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07 중앙성결교회 주일예배

성경해석학(Biblical hermeneutics)/한기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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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집

잠언 9장 1~12절

 

아침에 신학교 때 얘기를 하였다. 주일예배가 끝나고 김주형 권사님이 주머니를 채워주셨다. 감동하셔서 그렇게 하신 것 같다. 군목에 있을 때 연락을 해주셨다. 권사님 교회가 어려워 매일 기도회실에 모여서 기도하셨는데 마무리 기도를 자기가 하겠다고 하였다. 그런데 기도를 마치고 소천하신 것이다. 대표 기도를 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신 것이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중에도 그 권사님 사위의 아들이 방황할 때 연락이 오셨다. 그래서 저한테 보내라고 하고는 그 아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리고 그 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도 해서 좋은 가정을 이루었다. 결과적으로 잘 된 것이다. 믿음의 가정과 그 자손들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이다. 오늘 지혜의 대한 얘기이다. 잠언 9장의 보면 지혜가 초청하는 내용이 나온다. 지혜의 집이다. 9장 1절을 보자. 7개의 기둥을 잘 다듬어 세울 기둥에 집을 지은 것이다. 요즘은 자기 집 가지기도 굉장히 어렵다. 저도 예전에 24번이나 이사를 하였다. 집을 장만해서 그 집에 입주를 한다면 안정적인 것이다. 집 안에는 먹고살고 필요한 것들도 구비되어 있을 것이다. 안정되고 쉼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가 집을 지었다는 말은 우리가 그 안에서 살만한 것들이 갖춰졌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소스인 것이다. 원래 일곱 기둥은 열왕기상 3장 17절을 보면 솔로몬의 궁전이 일곱 기둥이다. 서양의 유럽 여행을 해보면 다른 어떤 것보다 기둥에 신경을 많이 쓴다. 우리는 대게 단층으로 지었지만 유럽은 높이 짓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단단히 기둥을 잘 세우면 집이 안전한 것이요 모양이 나며 크게 지을 수 있는 것이다. 지혜가 집을 짓는데 일곱 기둥을 다듬은 것이다. 지혜가 그것을 할 수 있는 것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지혜에서 다 나온다는 것이다. 그 안에서 먹을 수도 있고 잘 수도 있고 놀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던지 가정생활을 하던지 집을 편안하게 만들어야 한다. 얘들이 집을 안 들어오려고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남편과 부인이 집에 안 들어오려고 한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저희 집사람은 집에 오는 것을 좋아한다. 집 만한 곳은 없는 것이다. 집에 오면 편안해야 한다. 아무리 다녀봐도 집 만한 곳이 없어야 한다. 지난주 태국 치앙마이를 다녀왔다. 같은 성결교단이라서 초대받아 갔었다. 가이드가 처음부터 끝까지 "치앙마이가 세계에서 가장 좋다."라고 얘기하였다. 저는 속으로 "당신이 다른 데 안 가봐서 그렇지."라고 생각했다. 돌아오면서 생각해보니 그 자신이 치앙마이에 사니까 그렇게 얘기한 것이다. 저도 한국에 있는 서울이 좋다. 집에 돌아오면 편안하다. 저의 비밀이 있는데 편안한 곳이 두 곳이 있는데 집과 비행기다. 비행기에 타면 전화가 오지 않는다. 집에 들어가면 휴대폰을 끈다. 방해를 받기 싫어서이다. 비행기 타고 가는 순간에는 편안하다. 집에 있어도 편안하다. 사람은 편안한 곳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집에 들어가면 편안해져야 한다. 그리고 교회에 와서도 편안해야 한다. 저는 교인들을 편하게 해 드리려고 노력한다. 목사가 교인들을 닦달하면 교회가 오고 싶지 않을 것이다. 교회에 들어와서도 일만 하지 말고 모든 일을 다하려고 하지 말라. 그냥 편안하고 감사해야 한다. 그래야 거기서 좋은 것이 나온다.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자원할 마음이 생긴다. 그것이 진짜 좋은 것이다. 지혜가 세우는 집은 완벽하고 대단하다. 노래 가운데 존 하워드 페인이 작사하고 헨리 비숍이 작곡한 'sweet home'이 있다. 집이 크다고 편한 것이 아니다.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어느 날 저희 집으로 아래층 할머니가 집에 찾아오셨다. 제가 목사인 줄 아신다. "목사님, 에어컨 좀 바꿔요."라고 얘기하셨다. 실외기가 문제가 있었나 보다. "아직 쓸만한데요!"라고 얘기하였다. 그래서 그 후 에어컨을 켜지 않고 20일을 지냈다. 기사를 불렀더니 아무 문제없다는 진단을 하였다. 솔직히 에어컨이 오래되긴 하였다. 14년 정도 되었더라. 저는 미국에서 목회할 때 교회 사택에서 살았는데 40년 된 에어컨도 잘 돌아갔다. 저희가 세탁기를 미국에서 가져왔는데 아직까지 잘 돌아간다. 저는 96년도에 한국에 왔다. 그 할머니가 항상 창문을 열어놓고 생활하기에 민감하게 느끼시는 것이었다. 그 할머니는 집이 불편한 것이다. 같이 더불어 살 때는 배려해야 하는 것이다. 저는 최대한 단순하게 사는 것을 추구한다. 