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25 수영로교회 주일예배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이규현
728x90

 

아모스 8장 11~13절

위기 시대의 신앙

 

온 세상이 힘들어지고 있다. 세계적인 현상이다. 시대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문명적으로도 말기 현상이다. 모든 총체적인 위기이다. 한국도 먹고살기 힘들 때보다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시대이다. 전문가들의 말이 다 틀리다. 초 불확실성의 시대이다. 인도네시아에 방문했을 때 지진을 겪었는데 세게 느껴지더라. 30초 동안 흔들렸다. 돌아가는 줄 알았다. 내가 가만히 앉아있지만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삶이 불안정하고 문제 투성 이이다. 예전에는 소화제가 많이 팔렸다. 소화제를 선물을 하기도 했다. 요즘은 신경쇠약증이 많다. 스트레스가 많은 것이다. 20세기 중반 이전까지 신경성 질환 약이 없었다. 중반 이후부터 나타난 것이다. 하나님은 아모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기근을 예고한다. 아모스 8장 11절을 보자. 기근은 재앙을 의미한다. 위기상황이다. 세상의 문제들이 많이 있지만 이스라엘의 문제는 영적 기근을 의미하는 것이다. 말씀의 기근이다.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자. 12~13절을 보자. 가장 왕성한 시기의 사람들이 쓰러지는 것이다. 총체적인 위기이다. 위기이며 절망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얻지 못해 일어나는 것이다. 말씀의 기근이다. 먹을 것과 마실 것만 있으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해외에서 한국 먹방 프로그램이 인기라고 한다. 우리는 한시도 끼니 걱정을 거르지 않는다. 늘 먹는 것을 걱정한다. 에서는 늘 먹는 것을 탐하는 사람이었다. 장자권을 야곱에게 팔아 버렸다. 육체적인 본능을 우선했다. 이삭도 에서와 야곱을 구분하지 못하고 별미에만 빠져있었다. 8장은 아모스 선지자가 과일 광주리 환상을 보면서 시작한다. 여름에 잘 익은 과일 광주리는 풍성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것은 곧 도래할 심판을 의미하는 것이다. 과일은 곧 시들기 때문이다. 이 기근은 하나님이 보내신 것이다. 원인 제공은 이스라엘 백성들인 것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4절부터 나온다. 공의가 무너진 것이다. 돈을 끌어모으기에 바쁜 탐욕이 난무한다. 우리 시대와 너무 흡사하다. 세상을 탐닉하여서 형식만 남게 되었다. 결국 풍요가 기근으로 변하는 것이다. 영적 기근을 간단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영적 갈증을 느껴보았는가?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적인 이슈로 늘 돈에 목마르다. 영적인 갈증을 무시해버린다. 주일에 예배를 드리는 것과 하나님을 찾는 것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영적인 갈증으로 나오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그저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오는 분들도 있다. 어디에 관심이 있는지를 보면 아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3장 1절을 보자. 육신에 속한 자는 적극성이 없다. 대충 듣는다. 사실 이것은 어렵고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파고들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다가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불편해진다. 말씀에 소극적일 때부터 기근은 찾아온다. 아모스 8장 12절을 보자. 여호와의 말씀을 구하려고 찾아도 얻지 못한다고 되어있다. 그 당시 백성들은 말씀에 순종할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예배에 참여하고 말씀을 읽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순종할 의지가 없으면 말씀이 들리지 않는다. 왜 성경 공부하고 성경일독을 하는가? 의지가 없으면 귀에 들리지 않는다. 좋은 설교를 듣는 다고 좋은 신자가 되지 않는다. 말씀을 찾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말씀을 듣는 태도가 문제이다. 순종하려는 태도가 더 중요하다. 꼭 교회에 전화해서 설교자를 물어보시는 분이 계신다. 누가 설교하는지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순종하려고 하면 어떤 설교도 좋은 설교이다. 순종의 자세가 없으면 말씀의 기근이 찾아온다. 이스라엘의 상태는 참 선지자가 사라졌다. 거짓 선지자가 난무하고 참 선지자가 핍박을 당한다. 엘리야가 "나만 홀로 남았다."라고 하였다. 말씀이 없으면 삶의 목적을 놓친다. 우리의 어려움은 목적을 모를 때 생긴다. 방법보다 "왜"이다. 말씀이 없으면 이것이 해결이 안 된다. 무엇을 하든지 빨리 지친다. 자기가 왜 바쁜지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지지 않으면 주변에 끌려 다닌다. 주변 사람들 말이 크게 들린다. 그 안에 말씀이 없기 때문이다. 말씀에 깊이 빠지지 않으면 안 된다. 요즘 젊은이들이 힘든 이유는 미래가 안 보여서이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답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해답이 없다. 그래서 결국 악수를 둔다. 외통수에 빠진다. 아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다. 창세기 12장 4절을 보자. 아브라함이 따라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롯은 삼촌을 따라갔다. 인맥과 혈육을 따라갔다. 아브라함은 문제가 생기면 말씀에서 해답을 얻었다. 양보했다. 조카 롯은 현실을 보고 자신의 처세술과 인간적 생각으로 해답을 찾았다. 곧 엄청난 기근이 찾아왔다. 마태복음 4장 4절을 보자. 광야에서 40일 동안 찢어지는 육체적 금식 속에서도 말씀을 강조하시는 것이다. 영적인 기근이 가장 참혹한 것이다. 답은 말씀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질 때 삶에 대한 갈등, 혼란, 무질서가 사라진다. 