것이다. 놀아도 살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국가에 혜택만 바란다. 병원도 공짜라서 기다리라고 한다. 의사들도 기다리라고만 하고 치료해주지 않는다. 사회주의가 바로 그런 것이다. 공짜 좋아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를 좋아한다. 그냥 공짜라고 외쳐 완전 거지가 된다. 성경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먹지도 말라고 하였다. 죽으라는 것이다. 내가 일하면 남도 살고 남을 도와줄 수 있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많으니 사회주의 수상이 당선된다. 사람은 능력이 똑같지 않으며 다 다르다. 어떤 사람은 50이고 어떤 사람은 20밖에 안된다. 그러니 자유가 없으면 발휘할 수 없어 망하는 것이다. 북한 동포에게도 자유를 주면 금방 일어날 것이다. 자유를 주고 각자 살라고 하면 금방 일어나는 것이다. 그냥 굶어 죽는 것이다. 그만큼 자유가 중요한 것이다. 이 공산주의 사회주의를 반대하면 다 죽인다. 감옥에 쳐 넣고 탄압한다. 그래서 이것이 지옥이다. 이것도 모르고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인간을 불행히 하는지도 모르고 주체사상을 따른다. 이 주체사상과 교회는 공존하지 못한다. 둘 중 하나는 죽는 것이다. 제가 베트남에 가서 깜짝 놀랐다. 얼마나 화려한 도시가 형편없이 되었다. 직접 얘기 들었다. 신부들 중에 목사들 중에 승려들 중에도 공산주의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도와서 패가망신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사람들이 다 죽여버렸다. 공산주의는 거짓말로 시작해서 거짓말로 끝난다. 사람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또 배신한다고 생각해서 다 죽였다. 수십 명씩 집어넣어 처참하게 죽여 버렸다. 공산주의자들이다. 한국도 남한에 공산주의 사람들이 얼마나 날뛰었는가? 북한으로 넘어갔으나 다 죽여버렸다. 우리가 이것을 알아야 한다. 다 죽는 것이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몰라서 그러는 것이다. 지식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마음의 눈이다. 신령한 눈이라고도 하며 영안이라고도 한다. 마음의 눈이 있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아서 경외하며 신뢰하고 사랑한다. 성경에서는 말씀을 듣는 중에 밝아진다고 하였다. 요한복음 4장 25~26절을 보자. 누가복음 24장 30~31절을 보자. 요한복음 20장 11~18절을 보자.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 성령을 통해서도 마찬가지다. 사도행전 7장 55~56절을 보자. 열왕기상 6장 17~18절을 보자. 불 병거가 산 가득히 있음을 엘리사가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눈을 열어 보이게 하셨다. 사도행전 9장 17~19절을 보자. 성령을 통해서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 세 번째는 회개하여서 마음의 눈이 밝아진다. 죄는 마음의 눈을 어둡게 한다. 타락한 사람들은 영적 맹인이다. 회개에 눈물은 죄를 씻어 깨끗하게 한다. 죄는 양잿물로도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회개는 깨끗하게 하여서 영안을 밝게 한다. 마태복음 5장 8절을 보자. 하나님을 볼 수 있는가?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래서 보이지 않으신다. 마음이 청결한 자와 회개해서 죄 사함을 받은 자는 마음의 눈이 밝아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눈이 밝아지려면 회개해서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 소망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이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희망과 소망의 차이가 무엇인가? 희망은 자기가 원하는 것이다. 이것은 될 수도 안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100%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소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가지게 되어 행복하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직접 받았다. 아브라함은 믿기 때문에 승리에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어 그 소망을 가지고 항상 살았다. 그래서 이 소망 때문에 어디를 가던지 단을 쌓았다. 하나님 중심에 삶이다. 두 번째로 장막을 치고 살았다. 왜냐하면 떠나라고 하면 바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믿음은 순종이다. 좋은 집을 짓지 않았다. 언제나 순종하기 위해서 이다. 세 번째는 경건 생활하였다. 항상 "아버지 감사합니다."라고 하였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예수님의 공로로 죄 사함을 받았고 성령으로 구원받았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천국 시민이다. 비록 이 세상이 지만 천국 시민권이 있는 것이다. 언제 죽어도 천국에 간다는 것을 믿고 소망 중에 인내하며 살 수 있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빨리 천국 가기를 바랐다. 그러나 성도들을 위해서 남아있겠다고 하였다. 그래서 이 소망 때문에 옥중에서도 감사하며 기뻐하였다. 무서운 박해 속에서도 담대하였다. 북한에는 지하교회 성도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 생각해보자. 어떻게 숨어서 예배와 기도를 할 수 있는가?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믿음을 버리지 않고 죽을 각오로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이르러 12명에 정탐꾼을 보내 정탐하게 하였다. 그런데 돌아왔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믿음의 말로 들어가자고 하였다. 나머지 10명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였으며 현상만 보았다. 그곳 백성들이 키도 크고 힘도 세 보여 절망의 말로 함부로 말하였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맹세하였다. "네가 나에게 말한 대로 해주겠다."라고 하셨다. 함부로 불신의 말을 얘기하면 안 된다. 언제나 믿음의 말만 하자. 모든 것을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것이다. 우리는 이기는 것이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함이다. 우리는 성경의 말씀을 믿고 외쳐야 한다. IMF 때도 우리 성도들이 복을 받아 수지맞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다. 걱정하지 말자. 죽고 사는 문제가 하나님 손에 있다. 하나님의 마음만 기쁘시게 하자. 하나님이 알아서 해주실 것이다. 아멘. 하나님 앞에 부르심 받은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 것을 믿는다. 그래서 언제 죽어도 천국에 들어갈 것을 믿는다. 그래서 소망을 가지고 산다. 바울과 같이 승리의 생활을 하길 바라는 것이다.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 > 故 정필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19/ 06/ 30 수영로교회 주일 1부예배 (0) | 2024.10.11 |
---|---|
2019/06/09 수영로교회 주일1부예배 (0) | 2024.06.22 |
2016/08/28 수영로교회 주일 1부예배 (0) | 2019.12.05 |
2019/08/25 수영로교회 주일 1부예배 (0) | 2019.11.09 |
2019/08/04 수영로교회 주일 1부예배 (0) | 2019.09.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