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05/ 18 금요부흥회

Q.T/할렐루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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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꾼

 

마태복음 11장 28~30절

 

 

지난해 서울 시내 상당한 규모 교회에 초청되어서 기독교 교육에 대해 강의해 보라고 요청받았다. 젊은 학부형을 모아 놓고 얘기하러 갔었다. 그날 모임을 마치고 젊은 부목사님이 얘기하신 것이 인상적이었다. 바로 전 주에 수련회를 데리고 갔는데 저녁 집회 시작하고 나서 그중에 눈에 띄는 남학생이 들어왔다. 그 아이의 부모는 열심히 섬기는 집 장남이었다. 집중을 못하고 있길래 불러서 야단을 쳤다. 그 아이가 분노가 가득 차서 노려보았다. 그래서 방에서 깊은 대화를 얘기를 하였다. "나는 우리 아빠가 믿는 하나님이 싫습니다. 찬양과 설교도 듣지도 부르지도 않겠다"라고 하였다. 이 아이는 공부를 정말 잘하였다. 그런데 성적이 떨어졌다. 아버지가 야단쳤다. "하나님이 너를 보면 얼마나 속상하시겠냐"라고 호통쳤다. 그런데 이때부터 하나님과 아빠를 똑같이 생각하였다. 하나님이 과연 미워하실까?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중학교 1학년이라 분별하지 못한다. 아빠에 대한 분노가 하나님과 동일시된 것이다. 가정예배가 지옥이었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세운 일꾼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세움 받은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입장이 바뀌지만 우리가 가진 직업도 섬김의 도구인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은 아무 직업이나 가져선 안된다. 우리가 하는 일의 목적은 세상을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구여야 한다. 사회에 나가서도 모든 부분에서 하나님의 일꾼이어야 한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다. 부부로 사는 것도 주의 일꾼인 것이다.

 

"너희는 서로 돕는 베필이 돼라"라고 하셨다. 부부에게 서로 부탁한 것이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조금만 성경을 읽다 보면 곧 깨닫게 되어 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꾼으로 만드시는지 생각해 보자. 첫째가 일꾼의 조건이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10억? 100억? 과연 이렇다면 과역 기독교 교인인지 질문해야 한다.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사도들이 돈이 필요한가? 사도바울도 성도의 헌금과 스스로 돈을 벌었다. 그렇지만 이런 것들이 있다고 하나님의 일이 잘 되는가? 잘 될 수도 있고 안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의 모든 일꾼은 28절에 답이 있다. 아무리 어떤 조건이 좋아도 이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다면 일꾼이 될 수 없다. 예수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모든 사람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이다. 내가 이 짐을 지고 비틀거리는 동안에는 아무리 좋은 여자와 남자를 만나도 한 이불을 덮어도 돕는 베필은 되지 못한다. 결혼하고 사랑해도 마찬가지다. 근본적으로 내 어깨를 짓누르는 이 짐을 누구도 지어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아이의 성적이 떨어진다면 아이와 대화하려고 시도는 안 하고 그냥 짓누르는 것이다. 하나님을 들먹거린다. 부목사가 준 글을 보는데 정리정돈을 잘하는 남편이 나왔다. 남편이 보기에 아내가 맘에 안 든다는 것이다. 항상 남편이 치운다는 것이다. 아내에게 스트레스가 쌓였다는 것이다. 어느 날 아내에게 화가 난 것이다. "당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어?"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느 날 기도 중에 하나님께서 "야 네가 좀 해라. 왜 마누라를 들들 볶냐?"라고 하셨다.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아내를 돕는 자가 되었다. "다 끝났어? 내가 화장품 잠가 줄까?"라고 하였다. 아내를 돕는 자로 바뀌었다. 자기가 변화되었더니 아내가 변했다. 아내가 잠그기 시작했다. 내가 섬길 수 있는 자가 되도록 하시는 것이다. 비판하는 것이 짐인 것이다. 주님이 내려놓게 하시는 것이다. 어느 날 어떤 목사가 시편 23편 1절~6절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ㅁ뭐가 더 필요해"라고 제목이 잘못 작성되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굉장히 괜찮은 설교제목이었다. 그래서 이 제목으로 설교를 다시 작성했다. 우리도 이런 제목으로 질문해 보자. 우리의 문제를 하나님이 해결해 주셔야 된다고 파고든다. 우리 모두에게 파고든다. 그런데 그분이 인도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뭐가 필요한가? 그렇지만 간단치 않다. 왜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인가? 웬 원수인가? 원수가 없는 데로 가고 싶지 않은가. 생각해 보면 사막이 없는 곳이 없는 것이다. 죽음이 가득하다. 곳곳에 원수가 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동안에는 그렇다. 이런 길을 인도해 주시는 것이다. 믿음을 요구하신다. 원수가 있는 곳이건 사막이건 간에 안전한 목적지로 데리고 가는 것이다. 말씀만 하셨지 그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서 짐을 지워주시는 것이다. 죄 짐을 지어주셨다. 이것은 누구도 지워줄 수 없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것을 친히 감당해 주시는 것이다.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면 지금도 딴생각한다. 그 처참한 광경을 생각해 보라.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못 박히는 장면은 너무 리얼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미성년자 관람 불가이다. 버트 러셀은 1960~1970년대에 유명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대해 설명하였다. "여호와라는 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신 것을 두고 어떻게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할 수 있나? 나는 이런 신을 믿지 않겠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달린 모습은 죄의 잔혹함이며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처참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인간이 어디에서 왔나?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하나님을 모르는 인간이면 어떤가? 모든 사람들이 한 꺼풀 벗겨 내면에 들어가면 죄와 어둠이 가득하다. 그것이 성경의 진단이다. 사람을 피상적으로 보기 때문에 그 정도밖에 못 본다. 노무현 대통령과 최진실 씨를 같은 해 보았다. 그 두 분의 죽음은 이렇게 기억한다. 노무현의 절개와 의기를 존경했다. 노무현에게 표를 던졌을 때 장로들이 반대했다. 장로라고 집사라고 표주 자고 해서도 안된다. 그 사람이 저 자리에 적합한지 봐야 한다. 패거리 표는 안된다. 노무현을 종로 3가에서 보았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정치 철학을 존경해서도 아니었다. 그렇게 죽으면 안 되었다. 자살해서는 안되었다. 공고출신이 사법고시를 패스하고 했지만 인생의 무거운 짐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되어도 그런 것이다. 최진실을 보자. 하룻밤 드라마로 천만 원을 벌었다. 그 정도 능력 있는 여자도 자살하였다. 미모를 가져도 국민여배우라는 타이틀도 해결할 수 없었다. 아무도 해결할 수 없다. 오직 예수그리스도만이 지실 수 있는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마음속에 있는 열등감이 있어도 내게로 오라고 하신다. 짐은 계속해서 주어지는 것이며 그리스도께서 짊어지심을 경험해야 다른 사람이 보인다. 무엇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보이는 것이다. 그렇지만 몽땅 져 주시는 것이 아니다. 상당 부분 남겨져 있다. 사도바울을 보라. 걸레처럼 자신을 주를 위해 드렸다. 바울에게 가시가 있었다. 세 번 기도했다. 하나님 앞에 몇 날 며칠을 간곡하게 구했을 것이다. 질병을 낫게 해달라고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응답하지 않으셨다. 바울 자신의 병을 응답하지 않으셨다. 몸이 너무 힘드니 다시 기도했다. 응답하지 않으셨다. 한 번 더 했지만 응답했지만 "노"라고 하셨다. 훗날 그는 "응답하지 ㅇ낳으신 것이 내게 은혜였다"라고 고백하였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수고하고 힘든 짐을 내려놓으면 쉼을 얻는 것이다. 또 멍에가 있다. 결혼은 주님의 아이디어이다. 서로 돕는 베필이 되는 것도 지키면 복이 되는 것이다. 29절에 두 번째 쉼이 있는 것이다. 주님이 내게 지어주신 짐을 짐 어질 때 두 번째 쉼을 주시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여기까지 나아가야 한다. 섬길 때 생기는 것이다. 내 자식을 키우며 하나님의 자식을 키우는 것이다. 여기에는 세상 사람이 알지 못하는 축복의 약속이 있다. 교회 공동체에서 일꾼이 되는 것,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은 쉬운가? 부부간에 마음 내키는 대로 사는 건 편한데 내가 저 인간을 섬겨야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서로 순종해야 하는 것이다. 순종과 사랑 모두 포함한다. 쉽지가 않은 문제이다.

