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5 목새벽예배

Q.T/수영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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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 논쟁

에스겔 11장 1~13절

 

하나님의 영광은 지성소에 머무르셨다. 9장부터는 본래의 자리를 떠나 이동한 것이다. 11장 23절에는 성읍 동쪽산까지 나아가셨다. 엘리 제사장과 사울 왕의 모습이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간 모습의 대표적인 것 같다. 하나님의 영광이 모두에게 임하고 일터와 가정에도 임하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의 삶의 하나님의 영광이 늘 임하는 방법을 알아보자. 첫 번째는 하나님은 은혜 베풀기를 원하는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자. 벌써 떠나가야 하는 영광이지만 이들을 떠나지 않고 그 자리에 계셨다. 굉장희 돌아보시고 떠나가시는 것이다. 또 머무르시며 환상을 보여주시며 설명하신다. 회복을 예고하신다. 길어지는 것이다. 저는 아파트 16층에 사는데 나올 때 아이들과 계속 눈을 마주치고 마음으로는 계속 사랑한다는 마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온다. 하나님은 떠나신다. 그러나 떠나고 싶지만은 않은 것이다. 거절감이 아니다. 돌이키면 돌아온다는 것이다. 죄에서 떠나면 내가 돌아 오리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말자. 의심하지 말자. 기억해야 한다. 사랑에 메시지를 기억하자.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기를 원하신다. 너희를 싫다고 하지 않으신다. 사랑의 마음을 기억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며 돌이키는 원동력이 생긴다. 모든 상황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3절을 보자. 집 건축할 때가 가깝지 않다. 지금은 집을 건축할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집들이 이렇게 많지 않은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은 힘들겠지만 우리에게는 기회요 축복이다라고 하는 것이다. 25명 정도가 끌려가지 않았다. 통치자였다. 이 위기에서 나를 고관으로 세우신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서 고민이 하나도 없었다. 무엇을 더 가질 수 있을까? 누릴 것인가? 그런 것만 기대하였다. 3절을 보자. "이 성읍은 가마가 되고 우리는 고기가 된다"라고 하였다. 가마는 항아리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좋은 고기들을 고양이나 다른 짐승들이 건들지 못하게 항아리에 담아서 보관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이 항아리에 고기를 담은 것처럼 우리를 남기신 것이다."라고 해석하였다. 바른 지도자의 모습을 회복하여야 하는데 이들은 끌려간 이들이 죄 때문에 망했다고 생각하였으며 가난한 백성들을 무시하거나 비난하였다. 남겨진 집들과 권세를 자기 것이라고 여겼다. 사람들 중에는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다가 실수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있다. 욥의 경우 자녀와 재산을 다 잃고 있을 때 아내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십시오."라고 하였다. 그런데 욥의 대답은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냐?"라고 하였다. 고난을 받았지만 나중에 더 복을 받았다. 또 기드온의 예도 있다. 미디안의 눈을 피해 포도주 곡식을 타작하는 입장이지만 "하나님께서 이 민족 가운데 새 일을 시작하실 것이다."라고 믿음을 가지고 나아갔다. 자기 관점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은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면 구원에 이르며 자신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하나님의 은혜로 인도하고 만다. 에스겔은 포로로 끌려간 가운데 있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해석하니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실패와 절망 가운데 여호와의 권능이 임하여 현실 속에서 자만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여 은혜 가운데로 나아가게 하였다.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기를 소망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관점과 태도, 비전과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 절망을 소망으로 바꾸는 큰 능력이심이다. 세 번째는 나 자신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이 1차, 2차, 3차 침공 때에 전부 끌려갔다. 25명의 통치자가 남았다. 6절을 보자. 이 사람들의 행동은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시체를 수습했다. 사람들을 벌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교만하게 행동하였다. 2절을 보자.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불의로 악한 꾀를 부리는 자로 여겼다. 자신들이 선인 것처럼 여겼다. 그들의 속 사람은 불의를 품고 악한 꾀로 가득 찼음을 보았다. 사람들의 두뇌는 사실 참 허접하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얘기해도 고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피하기 위해서 조작된 생각을 집어넣는다. 교묘하게 상황을 바꾸기도 한다. 이것은 거짓말과는 다른 것이다. 거짓 기억이 되어 자신의 논리가 되어 강화하는 것이다. 고집이다. 백성의 고관들도 예루 살렘에 상황은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합리화했을 것이다. 이상한 논리로 발전한 것이다. "내가 고기다. 바로 내가 고기였었다. 나를 사랑하셔서 이 자리에 남겨 놓았다. 저 비천한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다. 누리는 것이 죄가 아니다. 착취하는 것이 대의를 위한 것이다." 우리가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것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내 안의 거짓된 자아를 들어내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이 시대의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시킬 수 있는 한 사람이다. 이 시대의 기드온, 에스겔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새롭게 해석하자. 내가 속한 공동체를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게 하자. 하나님의 영광이 가정과 교회와 민족 가운데 회복되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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