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7 수-기도의 십일조

Q.T/수영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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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시작하라

 

제가 전도사 시절에 사역하던 교회에 신앙 좋아 보이는 집사님 두 분이 있었다. 그런데 충격이었다. 사이가 좋지 않았다. 지나쳐도 인사하지 않은 것이다. 보통은 한 사람이 떠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들은 열심히 나오면서 서로 싫어했다. 그래서 대학원 교수님께 물었다. "이들이 정말 죽어서 천국 가겠습니까?" 교수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둘 다 못 갑니다."라고 얘기하셨다. 사실 둘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하셨다. 그래서 더 충격이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들었을 때 충격적이다. 왜냐하면 이런 사람들이 주위에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은 굉장히 단호하다. 예외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이다."라고 하신다. 요한 공동체에서도 이런 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저도 한때는 이것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더 쉬웠다. 형제는 완전하지 않고 실망하게 하고 상처 주고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는가? 하나님은 완전하시다.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신다. 나를 응원하여 주신다. 흠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쉽다. 그런데 형제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이웃 사랑 이야기를 듣고는 형제 사랑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다.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장애물이 있다. 말투도 싫고 생긴 것도 보기 싫다. 이런저런 이유로 싫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을 위해 더 관심을 기울인다. 그러나 성경은 말한다. 형제 사랑이 되지 않는 자는 하나님 사랑도 불가능함을 말한다. 마태복음 22장 37~40절을 보자. 주님은 첫째 되는 계명을 말하시며 둘째도 그와 같은 일임을 인지 시키신다. 강령인 것이다. 이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라고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분리시킨다. 그러나 주님은 같은 것이라고 말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 사랑받는 그 형제를 사랑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생각으로는 네가 하나님의 사랑을 안다면 자연스럽게 형제를 사랑할 수 있다고 얘기하신다. 사도 요한은 공동체에서도 이분법적인 자가 있었기에 그 형제를 거짓말하는 자라고 지목하였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자.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얘기하신다. 예수님에게 무엇을 드려야 하는 것이 아니다. 눈물 흘리며 찬양하는 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내 계명을 지켜야 나를 사랑하는 자라고 하신다. 이웃 사랑의 실천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는 종교적인 황홀경에 빠지는 것이 사랑하는 자라고 하지 않으신다. 사랑의 계명인 것이다. 행동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보시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을 주목하신다. 우리의 중심을 주목하신다. 예배에 자리에서 나온다. 하나님을 뜨겁게 찬양하는 마음이 여기에서 나온다. 하나님이 가장 중심으로 보시는 것이 사랑인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형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계명을 지킴으로 세상이 제자인 것을 아는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34~35절을 보자.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 드러내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전파된다. 만약 우리가 서로 다툰다고 하면 사람들이 그것 때문에 교회 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반목하고 시기 질투하면 사탄이 좋아한다. 그런데 나중에 왜 싸웠나 보면 별거 아닌 것으로 싸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게 되면 제자로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드러난다. 가장 어려운 것은 형제 사랑이 아니다. 어려운 것은 하나님 사랑이다. 하나님 사랑이 안되면 형제 사랑이 안 되는 것이다. 지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지만 형제 사랑이 되지 않는가? 아직 부족한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충분히 알지 못하는 것이다. 형제 사랑을 하면 하나님 사랑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형제를 볼 때 내가 가진 시선과 판단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의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나를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생각하고 그 시선으로 형제를 보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생각만 하는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 보시기에도 그렇지 않지만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사랑하신다. 이것을 그대로 형제에게로 옮기는 것이다.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이다. 그렇다면 그 형제도 용서받을 만한 죄인이다. 나를 위해 물과 피를 쏟으신 주님께서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죽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어찌 미워하고 싫다고 할 수 있는가? 요나는 자기가 원수같이 생각하는 니느웨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요나를 통해 "그곳이 멸망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게 하였다. 그런데 요나는 저 니느웨 사람들이 현생에도 잘 살다가 예수 믿고 천국까지 가는 것을 안 좋게 생각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령을 불복종하고 도망하였다. 불평도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요나서 4장 10~11절을 보자. 죄인 들이라고 하나님이 다 멸망시키고 싶으신 것이 아니다. 어린아이와 가축까지도 아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요나가 이것을 알기 원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이데올로기에 갇혀 있는 시선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뀌길 바라시는 것이다. 니느웨도 아끼는 것을 알기 원하시는 것이다. 회개하지 않는 니느웨를 변화시키기를 바라는 것도 있지만 선지자 요나도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원하는 것이다. 너도 죄인이라고 얘기하신다. 그래서 요나로 하여금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우리도 옆에 형제를 보면 부담스럽다. 그런데 그 형제를 옆에 두신다. 그를 통해 나도 깨닫게 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나 자신을 볼 때나 그 형제를 볼 때 이런저런 이유를 두지만 하나님도 그런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를 그렇게 대하시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넘치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면 이단으로 가게 되어있다. 이런 것들이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곳이 잘못된 교리인지 알지만 거기에 사랑이 있다고 착각하고 거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게 되어 형제를 사랑하기 바란다. 이 세상으로부터 교회가 온전한 사랑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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