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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18 주일예배

Q.T/로마연합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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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2장 1~2절

 

우리는 지난주 세상의 잔꾀를 대표하는 바로를 살펴보았다. 바로는 그 나라 백성이 왕성하게 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여 어떻게 하면 누를 수 있을까 하는 꼼수를 부렸다. 세계를 지배하던 바로 왕을 히브리 삼 파들이 KO패를 시켰다. 바로 왕은 더 사악해졌다. 그래서 남자아이가 태어나면 무조건 죽이라는 것을 강요하였다. 그 명령을 거역한 사람이 있었다. 레위 사람들이다. 출애굽기 2장 1절을 보자. 이름을 지칭하지 않았지만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잘 생긴 것을 보고 숨긴 것이다. 남자아이가 태어났으니 강물에 던져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세 달이 지나자 너무 소리가 크니까 더 이상 숨길 수 없었다. 민수기 26장 59절을 보자. 아므람은 아버지이다. 이 사람의 아내가 요게벳이다. 아므람의 뜻은 존귀한 자라는 뜻이다. 하나님이 생명을 주신 자들은 존귀한 것이다. 아므람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 받은 모두가 그렇다. 요게벳은 여호와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아론과 모세와 미리암 삼 남매가 태어났다. 이 당시 시기는 아주 살기 어려운 시기였다. 왕이 히브리 백성을 억압하였고 꼼수와 잔꾀를 부렸고, 이것도 통하지 않으면 억압한 것이다. 이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도 모르는 절망의 심연에서 살았다. 하나님께서는 절망의 시대를 지날 수 있도록 지혜를 주셨다. 담대함과 용기를 이 가족들에게 주신 것이다. 출애굽기 2장 3절을 보자. 갈대아 상자를 만들었다. 나일강가에 있었는데 갈대가 많았다. 유용하게 쓰고 있었다. 고대 파피루스 종이의 재료가 갈대이다. 나무 건축자재로 쓰고 뗏목으로도 활용했다. 이것을 활용하여 갈대상자를 만든 것이다. 가라앉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역청과 나무진을 발랐다. 역청은 석유의 원료이다. 휘발성은 날아가고 남은 고체이다. 이것을 바르면 나무가 방수가 되는 것이다. 나무진은 나무의 진액이다. 실리콘 같은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담대함과 용기를 주신 것이다. 요게벳과 아므람은 이것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아기를 우리 손으로 죽이지 못한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이 지켜주실 것이라는 절대적인 믿음으로 강가에 띄운 것이다. 뮤지컬 아이다에 보면 비슷한 장면이 나온다. 나일 강가에서 목욕을 하면 출산을 하게 된다라는 의식도 있었다. 그 당시 나일강을 신성하게 여겼다. 왕족의 여인들도 자주 나가던 곳이다. 요게벳과 아므람은 우리가 낳고 싶어서 낳은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절대적인 믿음이었다. 역청은 석유의 원료라고 말하였다. 기름 넣으려고 하다 보면 S-OIL이라는 주유소를 보았을 것이다. 미국 엑슨 노빌의 회사이다. 록펠러 재단이다. 컨더네스 사장은 신앙이 깊었다고 한다. 매일 출근해서 직원들과 10분씩 기도했다고 한다. 불평이 있었다. 한 직원이 물었다. "성경이 진정 하나님의 말씀입니까?"라고 물었다. "여기 나오는 타르가 석유의 원료가 아닙니까? 그렇다면 나일 강 근처에 원유가 매장되어 있지 않을까요?"라고 또 질문하였다. 그래서 이집트로 지질학자를 보냈다. 그런데 굉장한 석유가 매장되어있음을 발견하였다. 우리도 처음 가는 길에 내비게이션을 믿고 가는 편이다. 아주 최근에 업데이트된 내비게이션을 장착하면 좋을 것이다. 매 순간 매 초마다 업데이트되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내일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당황하게 마련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나를 위한 계시로 믿자. 살아가야 한다. 어마 어마한 성공의 비결인 것이다. 출애굽기 2장 4절을 보자. 모세의 누이는 미리암이다. 그 당시 10살 정도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바로 왕의 명령을 어기고 자기 동생을 띄었으니 무서웠을 것이다. 미리암은 동생이 떠내려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혹시 뒤집어지면 되돌리려고 지켜본 것이다. 성경에서 최초의 형제는 가인과 아벨이다. 그러나 가인은 아벨을 시기 질투하여 쳐 죽였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라고 하였다. 자기 동생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면서도 그렇게 얘기한 것이다. 지금도 이 시대는 가인의 답변처럼 대답하는 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미리암에게 담대한 마음과 용기를 주었고 사랑하는 마음도 주셨다. 바로에 딸에게도 그렇게 하셨다. 출애굽기 2장 5~6절을 보자. 궁궐에 시녀들과 공주들이 강가에 나온 것이다. 나와서 보니 갈대상자가 있었다. 히브리 아이였다. 죽여야 하는데 공주의 마음속에 이 아이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었다. 룻기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다. 헤세드였다. 바로의 무남독녀인 딸이 그 버린 아기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바라본 것이다. 아버지는 사악하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딸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준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예상치 못하는 곳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출애굽기 2장 7절을 보자. 젖을 먹이려고 여인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 당시 분유는 없었다. 산모가 필요한 것이다. 공주의 마음에 신의 뜻인지도 모른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담대함을 가질 때 우리에게도 용기가 생기는 것이다. 출애굽기 2장 7~10절을 보자. 놀랍게도 바로의 공주가 산모를 찾았고 돈까지 주었던 것이다. 바로의 공주가 이 아이의 어머니가 되어서 모든 비용을 다 대었던 것이다. 우리도 생각지 않는 일들이 열리는 것이다. 히브리서 11장 23절을 보자.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사람들을 얘기한다. 요게벳과 아므람을 포함하고 있다. 바로 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 하나님 이심을 고백한 것이다. 우리가 그를 경외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미리암의 지혜와 용기와 담대함이 있었기 때문이다. 미리암의 원어는 '마라'라는 것인데 괴롭다는 뜻이다. 얼마나 괴로우면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지었겠는가? 이 백성들의 인생이 괴로웠던 것이다. 그래도 하나님께 맡겼을 때 보호하심을 주시는 것이다. 하마드와 헤세드를 주시는 것이다. 놀라운 하나님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의 미리암은 우리들이다. 간혹 행복한 것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광야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리암과 같이 동생을 돌보는 마음과 이웃과 함께하는 마음을 주신 것이다. 이것을 실천하자. 우리가 이것을 지워내면 안 되는 것이다.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 아름다운 보물인 것이다. 가장 가까운 동생들에게 이것을 나눠주자. 나이가 나보다 많아도 위로하고 격려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주고 격려해주고 존중해주는 존재인 것이다. 이것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인 것이다. 하나님을 존경하고 두려워하고 형제자매를 긍휼히 여기고 전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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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08 주일예배 찬양

