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으로 찬양 319장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말씀하신 것 중 하나가 "다 이루었다"이다.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들을 영생을 주시기로 하셨는데 죄가 많았다.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기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을 3년 동안 특수훈련을 시키셨다. 마지막 졸업을 하기 위해서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그 시험은 예수님이 십자가 지실 때 통과해야 하는 그것이다. 그러나 도망가거나 베드로는 3번 부인하였다. 부끄러운 일이었다. 왜 그들은 졸업장을 받을 수 없는가? 오늘 본문에서는 물고기를 잡으러 갔다. 제자 되기를 포기하고 물고기나 잡으러 가자고 하였다. 기가 찰 일이다. 부름 받기 이전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셨다. 요한복음 20장 21~22절을 보자. 제자들의 행동을 보면 참으로 실망스럽다. 부활하신 주님이 "너희들을 이 세상에 보내노라."라고 파송하였다. 그리고 성령 받으라고 하였으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았다. 물고기 잡으러 갔다. 요한복음 21장 2~3절을 보자. 어부들도 아닌데 물고기 잡으러 따라간 내용이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음에도 제자에 사명을 망각한 것이다. 이 제자의 모습은 성령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의 모습과 동일하다. 사명을 다하도록 교육과 훈련을 시키면 전부가 다 헌신하지 못하며 소수만이 그 사명에 따른다. 용기가 부족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사람은 자기 스스로 부족하다고 판단한 사람도 있다. 이런저런 부정적인 이유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다. 핑계는 쓸데없다. 사탄의 속임수이다. 이 세상에 죄 없는 사람은 없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로마서 3장 10절 말씀이다. 자기는 남보다 의롭다고 여기는 사람은 골치 아픈 문제아이다. 남보다 깨끗하거나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은혜를 못 받은 것이다. 미숙아와 같은 수준이다. 왜 제가 이렇게 얘기하느냐 하면 자기 죄를 모르기 때문이다. 은혜를 받으면 이 세상에서 자기보다 큰 죄인은 없다고 느낀다. 은혜받을수록 죄를 깨닫고 겸손해진다. 사도바울을 보자. "나는 죄인 중에 괴수다."라고 하였다. 결혼도 안 하고 주를 위해 순교하였다. 은혜받은 사람은 자기 자신이 죄가 많고 누구보다 죄가 많은 괴수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은혜를 받으면 주님의 사랑을 깨닫는다. 특별히 십자가에 사랑에 대해 생각한다. 그 사랑. 은혜받은 사람은 감사하고 기쁨이 충만하며 사랑의 마음을 깨닫는다. 사명을 가진다. 이사야 43장 7절을 보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되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을 보자.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잊고 살면 안 된다. 장사하시는 분도 돈 벌기 이전에 하나님께 영광을 위해 먼저 구해야 한다. 공부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해야 한다. 뭘 하든지 이렇게 해야 한다. 이사야 43장 10~11절을 보자.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다고 하였다. 증거 하는 증인이다. 하나님의 종이다. 이사야 43장 21절을 보자. 찬송하게 하려고 지었다고 하였다. 찬양을 많이 하자. 하나님이 원하신다. 염려하든지 기뻐하든지 찬양해야 한다. 저는 걸어가면서도 찬양을 불렀다. 찬양하는 중에 성령이 임하며 받으신다. 은혜를 받으면 반드시 변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이다. 성령의 권능으로 증인이 되는 것이다. 한심한 제자를 보자. 요한복음 21장 3절을 보자. 물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하였다. 밤새도록 애를 썼다. 피곤하고 지쳐있었다. 한 마리도 못 잡았다.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절대 주권이 하나님에 손에 있음을 깨닫게 하신 것이다. 우리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에 손에 있는 것이다. 아무리 물고기 잡는데 기가 막힌 베드로라 하여도 축복이 없으면 하나도 못 잡는 것이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을 많이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이 축복하지 않으시면 고생만 하고 헛수고를 할 수 있다. 겸손해야 한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셔야 한다. 겸손하게 무릎을 꿇자. 의지하자. 하나님의 뜻 대도 살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일이 잘 되기 바라기 이전에 뜻을 알기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것이 정말 중요하다. 마태복음 6장 33절을 보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그것이 먼저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한다. 제자들의 사명은 사람을 낚는 것이다. 구원하는 것이다. 영적으로 구원하는 것은 멸망의 구덩이에서 건지는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은 그것을 져버리고 물고기 잡으러 간 것이다. 만약 물고기가 잘 잡혔다면 매일 잡으러 갔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허용치 않은 것이다. 요한복은 21장 4절을 보자.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알아보지 못하였다. 주님이 오실 줄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주님이 이 시간에 오신 것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요한복음 21장 5~6절을 보자.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고 하셨다.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건질 수 없었다. 