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7/12 금요철야예배

Q.T/수영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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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전서 2장 4~10절

 

현재 우리는 복음에 적대적인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다. 시급히 회복해야 할 정체성은 왕 같은 제사장이다. 그냥 왕도 아니고 제사장도 아닌 왕 같은 제사장이다. 탁월함을 포함한다. 요한계시록 1장 5절~6절에 잘 나와있다. 가장 유사한 표현이다. 하나에 개념이 아니다. 왕과 제사장 2개의 표현이다. 우리를 이중 신분으로 부르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흥분해야 하는데 아무런 느낌이 없다. 만일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재벌과 같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이런 출생의 비밀을 소재로 한 한국 드라마가 많다. 흑수저와 금수저를 필두로 한 내용이다. 왕은 정말 살고 싶은데로 살았을까? 베드로전서는 네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5장밖에 안되지만 고난을 묘사하는 동사가 12번이나 나온다. 베드로는 핍박받는 소수자들을 가리켜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지칭하였다. 무슨 근거로 왕 같은 제사장이라 하였을까? 구약에서는 기름 부어 세운 직분은 왕, 제사장, 선지자가 있었다. 그러나 왕과 제사장만 지칭하였다. 왕이자 제사장인 예수님을 보면 알 수 있다. 종으로 섬기러 오셨다. 하나님과 동등됨이 아니고 사람의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며 죽으셨다. 종의 모양이었다. 33년 동안에 왕으로써 어떤 특혜를 받지 않았다. 유일하신 진정한 제사장이시지만 섬기려 오신 것이다. 자기 목숨을 제물로 드리러 오셨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이 왕과 제사장으로의 소명을 다하신 다음에 우리에게 되돌려 주신 것이다. 로마서 12장 1절에 자세히 나와있다. 너희 몸을 영적 제물로 바치라 명하셨다. 이중 직분은 정말 거룩한 직분이지만 이중성 때문에 혼동될 것이다. 그러나 이 길 만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인 것이다. 정체성을 많은 이들이 간과하면서 한국 교회가 약화되는 것이다. 베드로전서 2장 20~21절에 자세히 나온다. 왕이지만 우리가 종으로 섬기도록 보냄을 받은 것이다. 베드로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지만 모퉁이돌이 된 것이다. 거룩한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하면 사탄과 죄를 이기고 왕과 같은 존재가 될 것임을 말하고 있다. 잠깐의 고난이지만 터를 견고하게 하셔서 세상에서 왕처럼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산돌이신 주님과 함께 거룩한 제사장의 꿈을 꾸어야 한다. 우리는 제사장으로서의 꿈을 꾼 적이 있는가? 혹시 다른 사람의 꿈을 빼앗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가 누구인가? 제사장으로서의 꿈을 꾸고 그 꿈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하이델베르크 소요리 문답에는 제사장이 무엇인지 잘 표현되어 있다. 영원히 예수님과 왕 노릇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두 개의 차원에서 부름을 받았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은 것이고, 세상과의 관계에서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능력과 힘과 권세와 은사를 공급받고 사탄을 이기고 죄와 옛사람을 이기고 왕 같은 신분으로 살아가라는 이중적인 신분으로 부르셨다는 것이다. 루터의 가르침이 여기에 해당한다. 모든 세례 받은 신자들은 제사장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말만 하며 개념은 거의 없다. 목사들이 그렇게 가르친다. 심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만 나가면서 제사장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자주 하나님 앞에 예배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에 몇 번 기도하는가? 반복적으로 나아가는가? 성경을 읽는가? 통계청에서 4, 5년 전에 조사한 바에 따르면 독서는 신문을 포함해 7분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도 있다. 만일 제사장이라면 읽어야 하는 것이다. 많은 교우들이 부유하게 사는데 아무런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다. 신약에는 선지자라는 건 없다. 바울도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지칭하였다. 제사장으로서의 삶이 약해지면 힘을 공급받지 못하면 세상에 질 수밖에 없다. 모여서 하나님께 능력을 공급받지 못하면 무슨 힘으로 세상을 이기겠는가? 루터는 왕보다 제사장이 훨씬 더 영예롭다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며 거룩한 힘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에 있으며 동료들을 위해 기도하는 직분이다. 이곳에 우리가 모여 있는 이유는 동료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면 하나님의 소명을 이행할 수 없는 것이다. 제사장은 개인적인 특권이 아니다. 제사장은 백성을 위한 존재이다. 자기를 위한 존재가 아니다. 성경해석도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저 하늘 본향은 나 혼자의 힘으로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인이 만인에게 제사장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이다. 서로 기도해 주고 도와야 하는 것이다. 신학을 했던 안 했던 서로에게 설교를 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설교하고 부부는 서로에게 해야 한다. 서로 중보해야 하며 가르쳐야 한다. 교회에 공적으로 모였을 때는 위임목사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목사가 마치 구단주처럼 행동하면 안 된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정체성은 왕 같은 제사장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제자훈련, 단기선교, 기도회를 참석해야 한다. 세상에서 악을 이기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제사장의 직분을 잘 감당해내면 끝내는 진정한 왕처럼 살 수 있는 것이다. 돈, 직위, 유혹에 물 들지 않는 것이다. 주님 오시는 그날 영원히 주님과 왕 노릇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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