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함을 포장하지 말라
마태복음 26장 30~35절
감람산은 어디일까? 예수님이 기도하기 위해 자주 들르신 곳이다. 주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밤인 것이다. 주로 대화 상대는 베드로이다. 주님은 곧 일어날 일을 얘기하신다. 마태복음 26장 31절을 보자.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예언하는 것이다. 32절을 보자. 두 가지 예언이다. 부활과 배반이다. 주님은 임박한 죽음뿐만 아니라 부활 사건 이후도 다 알고 계신다. 제자들이 다 도망할 것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성품 가운데 하나는 미래를 전부 알고 계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이다. 아주 민감하게 반응한 사람이 베드로이다. 베드로가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모두 주를 버릴 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 굉장히 강조하고 계시는 것이다. 베드로가 좀처럼 물러서지 않았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베드로의 무지함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주님은 이미 십자가의 대하여 얘기한 적이 있었다. 베드로는 자기를 무시한다고 생각하였다. 주님이 자신들의 대한 대우가 야속하다고 여겼다. 그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 괜찮은 사람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베드로는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전혀 모르고 있다. 오히려 주님이 오해하고 있다고 여겼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지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스승이 몰라주는 것에 배신을 느끼는 것이다. 자신이 혼자 그러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의 의도를 간파하지 못하였고 자신을 변호하기에 급급하고 있다. 자기중심적인 해석을 하는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기준에 맞추기에 급급하다. 베드로는 초첨이 자신에게 있는 것이다. 자기 확신과 신념, 자신감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무지가 벗겨져야 한다. 내 실체를 올바로 알아야 하는 것이다. 얼마나 나약하며 망가지기 쉬운 존재인가 말이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은혜를 받는 것은 나를 발견하는 것이다. 왜 교만할까?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교만함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아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철학도 얘기한다. "너 자신을 알라!"라고 말이다. 자신의 무능도 모르는 것이다. 자기 실력을 모른다. 내가 한 말에 책임 질 능력이 없는 것이다. 자신은 다르다며 과신하고 있다. 감당 못할 약속을 하는 것이다. 자신의 의지로는 전혀 할 수 없는 것이다. 곧이어 형편없이 깨지는 베드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베드로의 고백은 위선적인 것은 아니며 진심이 담겨있기는 하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있으며 그는 의리의 사람이었다. 예수님을 보호하기 위해 칼을 꺼내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자신의 마음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의지만으로도 안된다는 것이다. 우리도 헌신과 충성을 가진다. 서약식도 가진다. 송구영신 때 은혜가 넘친다. 연초마다 결단한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철에도 영적 리듬이 잘 깨진다. 큐티책을 열어도 보이지 않는다. 기도생활도 쉽지 않다. 새벽기도도 빠진다. 마음은 원해도 육신이 약하다며 안위한다. 중요한 것은 내가 대단한 존재가 아님은 아는 것도 은혜인 것이다.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베드로는 모르는 것이다. 내가 아무것도 아님을 발견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종교는 내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쌓아가는 것이다. 자신을 강화하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하였다. 그 안에 허구와 거짓, 위선이 쌓아져 있었다. 베드로는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많이 헌신하였는지를 강조하는 것이다. 모세는 이를 깨닫기까지 40년이 걸렸다. 도망가서 미디 암 광야에서 40년을 보냈다. 무능한 존재인지 깨달았다. 이처럼 자기 부인이 어려운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어떤 상태에 있는 존재인지 알아야 하는 것이다. 자신의 실체를 정확하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언제 나를 발견할 수 있는가? 완전히 깨져야 하는 것이다. 성공을 통해서는 발견할 수 없다. 어느 날 그 성공의 끝에서 실패가 찾아올 때 깨닫는 것이다. 성공은 자신을 가리는 것이다. 젊은 날에 성공은 좋지 않다. 얼마나 깨지기 쉬운 존재인지 깨달아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믿으며 착각하는 것이다. 자신의 무능과 약함을 드러내지 않기 원하겠지만 결국은 깨지는 것이다. 아직 숨기기 바쁘다면 아직 멀은 것이다. 간증하고 나서도 실수할 수 있다. 시험이 찾아온다. 간증한 것이 부끄러워질 만한 사건이 찾아온다. 초신자는 조심해야 한다. 들뜨기 때문이다. 어느 날 보면 수렁에 빠져 있다. 허우적거린다. 장담하면 깨진다는 것을 명심하자. 강점이 약점으로 변하는 것이다. 세상적 자신감을 박살 내버리는 것이다. 은혜는 성령이 역사하심으로 찾아온다. 중요한 것은 나의 무능을 인정해야 하는 것이다. 나를 믿을 수 있는가? 누군가 큰소리를 치면 믿지 말자. 어떤 사람은 담배를 끊겠다고 얘기하고는 다시 핀다. 어떤 사람은 악습을 끊지 못하고 그렇게 끝나고 만다. 한 번은 선교 가서 굉장히 신실해 보이는 형제가 있었는데 서로 나오다가 담배를 피우는 그와 마주쳤다. 서로 깜짝 놀랐다. 