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26 올나잇 금요철야예배

Q.T/수영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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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롭다 하심을 받은 복

로마서 5장 1~11절

감사함으로 찬양 329 주 여호와는 광대하시도다

감사함으로 찬양 327 주님 큰 영광 받으소서

감사함으로 찬양 226 그 사랑

감사함으로 찬양 203 그 사랑 얼마나

감사함으로 찬양 415 나는 믿네

감사함으로 찬양 424 주의 나라가 임할 때

감사함으로 찬양 303 그리스도의 계절

감사함으로 찬양 318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감사함으로 찬양 30 한라에서 백두까지 백두에서 땅끝까지

감사함으로 찬양 311 예수 우리 왕이여

감사함으로 찬양 381 세상이 당신을 모른다 하여도

감사함으로 찬양 246 주님과 같이

감사함으로 찬양 409 주 은혜임을

감사함으로 찬양 319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감사함으로 찬양 423 영광의 이름 예수

감사함으로 찬양 5 불을 내려주소서

 

로마서는 복음을 알기 가장 좋은 서신이다. 로마서를 통해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약속한 은혜로 나아가자. 로마서 5장 1절을 보자. 앞에서 "로마서는 모든 사람은 죄인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아무도 그것을 피해 가지 못하도록 하였다. 자신이 처한 공경과 처지를 알지 못하면 복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2가지 방식이 있다. 전도지로 전하는 것이다. 유익을 얘기하는 것이다. "예수를 믿으면 더 많은 것을 얻습니다." 또 다른 방법은 로마서 방식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는 처지에 있습니다."라고 하는 것이다. 로마서 3장 20절까지는 구원받을 수 없는 전무 한자라고 소개한다. 로마서 3장 21절부터는 새로운 하나님의 의를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이다. 믿음으로 그가 내 밖에서 모든 죄를 대속하여 죽음으로 모든 죄를 해결하셨다. 이것이 복음이다. 21절 영어성경에는 '그러나' 접속사가 들어가면서 소망이 전무한데 새로운 길이 열렸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4장 17절에 있다. 아브라함의 고백이다. 자신이 100세가 되어도 몸이 죽은 나무토막 같아도 상황이 좋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믿음이 더 견고해진다. 그것이 바로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인 것이다. 드디어 5장에 와서는 그것이 어떤 복인지 설명한다. 로마서 5장 1~2절을 보자. 세 가지 복이 나온다. 첫째는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한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 전에는 하나님에게 떠나 죽은 자였다. 적대적 관계였다. 모든 불신자들은 진노 가운데 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가운데 있는 것이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 진정한 복이 화평이다. 나아갈 때 기뻐 받아 주신다. 자유와 해방이다. 어떤 상황일지라도 우리는 늘 화평한 관계로 나아와야 한다. 지은 죄가 많아도 나아와야 한다. 사탄의 정죄에 넘어가지 말자. 갈라디아서 3장 26~27절을 보자.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이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전부 갈아입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보이는 것이다. 복음이다. 개별적인 죄를 직접 보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통과하여 보신다. 날마다 의로운 자로 화평 안에 있는 자로 보신다. 누군가 횡당보도를 지나다가 "당신은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하여야 할까? 그분이다. "의인입니다."라고 얘기하여야 한다. 이러면 그분이 "최근에 죄를 지은 적이 있냐?"라고 물어보면 "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죄인이네요."라고 얘기할 것이다. 그러면 우리 교회에 가면 그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속일 것이다. 그때는 "죄를 지은 의인이다."라고 얘기해야 한다. 루터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기가 의인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로마서 1장 17절을 보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의인이면 죽지 않아야 하는데 내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다. 우리는 한 번도 하나님 앞에서 죄인으로 선 적이 없다. 사탄의 정죄와 속임에 넘어가면 안 된다. 하나님과 화평한 관계를 누리자. 우리가 믿음으로 거듭났다는 것이다. 다시 태어난 것이다. 새로운 빛과 세상을 본 것이다. 그리고 자라게 하신다. 연약하고 부족하지만 기도하고 부르짖는 것이다. 우리의 중심이 바뀌었다. 이것이 핵심이다. 죄는 몇 가지 짓는 죄도 죄이지만 이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거절하는 것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나를 의뢰하라." 죄는 아담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우리를 책임져주신다. 잠깐 근심할 수 있지만 돌아와야 한다. 요즘은 너무 덥고 습하다.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 염려한다. 근심한다. 더우면 에어컨과 선풍기를 켜라.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라. 염려 오면 기도하자. 두려움 오면 기도하자. 기도하면서 염려하지 말자. 푸념과 원망하지 말자. 감사함으로 나아가자. 받아주시고 책임져주신다. 생각이 능력이다. 삶과 인생을 바꾼다. 기대할 때 모든 염려가 떠나간다. 절대 망하지 않는다. 못해도 천국이다. 해피엔딩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나아가자. 필립스 브룩스 목사는 "당신에 힘에 맞는 일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에 맞는 능력을 구하라." 