복잡하게 살고 싶지 않다. 그것 없이도 살고 싶다. 필요하면 오래 두고 살고 싶다. 무엇인가 많이 갖췄다고 편안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편안해야 하는 것이다. 지혜가 집인 집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잠언 7장 27절에 보면 음부에 집이 있다. 어리석은 자의 방이다. 지혜의 집에 살아야 한다. 집도 없이 살면 homeless이다. 서울 역전이나 공항에 보면 많다. 시원하고 좋다고 한다. 하여간 그분들은 쉴 때가 없는 것이다. 언제라도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 이래서 집 나가면 고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집이 없으면 안정과 안식, 보호, 공급, 사랑이 결핍된다. 지혜의 집에서 사는 것이 좋은 것이다. 예수님의 산상수훈과 비교한다면 반석 위에 지은 집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이다. 그것이 지혜의 집이다. 그 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것이다. 준비해놓고 사람들을 부르는 것이다. 사실은 지난주 수요일 아침에 청와대에서 초청을 하였는데 못 갔다. 그때 외국에 있었다. 초대한 사람이 대단한 사람이라 한 마디 해주면 좋았을 것이다. 지혜가 집을 짓고 완공을 축하하는 자리인 것이다. 9장 2절을 보자.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준비해놓고 자기 여종을 보낸다. 여종을 보낸다는 말과 성 중 높은 곳에서 불렀다는 것이다. 여종을 보낸다는 말은 겸손하게 부르는 것이고, 성 중 높은 곳이라는 것은 권위를 갖추고 얘기하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를 이리로 돌이키라'는 것은 회개하라는 말이다. 이것은 가만히 보니 전도하는 것이다. 그들을 보내어 불러 돌이키라, 먹고 마시라, 버리라, 행하라는 것이다. 전도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잘 오지 않았다. 지혜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8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지혜로 얘기하였다. 결국 이것은 전도이다. 우리가 지혜로워진다는 것이 주님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하늘이 주는 지혜인 것이다. 세상 지혜도 유익한 면이 있다. 내가 예전 것을 버리고 행하여야 될 수 있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도 부르는 것이다. 지혜 없는 사람도 초대한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돌이키지 않기 때문에 어리석은 삶을 사는 것이다.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은 자의 책임인 것이다. 식물과 포도주는 잠언 4장 17절에 보면 불의의 떡과 강포의 떡을 먹는다고 되어있다. 지혜는 식물과 포도주를 주는데 떡과 포도주를 주는 것이다. 영적 자양분을 주셔서 생명을 얻도록 해주신다. 잠언 9장 6절을 보자.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자고 되어있다. 명철을 얻고 행하자고 되어있다. 안 믿는 사람은 어리석은 것이다. 잠언 9장 7~8절을 보자. 요즘은 얘들이 길에서 담배 피우면 얘기할 수 있을까? 요즘은 어려운 것 같다. 제가 연세대학교에서 대학원을 다녔는데 그 기숙사가 1층에 있고 2층에 교실이 있었다. 1층밖에 잔디 밭에서 애들이 담배를 피웠다. 교수님이 담배 피우면 득달같이 내려가서 뺨을 때렸다. 그러면 애들이 대들었다. 그래서 저희들이 내려가서 말렸었다. 요즘은 충고를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몇 번 말을 해서 안 들으면 어리석어서 모르니까 그런 것으로 치부해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한테 욕을 하는 줄 아는 것이다. 악인을 책망하면 망신을 당한다. 거만한 자의 특성은 말을 안 듣는다. 괜히 그 자에게 얘기했다가 해를 당한다. 그래서 솔로몬이 구한 기도가 "듣는 마음을 주세요."이다. 분별해서 듣는 것이다. 잘 듣는 것이다. 이것이 지혜로운 사람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특징은 거절할 것을 분별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누가 무슨 얘기하던지 어떤 것을 듣던지 분별하는 것이다.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다른 것은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리석은 사람은 아무것도 듣지 않으며 마음이 완악한 것이다. 자존심과 교만과 아집이 심하다. 점점 더 어리석어지는 것이다. 안 들으면 계속 어리석어진다. 그래서 자기 좋아지라고 하는 사람을 능욕하며 흠을 잡고 미워한다. 거만한 자의 특성이다. 잠언 9장 8절을 보자. 지혜로운 사람은 징계를 받아도 잘못을 뉘우치며 그를 오히려 사랑한다. 아이들을 어떻게 교육하는가? 할 수 없이 징계하는 것이다. 때로는 매도 든다. 그런데 이것을 미워해서 때린다고 여기면 어리석은 것이다. 이것을 좋은 사람 되라고 하는구나라고 여기면 지혜로운 것이다. 조금 자라면 칭찬과 부끄러움을 느끼게 해야 한다. 