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03/02 수영로교회 주일예배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이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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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시대의 영적 비밀

 

로마서 11장

찬송가 505장 온 세상 위하여

 

바울은 이스라엘에 계속적인 관심을 보인다.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을 보인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을 불러 내신다. BC 2100년이다. 아브라함이 사실 이슬람과 유대교와 기독교가 모두 추앙하는 인물이 되었다. 또 요셉이 총리가 된 것을 기억하자. 총리 된 아들 때문에 야곱이 이주를 한다. 히브리 민족은 번성한다. 200만 정도로 늘어난다. 바로의 폭정이 시작되며 노예생활을 한다. 400년 동안 그렇게 된다. 모세를 불러서 출애굽 하게 하시고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시며 가나안으로 이주하게 하신다. 사울을 세워서 이스라엘이 국가에 면모를 가진다. 그러나 긴 역사를 가지지 못하고 남북이 갈라진다. 북은 앗수르에 무너지고 남쪽은 바벨론에 멸망한다. 예루살렘을 재건하지만 AD 70년에 함락되며 사라진다. 유럽과 아시아로 흩어진다. 디아스포라들은 유랑에 세상을 보낸다. 학살도 당한다. 1967년부터 본토로 돌아와 땅을 관할한다. 1948년 이후 전 세계에서 모여들지만 아직도 많지는 않다. 4000년에 역사이다. 독특하다. 몇 번 사라졌다가 나타났다. 2000년 동안 역사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우리는 세계 어디에서나 유대인을 만나보면 표가 날정도로 정체성이 확고한 것을 볼 수 있다. 유대인은 역사의 중심부에 있다. 노벨상 수상자의 30%가 유대인이다. 미국 돈줄의 실세도 그러하다. 역사에서 알려진 예수님이 유대인의 혈통으로 나왔다. 공산주의 혁명가 칼 막스, 정신주의 학자 프로이트,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이 유대인이다. 하나님이 도구로 사용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유대인의 덕을 많이 봤다. 구약을 여전히 읽고 있다. 신약을 해석하는데 구약이 필요하다. 바울은 9장에서 11장까지 구원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11장은 이스라엘이 어떻게 될 것인가의 관해서 다룬다. 바울은 질문을 던진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는가?" 자기 백성은 이스라엘을 말한다. 구약의 이스라엘이 신약의 해석에 의해서 교회로 끝난다면 간단해진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혈통적 국가를 다루기 때문에 점검해보아야 한다. 바울은 버리지 않으셨다는 믿음을 드러낸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시지 않는다는 확신을 가졌는데 자기 자신을 예로 든다. 베냐민 지파인 자신을 버리지 않으셨기에 마땅히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확신한다. 이스라엘 전체를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엘리야 선지자를 얘기한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 탄식할 때 남은 자가 있음을 알려주신다. 절망적이지만 칠천 명을 남겼다고 얘기하신다. 남은 자가 있느니라. 남은 자는 성경에서 매우 중요하다. 구원하시기로 작정된 자를 남기시는 것이다. 남은 자를 두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바울을 부르신 것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은 바울을 부르시고 열두 제자를 부르신 것이다. 많은 유대인이 하나님을 믿었다. 남은 자가 얼마인지 누구인지 모르지만 구원을 베푸시는 것이다. 남은 자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구원의 계획을 가지시고 당신의 구원을 이루실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흑암의 땅이다. 사실 북한에서 내려온 분들이 남한에 많은 교회를 세웠다. 남은 자를 두시고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것이다. 선교사의 말을 들었다. 중국에서 지하교회들이 일어나고 있으며 1억 명 이상의 그리스도인을 추산하고 있다. 남은 자이다. 분명한 것은 어디든지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이다. 기억할 것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은혜의 원리는 나타나는 것이다. 엘리야가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할 때 칠천 명이 있었다. 하나님의 구원 섭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겉으로 보기에는 예수 믿지 않을 것처럼 보여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가족 전도가 쉽지 않지만 포기하지 말자. 남은 자가 있을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기도할 때 돌이켜 주실 줄 믿는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도록 두셨지만 망하지 않도록 하셨다. 