하나님의 원대한 비전과 꿈을 보자. 꿈과 비전을 구하자.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에서 끝내지 말고 기도할 때 눈을 열어주시고 보여주시고 능력을 보여주신다. 하나님께 마음껏 쓰임 받자. 죄를 이기고 변화시키자. 화평한 관계 가운데 쓰임 받자. 두 번째 복은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 믿음으로 은혜에 자리에 서 있는 것이다. 들어갔다는 단어는 영어로 들어감의 특권이다. 권세를 얻은 것이다. 들어가는 자리는 하나님의 임재이다. 원래는 못 들어갔다. 아담이 범죄 하여서이다. 아무도 나갈 수 없었다. 하나님을 보면 죽는 것이다. 이사야가 하나님의 옷자락을 보면서 "화로다. 나로 망하게 되었도다." 하였다. 요한계시록 1장에 "부활의 주님을 보자 해와 같이 빛나며 죽은 자 같이 되었다."라고 하였다. 다 죽는 것이다. 지성소에 들어가기만 하면 모든 죄가 해결 받는다. 은혜를 입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휘장을 갈랐다. 모든 사람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특권. 주님은 우리 작은 기도에도 귀를 기울여 주신다. 구하면 들어주시고 응답하신다. 담대함과 확신을 갖자. 요한복음 1장 12절을 보자. 자녀 되는 권세를 주었다고 하셨다. 우리가 자녀이면 그분은 아버지이시다. 그래서 요한복음 16장 23절에 보면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에게 구하면 주시리라."라고 하였다. 구약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없었다. 예수님이 오시자 하나님을 향하여 "내 아버지"라고 하셨다. 늘 기도할 때 내 아버지라고 하셨다. 헬라어에는 아빠라는 단어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바 아버지"라고 하셨다. 아빠처럼 부르라는 것이다. 지금 성경은 아빠 아버지라고 되어있다. 번역해 버렸다. 미국에 장로님들은 기도하실 때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이며 존칭 하시지만 기본적으로 아빠 아버지이시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의 핵심은 '아빠'이다. 기도하라는 것이다. 밤늦게 딸이 들어오면 야단치지만 다음 날 아버지한테 "만원만.."이라고 하면 다 풀어지는 것이다. 우리를 아들 삼아 주신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관계로 구해야 한다. 이방인처럼 하면 안 된다. 다 들어주신다. 이 밤에 기도하면 다 들어주신다. 기도가 안되는가? 기분 탓일 수는 있지만 다 듣고 계신다. 뜨겁게 기도하지 않고 차갑게 기도해도 들어주신다. 자녀가 학교 갔다 와서 뜨겁게 "밥 주세요." 하면 한 대 맞을 것이다. 그냥 구하면 되는 것이다. 구하면 안 들어주시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보다 더 크신 분임을 기억하자. 돈이 필요해서 돈을 달라고 하는데, 하나님 입장에서는 더디 주시거나 안 주시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기도는 타내는 것이 아니다. 신뢰하는 것이다. 형편을 잘 아신다. 신뢰를 키우자. 간구하자. 형식으로 배우지 말자. 금식하면 받는다? 이렇게 해서 받는다고 하면 속는 것이다. 성령으로 충만케 되자. 상황은 어렵고 부재하신 것 같지만 그분의 평강 안으로 들어가자. 세 번째 복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나아가면 다 받아주시고 자녀의 목소리를 다 들어주시지만 더 즐거워하는 것이다. 마지막 때의 영광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 영광을 경험한 자는 생명을 드리는 것이다. 순교하는 것이다. 스데반이 순교할 때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남의 일이라고 감흥이 없지만, 죽을 때까지 맞는 것이다. 돌이 산이 되도록.. 그것을 감당하는 것이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것을." 그 고통이 고통이 아닌 것이다. 로마서 8장 18절을 보자. 그 영광을 보자. 더 나아가면 갈수록 사모하자. 이 땅에 반짝이는 보석이 빛을 잃을 만큼이다. 마라나타를 늘 부르자. 신랑 되신 주님이 오실 때 그 환희와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것이다. 말씀을 느낌으로 받지 말자. 다 날아간다. 말씀은 능력이다. 수많은 일들이 있을 때 붙들자. 의심과 염려가 닥쳐오지만 되네이자. 이 말씀을 믿자. 이 땅에 마음을 두지 말자. 성령의 검이 되어 사탄을 무찌를 것이다. 3가지 복을 생각만 해도 너무 좋지만 삶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환란과 시험이다. 로마서 5장 3~4절을 보자. 우리는 환란 속에서도 즐거워한다는 것이다. 환란은 이 땅을 살기 때문에 겪는 것이다. 시험과 조롱과 멸시가 있다. 그러나 이 가운데도 즐거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환란이 인내를, 인내가 연단을 만들어 낸다. 검증단 신앙인격을 연단이라고 한다. 시험을 통과하면 검증된 신앙인격이 나오는 것이다. 토기를 200도로 구우면 옹기가 된다. 이것은 쉽게 깨진다. 유약을 바르고 500도부터 1200도까지 높이면 유액이 진흙과 연합하여 화학적 변화로 크리스털로 바뀐다. 단 하나의 틈새도 생기지 않는다. 백자가 된다. 청자가 된다. 연단하여 깨끗하게 만드시는 것이다. 우리를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시고 피할 길을 내실 것이다. 환란이 안 계시는 분 있는가? 환란이 올 것이다. 더 큰 은혜가 있음을 믿자. 혹 내가 넘어지지 않을까 생각되면 5장 5절을 보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다 부어지는 것이다. 예수를 믿는 순간 다 부어진다. 언제 하나님의 사랑이 부어졌는가? 최악일 때, 나 만을 위하여 마음껏 살 때, 사방이 다 막혔을 때 우리를 위하여 부어주시는 것이다. 5장 8절을 읽어보자.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내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자기희생이다. 주님이 죽으신 것이다. 우리를 위하여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죽이심으로 죄를 사하신 것이다. 어제 어떠한 상황이든지 그냥 받아 주실 것이다. 아버지 노릇해 주실 것이다. "나를 의지하라. 내가 책임져 주리라." 그 영광에 압도당하여 살게 될 것이다. 그 은혜를 향유하고 누리자. 기뻐하고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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