 

서로 돕는 베필이 되라는 것이다. 부모가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어도 효도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수 안 믿는 자와 똑같이 세상을 살지만 전혀 다른 것이다.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너무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예수님께서는 30절에 "내 멍에는 쉽다"라고 하셨다. 우리가 하면 어렵지만 주님의 말씀대로 살면 쉬운 것이다. 어떻게 해야 쉬운 것인가? 천국 가면 쉬운 것인가? 여기에서 살아야 할 것을 다루는 것이다. 29절에 보면 "배우라"라고 하신다. 배우면 쉽다고 하신다. 못 배우면 어려운 것이다. 저는 결혼해서 설거지를 도맡아 했다. 어머니는 "네가 설거지를 해라"라고 조언하셨다. 저는 당연히 해야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그걸 보고 친구들이 자기 안사람과 대판 싸웠다고 하였다. "너는 도대체 왜 그렇게 하냐?"라고 물었다. 저는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배웠기 때문에 쉽게 한 것이다. 부모가 하는 것을 보면 쉬운 것이다. 훈련을 받으러 부부세미나에 간 적이 있다. 서로 마주 보고 "사랑해"라고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 부모가 하는 것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지상에 존재하는 수만 가지 언어 중에서 가장 배우기 어려운 언어는 아랍어라고 하였다. 선교사에게 물어보았다. 그런데 한 반은 영어와 비슷하다고 하였다. 언어학자가 뽑은 그다음 언어가 한국어라고 하였다. 존칭어가 어렵다. 우리는 한국어를 어렵게 배우지 않았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배우기 어려운 한국어를 유창하게 한다. 제가 영국에서 공부를 할 때 식사를 할 기회가 있어 젓가락으로 집어 올렸더니 영국얘들이 놀래했다. 신기해했다.

 

오래된 사람이 되면 배우기가 쉽지 않다. 목사가 안 배우려고 하는 것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배우라는 것이다. 온유, 겸손 갖는다면 이 땅에서 가장 뛰어난 일꾼이 될 것이다. 어떤 부처에 있던 분이 사인을 한번 하면 국민의 세금이 바로 나가는데 마지막 결정할 때 신앙양심을 보고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지혜와 사랑을 갖는 다면 놀라운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수천 년 동안 일하고 계시는 것이다. 한 친구가 꿩 목장 간 얘기를 해줬다. LA에 꿩 목장이었는데 지붕을 열어놔도 도망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꿩에 모자를 씌어놓았다는 것이다. 새는 대가리가 작기 때문에 하늘이 보이지 않으면 날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노아에게 120년 동안 경고하시는 것이다. 살인자, 사기꾼도 포함되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들다가 못 탄 것이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지 못하고 잠든 것이다. 먹고사는 것에 매달리다가 날아오르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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