구원이 이방의 나라로 넘어가게 하셨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면서 이방인들이 받아들이게 하셨다. 시기심을 일으키신 것이다. 하나님의 이방인들이 수에 차면 유대인들이 주께로 돌아올 것이다. 반드시 이스라엘에도 일어나게 하실 것을 말하는 것이다. 버리지 않으시고 건져내실 것을 말하신다. 이방인들 가운데도 유대인들을 비방한다. 구원을 얻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비난한다. 구원을 받은 우리가 이스라엘인이 된 것처럼 말한다. 하나님의 사명을 기억하자. 우리가 잘 믿음으로 이스라엘인이 시기를 일으켜 믿는 것이다. 성경 안에 역사는 유대의 역사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 우리가 듣게 된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전도를 하고 나서 교회를 잘 나오지 않는다고 비난한다면 썩 좋은 태도가 아니다. 그 때문에 전도되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연민에 정을 가져야 한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기도해야 한다. 기독교 역사 속에 참된 복음 안에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으로 유대인에게 시기심을 일으키지 못함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잘 믿어서 그들이 시기심을 일으켜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뿌리는 여전히 이스라엘에 있다고 한다. 다만 이방인들에게 접붙여져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에게도 이스라엘처럼 곁길로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은혜를 구해야 한다. 원가지가 부러졌다면 접붙임 당한 가지는 더 그럴 수 있는 것이다. 참 감람나무가 회복되는 것은 더 쉬울 수 있다.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온다면 더 강력한 구원의 역사가 일 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구원은 신비의 영역이다. 이방인의 수가 차기까지 완고한 상태로 있을 것이다. 이방인들의 수가 찰 때까지 완악한 상태일 수 있다. 그 수가 차면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꺾이는 것이다. 언제인 것인지? 비밀 중의 하나이다. 26절을 보자.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으리라. 온 이스라엘이 누구인가? 논쟁거리이다. 이방인의 수가 찼을 때 온 이스라엘은 누구인가? 영적인 이스라엘을 말한다고도 한다. 또 다른 해석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말한다고도 한다. 이스라엘의 개인적인 성도수를 말한다고도 한다. 백 투 예루살렘을 말한다. 세례 주의자들의 주장이다. 회심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풀기 어려운 비밀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런 정도의 수준으로 끝내며 결론을 유보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가장 건전한 해석은 국가적 회심이 아니라 믿음으로 반응하는 사람만 해당하는 것으로 알면 된다. 강력한 회심의 사건은 확실하다. 지금 이스라엘의 구원의 역사가 일고 있기는 하다. 많이 돌아오고 있다고 한다. 이스라엘 영토에 있지 않은 디아스포라도 회심의 역사가 일고 있다. 이것은 비밀이다. 신비이다. 다양한 해석과 견해가 난무한다. 이단도 마찬가지다. 14만 4천을 끼워 맞추어 종말과 연결시킨다. 그러나 비밀은 비밀로 두어야 한다. 답을 만드려 하는 것은 위험하다. 바울도 침묵한다. 로마서 11장 마지막을 보자. 33절이다. 바울은 결론으로 자신도 모르겠다고 하고 있다. 34절을 보자.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다 안다고 떠드는가?"라고 하였다. 이단들이 일어나고 있을 때 유의해야 한다. 마치 풀어 해석하지만 속임이 있는 것이다. 누가 알 수 있는가? 교만이라는 것이다. 바울 자신도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다 아시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하나님이 알려 줄 의무가 없는 것이다. 비밀을 알려주셔도 알아들을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찬양을 드려야 한다. 예배이다. 예배하는 일이 우리의 일이다. 구원의 궁극적 목적을 믿고 영광을 돌려야 한다. 주로 말미암아 돌아가는 것이다. 모든 것이 목적에 따라 역사를 움직이신다. 하나님의 역사에 손 끝을 바라보는 겸허함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맡기며 겸손하게 살아가자. 남은 자를 일으키시고 계신다. 이방의 역사가 다 찰 때 유대인을 구원하시며 역사를 종료하실 것이다. 신실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믿고 구원을 이루어가시는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올려 드리자. 남은 자를 일으키는 일에 몰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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