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4 수영로교회 주일 1부예배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故 정필도
728x90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장 15~17절

 

예수님의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은 아버지가 나를 보낸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고 말씀하셨다. 택하신 백성들을 위해 예수님을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내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주님처럼 제자들도 창세전에 택하신 백성들을 구원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제자들의 사명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제자의 사명을 저버리고 옛날로 가버린 것이다. 하나님이 창세전에 택한 백성들은 다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택함 받지 않은 사람은 상관없다. 그러나 택함 받은 백성은 사명이 있는 것이다. 천국 가서 영생복락을 누릴 백성은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우리가 아무렇게나 살면 안 된다. 이사야 43장 7절을 보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 이사야 43장 10절을 보면 하나님의 증인과 종으로 택함을 입은 것이다. 21절을 보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택함을 입은 것이다. 정말 중요한 말씀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사명을 모르고 산다. 이것은 목사의 책임이 크다. 은혜를 받고 감동받으면 이렇게 살아야 하겠다는 것이 생긴다. 하나님의 증인과 종으로 택함 받았으니 온 천하에 다니며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데 목사들이 도통 가르치질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망각한다. 그저 무엇을 가질까 입을까만 생각하다가 간다. 실패도 많이 한다. 그뿐 아니라 영적으로 메마르기까지 하다. 사명을 잃으면 심령이 행복할 수 없는 것이다. 참된 기쁨과 평강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도 기뻐하시지 않으며 성령도 탄식하고 슬퍼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낙을 찾으려 해도 만족이 없는 것이다. 절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제가 미국이나 캐나다에 가보면 많은 교포들이 교회를 다닌다. LA에 갔는데 동창들을 만났다. 수십 명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에는 술만 먹던 인간들이 다 교회 나갔다. 집사와 장로도 있었다. 저는 목사니까 예배도 드리고 하였다. 교포들은 웬만하면 다 교회 간다. 왜냐하면 교회 가면 친구가 있으니 그렇다. 예배가 끝나면 국밥과 김치가 나온다. 그것을 먹으면서 서로 한 주간 지낸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그냥 그것이 좋은 것이다. 그냥 그거 먹으러 가는 것이다. 친구 따라 봉사도 하게 된다. 집사와 장로도 된다. 예수님이 누군지도 모르면서 한다. 성경도 읽지 않으며 한다. 예수를 믿어야 기도를 하는데 기도할 줄도 모른다. 급하니까 항상 써가지고 읽는다. 제가 그런 것을 볼 때 마음이 너무 아프다. 겉으로는 반듯하지만 교회가 아니다. 한국에서 신앙생활 잘하던 사람들도 동화되기 마련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질문해야 한다. 자신이 이민 간 목적이 무엇인가? 잘 살아보려고? 명심하자.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한다. 절대 그렇게 살지 말자. 잘 사는 것 같으나 사명을 저버리면 비참해진다. 저의 친구 중에 의사가 있는데 집이 어마어마하다. 1000평 정도 되는 것 같다. 집에 가보니 얘들도 다 나가 있고 부부 둘이 있었는데 청소도 안 해서 지저분했다. "너 부모님에게 얼마를 보내냐?"라고 물었다. 그런데 한 달에 100불도 못 보낸다고 하였다. 아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속으로 "이 죽일 놈아~"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에게 십일조는커녕 100불도 안 보내는 것이다. 도둑놈이다. 제가 알고 보니 집도 빛이고 차도 빛이다. 보험금과 나가는 돈이 많았다. 빠듯하게 사는 것이다. 여유라곤 없었다. 얼마나 고생인지 모른다. 그러니 사는데 빠져있으니 전도고 사명이고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훌륭한 목사님들이 있는 교회들은 다르다. 성도들도 목사님을 닮는다. 성도들이 얼마나 사명에 충성하고 사는지 모른다. 정재훈 장로님 내외분들도 얼마나 유명한지 모른다. 달나라에 가는 로켓이 왜 폭발하는지 원인을 찾은 사람이다. 미국에서도 국방부와 대통령이 모일 때 부르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 분은 죽어도 새벽예배에 참여한다. 새벽 4시쯤에 꼭 예배와 기도를 빼먹지 않는다. 얼마나 집회 스케줄이 많은지 모른다. 이 분이 가지고 있는 컴퓨터로 회사에 지시하고 보고한다. 어디를 가든지 회사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부인은 부인대로 집회한다. 이 분들은 세상 축복도 어마어마하게 받았는데도 선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다. 제가 미국 가면 꼭 호텔을 잡으려 한다. 스데반 집사라도 사도들 못지 않은 것이다. 여러분도 사명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물고기를 잡으러 간 제자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셨다. 