주님 인지도 모르는데 순종을 하였다. 153마리나 잡고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베드로는 밤새토록 그물을 던졌는데 안되었지만 주님 말씀에 순종하니 그것이 이루어진 것이다. 100% 불가능한 일도 주님께 순종하면 100% 되는 것이다. 불가능이 없으시다. 전지전능하시다. 요한복음 21장 7절을 보자. 베드로가 주님이라는 말을 듣고 바다로 뛰어내렸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는 사도 요한을 가리킨다. 이것은 은혜받은 사람의 고백이다. 누구나 은혜를 받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느낀다. 은혜받을 때 왜 기쁜지 아는가? 주님의 사랑이 크기 때문이다. 남들이 볼 때는 하나도 잘 되는 것이 없는 것 같지만 은혜받은 사람은 너무 감사한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래서 자신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한 것이다. 기쁨과 감사, 주님 사랑하는 마음이 불 같이 뜨거워진다. 그래서 기쁨으로 섬기며 십자가를 진다.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즐겁게 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에서 얻을 수 없는 참 행복을 누리는 것이다. 또 중요한 것은 주님 얘기에 한 달음에 물속을 뛰어든 베드로이다. 3번이나 부인하였고 도망하였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보기 위해 뛰어든 것이다. 그 마음이 얼마나 착잡하였는지 알 수 있다. 너무 기뻤을 것이다. 버림받아 마땅하지만 주님은 변함이 없었다. 그 자리에 오신 것이다. 그래서 헤엄쳐서 왔을 것이다. 죄책감과 좌절감에 있을 때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할 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신다고 생각해 보자. 얼마나 황홀한 것인가. 주님을 붙잡은 손을 놓지 말자. 세상에 속아 넘어가지 말자. 주님의 손은 영원히 놓지 않는 것을 기억하자. 히브리서 13장 5~6절을 보자. 결코 너희를 떠나지 아니한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변함이 없으시다. 결코 버리거나 떠나지 아니하신다. 믿어야 한다. 그러면 낙심과 절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 돌아오게 되어있다. 이 믿음을 가지면 마귀가 무슨 얘기를 해도 사탄에게 선포할 수 있는 것이다. 요한복음 21장 9~10절을 보자. 숯불이 있고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다.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주님이라고 묻는 자가 없었고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셨다. 머릿속에서 상상을 해보자. 얼마나 주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셨는지 알 수 있다.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제자들의 피곤과 배고픔을 아시고 그렇게 하신 것이다. 섬기신 것이다. 못된 인간들인 제자를 말이다. 주님은 우리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더 좋으신 분이다. 절대 절망하지 말자. 낙심하지 말자. 요한복음 21장 11절을 보자.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물고기가 153마리였지만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다.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순종하였다. 우리도 무조건 순종하자. 따지지 말자. 주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자. 기적이 일어난다. 기적을 체험하면 얼마나 행복한지 아는가? 전능하신 말씀이구나. 불가능이 없구나. 얼마나 믿음이 확실해지는지 모른다. 언제나 주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자. 마태복음 28장 18절을 보자.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님에게 주셨다. 심판과 생사화복이 주님에게 있다. 항상 바라보자. 낙심되거나 하면 그럴 때는 부르짖자. 시편 50편 15절을 보자.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란 때 기도하자. 간절히 기도하자. 은혜를 받으면 믿음이 생긴다. 기적이 일어난다. 그래서 이것을 얘기하다 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오늘 본문은 정말 중요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확실하게 부활하심을 증거 하는 것이다. 부활하신 몸이 어떻게 다른가도 보여주신다. 못 박힌 상처도 그대로였다. 제자들에게 와서도 식사하셨다. 시공을 초월한 행동도 있다. 노크도 하지 않고 들어오신다. 또 예수님은 숙식 걱정도 없으셨다. 자거나 하지도 않으신다. 부활하신 주님이 어떻다는 것은 짐작할 수 있다. 늙거나 병들거나 죽는 몸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몸으로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신다. 때가 되면 오실 것이다. 죽은 성도들이 부활해서 올려질 것인데 그 몸은 온전한 몸으로 변화된 모습일 것이다. 주님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4~17절을 보자.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하였다. 살아있는 사람이 주님을 보게 되면 과거에 죽은 성도들이 주님과 함께 오는 것을 보는 것이다. 주님이 오셨을 때 어떤 사람을 가장 기뻐할까? 주님이 승천하실 때 얘기하신 것? 온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실 것이다.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이다. 구원하게 하는 사람을 가장 귀하게 여길 것이다. 주님의 명령은 모두가 지켜야 하는 사명이다. 순종하고 결단하자. 머뭇하지 말자. 머뭇하면 성령세례를 받지 못함이다. 성령은 예수님을 증거 하신다.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증거 하는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우리가 성령의 세례를 받고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주님을 위해 살다가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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