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머니에 그 아들

Q.T/C.S.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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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5일

 

‘마리아의 찬가’와 히브리 전통 시의 유사성은……문학적으로만 흥미로운 주제가 아닙니다. 물론 차이점도 있습니다. 마리아 찬가에는 저주도, 증오도, 자기 의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담담한 진술이 있을 뿐입니다. 주께서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들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셨으며 부자는 빈손으로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앞서 저는 시편 기자들의 거친 목소리와 성가대 소년 가수의 고음 사이에 아이러니한 차이점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차이점은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갑니다. 다시 한번 고음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한 소녀의 목소리입니다. 조상들의 흠 투성이 기도들을 하나님이 완전히 외면하신 것은 아니라고 흠 없이 선언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고약한 환희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잔잔하고 큰 기쁨만이 있습니다. 그 두 가지를 오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어머니에게 어떤 명예를 돌려야 하는지를 놓고 나누어져 있습니다. 불행한 일입니다. 하지만 누구나 인정할 수 있는 한 가지 진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동정녀 탄생을 믿고, 우리 주님이 육체적으로 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인성을 갖고 계심을 믿는다면(주님이 인간의 몸에다가 인간의 영혼이 아니라 삼위일체의 제2위를 가진 분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단일 것입니다), 그 인성이 인간에게만 물려받은 것이라는 점도 믿어야 합니다. 그 출처는 하나뿐입니다(그 출처에 모든 참된 이스라엘이 압축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예수님 안에 엄한 요소가 있었다면, 그것이 인간적으로 누구에게서 나온 것인지 능히 추측할 수 있고, 그 추측에는 불경한 요소가 전혀 없습니다. 그분의 소년 시절, 이웃 사람들은 “그 엄마에 그 아들이야”라고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이것을 통해 우리는 그분이 어머니에게, 혹은 어머니에 대해 하신 가혹한 말씀 중 일부가 그렇게까지 가슴 아픈 것은 아니었을 거라고 새롭게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그 말을 대단히 잘 이해했을 거라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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