왜 혼란한가? 진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 인생의 에너지를 쓸데없이 허비하지 않는다. 욥기는 어려운 책이다. 대단한 책이다. 일반적으로 성도들이 읽으면 오리무중에 빠진다. 욥이 왜 고난에 당하는가? 친구들이 신학적인 얘기를 퍼붓지만 안 맞는다. 그러나 나중에 하나님이 말씀이 쏟아 내신다. 그 말씀 앞에 욥이 무릎을 꿇는다. 회개한다. 혼란에서 빠져나온다. 자기의 고난을 주시한다. 고난이 자기를 이기지 못함을 깨닫는다. 비극적 상황에서 빠져나와 놀라운 세계로 나아간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비극이다. 인생이 비극이다. 설명할 수 없는 고난을 당하는 성도가 많다. 내가 잘 안다. 말씀이 분명하게 들려지면 말씀이 길이 되고 빛이 된다. 견고하게 세워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받아야 한다. 그래서 주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하나님의 생명력 있는 날 선 검이다. 방황과 갈등과 고민이 해결되는 역사가 있다. 설교자가 가지는 영광이며 기쁨이기도 하다. 그래서 말씀을 받는 태도가 중요한 것이다. 마태복음 13장 8절을 보자. 우리는 옥토가 되어야 한다. 그러면 100배의 결실이 기다리고 있다. 말씀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말씀을 온전히 섭취하자. 혹시 힘든 일이 있으면 당장 성경을 펴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보자. 영적 세계는 부익부 빈익빈이다. 마태복음 13장 12절을 보자. 진리의 말씀이다.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본성이 세진다. 삶의 행복과 불행은 영적인 문제가 더 관여한다. 말씀의 기근은 삶의 기근이 된다. 세상적인 자랑으로는 버티지 못한다. 한국에 장관들은 오래 하지 못한다. 물러났을 때 고등실업자가 된다. 남자들도 명함이 중요하다. 내놓을 명함 말이다. 만나면 그것을 주고받는다. 거기서 기가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명함을 보는 순간 시무룩해진다. 저는 명함이 없다. 만든 적도 없다. 외적인 조건에 의존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영원한 직분도 직업도 없다. 우리의 인생을 바쳐주는 것은 인맥도 학력도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무너진다. 다른 것은 임시이다. 오직 말씀뿐이다. 무게가 느껴진다. 진리 안에 다듬어지면 품격과 기품이 넘친다. 어제 뉴스에서 동생이 자존심을 건드려 죽이는 사건을 보았다. 사람을 폭행하고 죽이고.. 깜짝 놀랐다. 30~40년 사이에 한국 사회에 변화가 너무 충격적이다. 최근에도 서울을 가보니 느낄 수 있었다. 미국보다 더 잘 사는 느낌이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행할까? 열등감이다. 아들러라는 심리학자의 책이 많이 팔렸다. 열등감에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이다. 비교의식이다. 예전에는 다 못 살았다. 이제는 먹고 살만 한데도 친구가 잘 살면 배가 아프다. 불행하다고 느낀다. 이것을 어떻게 고칠 수 있는가? 성형 수술을 자주 하면 할수록 자존감에 문제가 더 생긴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배하지 않으면 해결 받지 못함이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왜 불안한가?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있으면 진짜로 믿게 된다. 안될 거라는 믿음이다. 그 시간에 성경을 보자. 세상에 대한 것들이 부럽지 않다. 말씀으로 관점이 바뀐다. 말씀을 묵상하면 세계관이 바뀐다. 예전에 목을 매던 것이 시시하다. 부럽지가 않다. 영적 기근은 하루 이틀에 걸쳐 일어나지 않는다. 서서히 진행된다. 축적되는 것이다. 빈사상태에 빠진다. 영혼에 고갈이다. 무너지는 것이다. 어떤 걸로도 버티지 못한다. 한국 사회는 후유증에 빠졌다. 물질적인 풍요를 제대로 누리지 못한다. 정신적인 빈곤을 채우기 위해 인문학의 열풍이 찾아왔다. 인문학이 해결해주는가? 그렇지 못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안된다. 이번 여름은 너무 더웠다. 인도네시아에 갔는데 우리나라보다 시원했다. 한 목사가 아내로부터 안부전화를 받았는데 그 내용이 "거기는 한국보다 더 덥죠?"였다. 목사는 침묵하였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자. 성경책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면 영적 기근이 찾아온 것이다. 영적 기근이 오면 잉꼬 같은 부부도 싸우게 된다. 삶이 꼬이고 혼란스럽게 된다. 영적인 기근의 증상이다. 시편 1편을 보자.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얘기한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다. "왜 이렇게 설교가 길어?"라고 생각한다면 영적 기근인 것이다. 아침이면 성경을 펴놓고 읽어 내려가는데 그것이 너무 좋으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인 것이다. 삶에 두려운 것이 없으며 삶이 궁색하지 않다. 고린도후서 6장 10절을 보자.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다. 기가 막히는 말씀이다. 반대로 바꾸어보자. 기뻐하는 자 같으나 항상 궁색하고 부요 한자 같으나 가난한 자이고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으나 아무것도 없는 자가 많다. 물질적 세계관이다. 물질적 논리에 춤을 춘다. 영적인 필요보다 현실적인 필요를 채운다. 현실적인 필요가 다급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이다. 별 것 아닌데도 자학하고 우울해한다. 날씨가 선선해졌다. 영적인 일상으로 돌아가자. 묵상하자. 늘 기도하던 자리를 지키자. 아무리 바빠도 그렇게 하자. 돈 때문에 불행해지지 말자. 가장 중요한 것은 말씀이다. 이렇게 하면 삶의 기근이 사라진다. 이것을 명심하자. 신자는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은혜로 사는 것이다. 힘든 때일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예배에 생명을 걸자. 하나님의 말씀에 풍년을 맞아 과실을 맺자.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