열심히 헌신에 앞장서는 형제였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 친구를 안았다. 그 친구가 울었다. 유학 생활하면서 힘들어서 그랬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봉사 잘하는 친구지만 절망이 있었던 것이다. 은혜를 받고 교회를 다니지만 여전히 무너지는 자신이 얼마나 미울까? 주님은 제자들을 너무 잘 알고 있다. "너희들 실력으로는 안될 것이다."라고 얘기하신다. 결정적인 순간에 무너지는 인간의 실체를 꿰뚫어 보시는 것이다. 성경을 보면 우리 스스로는 소망이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선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훈련과 교회 다닌 세월이 많아도 연약함이 묻어난다. 하나님 말씀을 들은 시간도 어마어마하다. 심지어 어떤 교역자에 노트에는 제가 설교한 내용을 적은 내용만 6,000페이지가 넘어간다. 늘 초신자에 심정으로 나아가야 한다. 자신만만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리 주변에서도 탄식하는 소리가 들린다. 사람을 보면 안 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실수가 많았다.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고 종인 하갈을 통하여 이스마엘을 낳았다. 자기 아내 사라도 뺏길 번한 사건이 두 번이나 있었다. 다윗은 어떤 존재인가? 기가 막힌 하나님의 사람이지만 더 이상 용맹스러움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것이 인간인 것이다. 조금 나간듯하지만 유치해진다. 더 이상 소망이 없는 것이다. 32절을 보자. 주님이 부활하시고 나서 제자들보다 갈릴리로 가신다고 하신다. 그것은 주님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도망한 곳이 갈릴리라는 것이다. 도망간 제자들을 만나고 회복시키기 위함인 것이다. 베드로와 그의 친구들이 디베라 바다에서 물고기 잡을 때 먼저 가서 기다리시는 것이다. 주님에게는 가슴 아픈 순간인 것이다. 그때에 제자들이 지켜주고 해야 하는데 전부 도망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간들을 바라보시며 미워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로 나아가시며 일으켜주시는 것이다. 오늘 그 실패한 제자들에게 다시 시작함을 얘기하시는 것이다. 놀라운 은혜가 배어있는 것이다. 이것은 자비와 은혜, 용서와 사랑이며 회복의 복음이다. 여기에 소망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늘 깨어지고 넘어지지만 소망이 있는 것은 회복시켜주시는 은혜의 주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랑할 것이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모습을 아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을 믿는다. 우리가 용기를 얻는 것은 이것 때문이다. 마음이 순수해서도 아니고 능력도 없는 것이다.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가? 우리의 몸과 마음이 연약한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하루만 잠 못 자도 헤맨다. 밤샘 철야도 매주 하고 싶지만 약하다. 누가 지나가다가 한 마디만 실수해도 잠도 못 잔다. 아침에 영적 충만하다가도 밤에는 마귀 사촌으로 변한다. 예수님도 40일 기도 후 시험이 찾아왔다. 마귀가 찾아왔다. 예수님은 이기셨다. 부흥회 참가했다가 부부끼리 싸운다. 엘리야는 불에 사자였지만 죽기를 구하였다. 40년 동안 교회에 개근해도 소용없다. 개척교회 100개를 세워도 소용없다. 선 줄로 여기면 넘어질까 조심해야 한다. 무엇에 자신 있는가? 하나님은 인간적 자랑을 큰소리치지 말라고 하신다.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 강점이 약점이 됨이다. 자신감이 수치로 바뀐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을 보자. "네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바울은 당당하게 약함을 자랑하였다. 약함으로 감사하자. 너무 잘나서 망하는 것이다. 때로는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 약점을 이용하시며 고통을 허락하신다. 약함에 집중하면 안타까울 수 있지만 하나님은 문제가 되지 않으신다. 약점은 그냥 약점이니 그저 올려놓자. 그러면 강점으로 바뀐다. 우리가 완벽해져야 쓰지는 않으신다. 하나님께 붙잡히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주님께 붙들리면 약함은 부끄럽지 않은 것이다. 고린도후서 1장 9절을 보자.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무능함을 고백하고 인정할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게 된다.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자. 어제의 은혜로 오늘을 살 수 있다고 착각하지 말자. 오늘은 오늘의 은혜로 사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어제 얼마나 능력을 받았던지 훈련을 받았던지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금식을 얼마나 했느냐가 아니며 매 순간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깨어질 것을 아시기에 일으켜 세워 주시는 것이다. 오 할레스비의 '기도'를 보면 "당신의 무력함이 최상의 기도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능력이 있을 때는 기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을 때 그때가 최적의 순간이다. 오늘도 절망과 연약함의 모습을 고백하고 주님만 의지하자. 그러면 우리를 승리의 자리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 주님이 우리의 소망인 것이다. 우리의 약함을 인정하면 우리를 승리케 해주실 것이다. 자기의 과거에 화려했던 것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만 의지하자. 두려워하지 말자. 연약함이 무기이며 기도가 될 것이다. 기도의 경험이 될 것이다. 연약함의 끝은 오지 않을 것이다.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만 의지하며 붙들리는 겸손함만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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