주님은 책망을 하지 않으셨다. 물고기 잡지도 못하는 그들에게 배 오른편으로 던지라고 알려주시기 까지 하였다. 기적을 체험하였다. 153마리나 잡았다. 그들에게 구운 생선과 떡도 주셨다. 섬기셨다. 부활하신 주님이 오셔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 자비하심과 인자하심이 크시다.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다. 그런데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하였다. 시몬은 베드로의 본래 이름이다. 나중에 베드로로 지어 주신 것이다. 그런데 왜 시몬이라고 부르셨을까? 주님의 부르심을 받기 이전에 상태로 돌아갔기 때문에 깨우쳐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부르신 것이다. 3년 동안 같이 먹고 자고 일을 하였는데 제자훈련을 시켰더니 물고기 잡으러 간 것이다. 마음이 너무 아프셔서 그러신 것이었다. 이것을 깨우쳐주시기 위해서인 것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3번이나 물으셨다.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 부인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하기도 하였다. 베드로는 저주까지 하였다. 그런데 저의 경험으로는 우리 주님께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강조하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생각된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 때 죽으려고 금식기도 하였는데 사흘째 찾아오셔서 "너는 죽었느니라. 나를 위해 살아줄 수 없겠니?"라고 세 번을 물으셨다. 강조하신 것이다. 의심할 수도 없었다. 세 번 질문하실 동안 여유도 생겼다. "아 주님이 나에게 가까이 오셨구나."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여태껏 제가 살아있다. 제가 서울에 초청받은 다섯 교회를 두고 부산에서 개척하라는 말씀을 주님에게 들었을 때 부산에 갈 생각도 없고 개척할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 수영로교회를 개척하라고 명하셨다. 금식기도를 들어갔다. 사흘 째 목요일쯤 수천수만 이 모이는 환상을 보이셨다. "이 양 떼들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니?"라고 세 번 이상 물으셨다. 주님은 자꾸 말씀하셨다. 순종하도록 강조하신 것이다. 교인이 자꾸 몰려드니 제가 목회를 잘해서 그런 줄 착각하였다. 교인들을 기다릴 때 기도하고 있는데 "네가 해? 내가 하지."라고 책망하셨다. 용서해달라고 하였다. "네가 목회 잘해서 부흥한 것이 아니다. 내가 내 백성을 모아 준 것이다."라고 세 번 강조하셨다. 그런데 예수님의 첫 번째 질문을 보면 "네가 나를 더 사랑하니?"라고 비교하신다. 우리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기 위해선 비교를 좀 해보아야 한다. 내가 돈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는지도 비교해 보아야 하는 것이다. 명예, 생명도 마찬가지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한 질문은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너는 나를 돈보다 더 사랑하니? 명예보다 나를 사랑하니? 생명보다 사랑하니?" 묻고 계신다. 적용하고 실천해야 한다. 우리가 신앙이라고 하는 것은 사랑과 정비례한다. 그래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을 사랑하는 만큼 기쁨으로 산다. 주님을 위해 살다가 받는 고난을 영광으로 안다. 영광스러운 순교자로 죽을 수 있는 사람이야 말로 신앙심이 정말 좋은 사람이다. 사도바울이 그렇다. 로마서 14장 8절을 보자. 죽어도 주를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산다고 할 때 주의할 것이 있는데 가족, 형제, 이웃이 무관심해도 주님만을 위해 산다고 핑계를 대면 안된다. 제일 좋은 것은 가족도 주님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좋다. 아이들도 은혜를 받아 모두 다 고백할 수 있다면 해결되는 것이다. 다 함께 은혜받는 것이 좋은 것이다. 우리 교회에 수영로 여자 신학교가 있다. 훌륭한 교수들에게 교육을 잘 받는다. 그분들 중에 전도사로 발탁이 되어 일을 시작하는 분들이 있는데 제가 이런 얘기를 한다. "그만큼 남편과 얘들을 돌 보지 못할 텐데 교회 일을 하려 할 때 꼭 파송식을 가져라."라고 얘기한다. 가족들이 엄마를 위해 파송을 하는 것이다. 아이들이 엄마를 위해 도우려 하는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도 하게 변하는 것이다. 얘들이 어른스럽게 자라는 것이다. 주님이 길러 주시는 것이다. 얘들에게 시간을 못써서 삐뚤어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다. 수지맞은 것이다. 주님이 길러 주신다. 우리 선교사들도 마찬가지다. 고민이 많다. 선교사 학교도 멀어서 떨어져 지낸다. 선교사들에 대해서 사랑을 많이 베풀어야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돌 볼 시간도 없다. 이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문제가 많다. 그런데 선교사학교에서 아이들이 은혜를 받고 몇 나라 말도 하게 되어 잘 자란다. 취직도 잘 된다. 아이들이 선교사가 된다면 부모보다 나을 것이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살 때 조심해야 한다.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자.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너무나 중요한 말씀이다. 요한일서 3장 10절에 보자. 