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를 예배되게
에스겔 6장 1~14절
선지서의 말씀은 죄에 대한 진노와 심판에 대한 말씀과 회개의 말씀이 주를 이루어 불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말씀을 듣게 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 혹시 시뻘겆게 충혈된 눈으로 분노하시는 하나님을 떠오르시는가? 하나님을 생각할 때 이런 이미지만 떠오른 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 그렇치만 꼭 이런 분 만은 아니시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셔서 진노하시기를 원치 않으시지만 공의로운 분이시기에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올바른 지식과 지혜가 없으면 오해하게 되어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철저히 하나님을 오해했다. 하나님을 잘 몰랐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언약관계로 신실한 남편으로 보호하시고 인도하셨다. 항상 깨는 쪽은 이스라엘이었다. 아무런 능력도 없는 우상을 쫓았다. 신랑이 신부가 벼랑으로 가는 것을 두고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심판주로만 이해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하게 하실 것이라 하였다. 우상을 박살내고 깨뜨려 황폐하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사랑하기 때문이다. 멸망으로 가는 이스라엘을 살게 하시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주된 관심은 현재에 있다. 선지자는 지금 이 일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였다. 하나님의 외침을 무시하고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현재는 곧 과거이기도 하다. 곧 과거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과거를 바꿀 수 없지만 미래를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바꾸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처음부터 "우상을 섬겨야지" 하며 섬긴 것은 아니다. 산당에서 드리는 예배와 집에서 인터넷으로 드리는 예배. 시간적으로 물질적으로 합당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부패의 본성을 지녔다. 자기 위주이다. 어찌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낭비로 느껴지는 인간의 모든 시간을 받으셨다. 죄 없는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를 위하여 그렇게 하신 것이다. 제물은 전가된 죄에 대가로 번제단에서 태워지고 하나님께 고스란히 태워져야 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이 일들의 대해서 편의성을 따져야 하겠는가? 임의로 편의로 대체될 수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산당 제사는 높고 험준한 곳에서 진행되었고 부패하였다. 우상 숭배의 온상이었다. 이스라엘의 적당한 타협의 결과는 하나님과 끊어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나님의 예배당에 나오는 것이 혹시 나의 편의성의 집중되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산당인 것이요. 우상인 것이다. 평생 예배가 하나님 앞에 우상으로 드러난다면 얼마나 가슴 아프겠는가? 안타까운 인생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자. 하나님의 뜻은 진멸과 멸망이 아니다. 평안이다. 재앙이 아닌 것이다. 메시지를 주시는 이유는 기억되게 하시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창조주 하나님 이시다. 우리의 구원자 이시다. 죄에 대해 맹렬한 분노를 쏟으시는 심판 주시요 전능자이다. 알파와 오메가 이시다. 그런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이다. 내 뜻을 앞세울 수 없는 것이다.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나의 행실은 완전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믿음으로 반응해야 한다. 혹시 습관적으로 필요의 도구로 찾지는 않았는가? 오직 하나님만 높임을 받으셔야 한다. 나의 원함을 내려놓자. 거룩한 산 제사로 모든 삶을 드리자. 하나님을 기억하고 돌이키면 회복과 만족이 있다. 지금 우리를 살리기를 원하신다. 살아나는 예배가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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