이론적으로 아는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아이의 발달단계에 따라 틀리게 훈육해야 하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떻게 받는지 잘 살펴야 한다. 같은 것이라도 다르게 받는 것이다. 지혜 있는 자는 책망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가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같은 말을 해서 봉변당할 수 있음을 명심하자. 적절하게 잘해줘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더 어리석어진다. 지혜로운 사람은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9절을 보자. 지혜 있는 자에게는 교훈을 주고 가르치라고 되어있다. 아이들들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해보자. 왜 저렇게 엇나가게 행동하는지 잘 분별해보자. 저 아이가 수용하는 삶을 살면 계속해서 지혜를 얻을 수 있을 텐데.. 이해를 시켜줘야 한다. 10절을 보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시작인 것이다. 명철은 거룩한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박사라면서 하나님도 모르면 명철한 사람이 아니다. 세상적으로 공부만 많이 한 것이다. 세상 지혜 가지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에게는 세상 지식이 어리석은 것이다. 9장 7절을 보자. 너의 날이 많아진다고 한다. 장수한다는 말이다. 너의 생명의 해가 더하리라는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자기가 하는 일과 다른 사람에게 받는 사랑과 존경이 계속되는 것이다. 존중과 명예로운 삶이 이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세월만 많은 게 아니고 그 하는 일들이 오랫동안 유지되고 그 명성을 오랫동안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도 오래 사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요즘은 죽음의 과정이 넓기 때문에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진다. 미국에서는 한국처럼 요양원이 많지는 않다. 지금도 그렇다. 그런데 한국은 다르다. 결국 돌아가시는 분들이 병원이나 요양원인 것이다. 병원에서도 잘 돌아가시지 않아 요양원에서 돌아가신다. 요양원에 일단 들어가시면 잘 활동할 수도 없다. 한국에 이상한 형태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다 보니 삶의 질이 많이 떨어져 있다. 그것이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이전에 식물인간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요양원의 삶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래서 건강하실 때 자기 생명의 대한 유언을 남겨야 한다. 이것은 우리가 자연적으로 죽음을 맞이하도록 남기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식들은 말 안 하면 요양원에 보내는 것을 효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정을 연장하는 것이 고통인 것이다. 품위 있고 의미 있고 보람 있게 살다가 가야 한다. 저도 그렇게 살다가 가고 싶다. 사람이 그래도 살면서 나름의 그 이름을 지켜왔는데 그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고 명예롭게 마무리하는 것도 참 중요한 것 같다. 그동안 살아왔던 좋은 얘기들이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혜로워지면 그것이 가능하다. 지혜로운 노인이 되면 마무리를 잘할 수 있다. 그가 죽는다 해도 그의 이름이 오래 남아서 길어지는 것이다. 예수님의 생명이 일찍 끝났다고 얘기하는 사람은 없다. 이것은 자연적으로 오래 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지혜롭게 살라는 말이다. 지혜롭게 마무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제 기억 속에 그 권사님이 기억에 남는다. 기도하는 분이었고 멋있게 가셨던 것을 기억한다. 명예로운 것이다. 그 자식들도 명예롭게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도 아름답게 기억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9장 12절을 보자. 지혜로우면 너에게 유익하다는 것이다. 어리석음은 너한테 해로운 것이라는 것이다. 거만한 자는 악인이며 미움이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의인이며 생명이 있고 사랑이 있고 유익한 것이다. 지혜는 예수님인 것이다. 하나님의 집으로 오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집에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가? 하나님의 집과 나의 집이다. 하나님의 집을 지혜의 전당으로 만들고 여러분의 집도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으로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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