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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2일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마음이 생길 때 그 마음을 북돋워야 마땅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만히 앉아 인위적으로 애정의 감정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는 것이 곧 사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어떤 이들은 기질적으로 ‘냉정’합니다. 그것은 불운한 일이긴 하지만 죄는 아닙니다. 소화불량이 죄가 아닌 것과 같지요. 그런 기질이 있다고 해서 사랑을 배울 기회가 없거나 사랑을 배워야 하는 의무에서 면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법칙은 아주 간단합니다. 자신이 이웃을 사랑하나 사랑하지 않나 고민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그냥 그를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그러면 곧 위대한 비밀 하나를 발견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로 그를 사랑하게 된다는 비밀입니다. 어떤 사람이 싫다고 해서 상처를 주면 점점 더 그가 싫어집니다. 그러나 싫은 사람이라도 잘 대해 주면 점점 덜 싫어집니다. 한 가지 예외는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사랑의 법을 따르기 위해 잘 대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얼마나 너그러이 잘 용서해 주는 사람인지를 과시하거나 상대방이 마치 빚진 사람처럼 자기를 찾아와 ‘감사’를 표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에 잘 대해 주는 경우는 실망을 면치 못하게 될 것입니다(사람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그들은 어떤 것이 과시이고 선심인지 금방 알아챕니다). 그러나 그가 단지 하나님이 지으신 자이기 때문에(우리처럼) 나의 행복을 바라듯 그의 행복을 바라는 마음으로 잘해 준다면, 그때마다 우리는 조금씩 더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며, 아니면 덜 싫어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저자들은 이 사랑이라는 말을 인간들 사이의 기독교적인 사랑뿐 아니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사랑을 묘사하는 데에도 사용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인간이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데 종종 난색을 표현합니다. 자기 마음속에는 그런 감정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답은 똑같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치고 행동하십시오. 가만히 앉아 억지로 사랑의 감정을 만들어 내려고 애쓰지 마십시오. “만일 내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무엇을 할까?”라고 스스로 물어보십시오. 그래서 떠오르는 일을 가서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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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8일
선을 행하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기울여 보기 전까지는 자기가 얼마나 악한 인간인지 깨닫지 못하는 법입니다. 선한 사람들은 유혹이 어떤 것인지 모를 것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이 요즘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명백한 거짓말입니다. 유혹에 맞서 싸워 본 사람만이 유혹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압니다. 독일군의 힘이 얼마나 막강한지 알려면 항복할 것이 아니라 싸워 봐야 합니다. 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알려면 누워 있을 것이 아니라 바람을 거슬러 걸어가 봐야 합니다. 고작 5분 만에 유혹에 넘어가는 사람은 그 유혹이 한 시간 뒤 어떻게 변할는지 알 수 없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악한 사람들은 어떤 의미에서 악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늘 악에 굴복하여 그 그늘 아래 삽니다. 그러나 악한 충동과 싸우기 전까지는 결코 그 힘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유혹에 무릎 꿇지 않는 유일한 인간이며, 따라서 유혹을 완전히 파악하고 있는 유일한 인간(유일하게 완벽한 현실주의자 reallist)입니다. <순전한 기독교> 3장 그리스도인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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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일
사람들은 “교회가 세상을 이끌어야 한다”고들 합니다. 이것은 무슨 뜻으로 말했느냐에 따라 옳은 말이 될 수도 있고 그른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옳은 말이 되려면 그들이 말하는 바 ‘교회’는 곧 실천적인 그리스도인 전체를 가리켜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세상을 이끈다’는 말은 어떤 그리스도인들(경제나 정치에 적합한 재능이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경제학자나 정치가가 되어야 하며, 모든 경제학자와 정치가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하고, 그들은 정치 경제 분야에서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원칙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뜻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그런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그리고 그리스도인이 아닌 다른 이들이 그런 일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상당히 빠른 시간 안에 우리 사회의 문제들을 풀어낼 기독교적 해결책을 갖게 되겠지요.
그러나 실제로 사람들이 교회에게 세상을 이끌리는 것은 대부분, 목회자들이 정치적 프로그램을 제시해 주길 바란다는 뜻에서 하는 말입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목회자는 ‘앞으로 영원히 살 피조물’로서의 인간에게 필요한 일들을 돌보기 위해 전체 교회 가운데 따로 구별되어 특별히 훈련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정치적 프로그램을 제시하라는 것은, 전혀 훈련받지 못한 생판 다른 영역의 일을 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런 일은 사실 우리 같은 평신도가 해야 합니다. 이를테면 노동조합이나 교육 분야에 기독교적 원칙을 적용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노동 조합원들과 그리스도인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며, 기독교 문학은 그리스도인 소설가와 극작가가 해야 할 일(주교들에게 남는 시간에 모여 희곡이나 소설을 써 달라고 할 것이 아니라)입니다. <순전한 기독교> 3장 그리스도인의 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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