사도 요한은 마귀에 자녀라고까지 하였다. 사도 요한은 형제를 사랑하는 자라야 구원받은 자이며 형제를 미워하면 살인자요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고 얘기하였다. 요한일서 3장 14~15절 말씀이다. 마태복음 5장 44~45절을 보자. 원수를 악담하는 사람은 마귀에 자녀라는 것이다. 로마서 12장 14절을 보면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저주하지 말고 축복하라고 하였다. 디모데전서 2장 2절을 보면 박해하는 가이사를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하였다. 제가 중국에서도 이런 얘기를 하였다. 시진핑을 위해서도 기도하라고 하였다.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였다. 손 들라고 얘기하였더니 눈치를 보았다. 나중에 얘기 들어보니 교인들이 기도하지는 않는 다고 하였다. 너무 어려움을 주었기 때문이라 하였다. 저는 문재인과 김정은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이 나라를 복되게 하고 잘 살게 하도록 기도한다. 예수님이 박해자를 위해 하라고 하셨기에 하는 것이다. 사도바울과 같이 그들을 위해 축복해줘야 한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렇게 순종한다면 우리는 모든 사람과 화평하며 살 것이다. 로마서 12장 18절을 보자. 히브리서 12장 14절을 보자. 마태복음 5장 9절을 보자. 그들과 화평하면 하나님의 자녀라는 일컬음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하는 자만 할 수 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을 보자. 우리는 무조건 용서해야 한다. 과거를 묻지 말자. 무조건 하자. 어떤 사람은 30년 전 일을 들춘다. 다 용서하고 잊자. 우리 하나님은 과거를 보지 않는다. 언제나 현재를 본다. 지금 의를 행하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과거에 아무리 의롭게 살았어도 현재 악행을 행하면 죽는 것이다. 중요한 것이 지금 어떻게 사는가 이다. 그래서 누구든지 돌이켜서 살기를 원하는 것이다. 저주받고 심판받을 인간들도 돌이켜서 살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의 마음이시다. 다 용서하면서 살아가자. 그런데 형제나 이웃뿐만 아니라 원수들에게까지 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게 해주는 것이다. 모두 다 천국 가서 영생을 누리게 해주는 것이다. 이것보다 최고의 사랑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라고 반복하시며 물으신 것이다. 창세전에 택한 백성을 가리킨다. 우리도 선한 목자가 되어야 한다. 복음을 잘 전하며 가르쳐야 하며 지키게 해야 한다. 마태복음 28장 18절을 보자.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성령을 베풀고 가르치고 지키게 해야 하는 것이다.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다. 먼저 우리의 사명에 충성하여야 한다. 마태복음 6장 33절을 보자. 우리 사명에 충성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을 다 챙겨주시는 것이다. 마태복음 6장 30~32절을 보자.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는 것이다. 내가 책임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런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마가복음 10장 28~30절을 보자. 우리가 복음을 위해 살면 100배의 축복으로 책임지는 것이다. 제가 왜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하는 줄 아는가? 중 고등학교 때 지독하게 고생했기 때문이다. 울부짖으면서 살았다. 낭떠러지 끝에서 기도하기도 하였다. 얼마나 주님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대학교 졸업식 날 "내가 그렇게 너를 묶어놓지 않았다면 네가 이렇게 되었겠냐?"라고 말하셨다.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주님이 하신 것이다. 사명을 감당할 자로 만드시는 것이다. 대학교 졸업하자마자 바로 신학교를 입학하였다. 학생 신분으로 가서 설교도 10번씩 하였다. 제가 아는 강도사는 2000원을 받았는데 저는 18,000원을 받았다. 제가 주의 일을 하니 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전도사가 되어 친구들은 5,000원 받을 때 저는 24,000원에 사택도 받았다. 특별대우를 해주셨다. 세상 걱정과 돈 걱정에서 벗어나 넘치게 주시는 것이다. 할렐루야! 저는 이 부산을 복음화해야 한다는 사명이 있다. 요즘은 평양에서도 집회하는 꿈을 꾼다. 저는 그런 꿈을 지닌 목사여서 부산 전체를 예수 믿게 해야 하기에 매년 해운대 집회를 하고 싶다.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른다. 그렇게 하면 해운대 장사도 잘 되고 구청장도 좋아할 것이다. 하나님도 기뻐하실 것이다. 저는 개척하자마자 그 교회만 보지 않았다. 이 로터리를 다 다니며 "이 로터리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주님은 "너를 위해 준비된 것이 많다."라고 하였다. 제가 충성만 하면 얼마든지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주님의 말씀은 영원한 것이다. 그러니 44년 동안 넘치게 주시고 계시는지 모른다. 쓰지도 못할 땅도 많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말씀하시면 이루시는 것이다. 네 사명을 알고 목숨을 걸고 충성하면 완전히 책임지시는 것이다. 세상일로 걱정하시는 분들도 이렇게 하면 고생을 끝낼 수 있다. 사명을 실천해보시라. 여러분의 삶을 주님이 책임져주시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