성가 찬양대/로마연합교회 찬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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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들어 산을 보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주의 영광을 보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주의 영광을 보라

주 너의 하나님 거룩과 진리의 능력

주의 영광 온 땅에 나타나셨네

선포하리라 선하신 주 주의 인자는 영원함이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주의 영광을 보라

주님만 사랑하리 주님만 사랑하리라

주님만 사랑하리 주님을 더욱 알기 원해 나

주님께 오직 주께 경배하네

존귀 존귀 존귀하신 주를 찬양합니다

눈을 들어 주를 보라 주의 영광을 보라

눈을 들어 주를 보라 주의 영광을 보라

주의 영광을 존귀하신 주 영광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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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8/05 월-기도의 십일조

Q.T/수영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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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주제가 다시 시작하라이다. 수영로의 시계는 너무 빠르게 지나간다. 올해가 가기 전에 나를 점검하고 다시 시작하자. 연초에 계획하고 실패하던 일들을 다시 시작해보자. 말은 청산유수로 하지만 주제만 보면 너무 난감하다. 이 주제가 정해졌을 때 아브라함이 떠올랐다. 아들을 모리 야산에서 제물로 바친 사건도 떠올랐다. 믿음에 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자. 이 사건은 교회 다니는 사람이면 다 아는 사건이다. 아브라함은 85세에 나이에 갈대아 우르를 떠나야 했다. 자녀도 없었다. 25년 후 100세에 약속한 자녀를 주셨다.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었다. 웃음이라는 의미이다. 그의 나이가 할아버지의 아버지쯤 되는 나이였기에 이삭의 모든 행동이 좋아 보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부르셨다. 하나님이 이삭도 주셨기 때문에 부르셨을 때 좋아서 달려갔을 것이다. 그때 하나님께서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라고 명하신다. 너무나 충격적인 명령인 것이다. 그의 최고의 보물이었기 때문이다. 번제는 방법적으로 보면 토막을 내서 태워버려야 하는 것이다. 염소나 양이 아니라 이삭이었던 것이다. 아브라함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떠난다. 3일쯤 가서 모리 야산에 도착한다. 가는 동안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아이들이 자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 아브라함은 이삭의 자는 모습도 지옥이었을 것이다. 망설임에 연속이었을 것이다. 지옥 같은 3일이 흐른 것이다. 아들을 결박해 칼로 아들의 가슴을 찌르려고 하는 순간 천사가 막았다. 하나님의 사자가 아브라함을 다급하게 막았던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였다. 믿음의 조상이 되었다? 이렇게 끝나지만은 않는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도 모두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이삭을 찌르게 될 줄도 아시는 것이다. 순종할 것도 아시는 것이다. 그런데 아시면서 왜 시험하셨을까? 때로 우리도 그렇다. 왜 믿음으로 시작하라는 주제를 정하였나? 우리도 때로는 망설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부산에서도 좋은 교회에 다니고 있다. 그렇치만 믿음이 아주 좋은 사람도 흔들릴 수 있다. 내 삶의 어려움과 상황이 나아지지 않는다. 가끔 내 기도를 들어주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도 있다. 이것을 의심이라 한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다니며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다. 그런데 요한복음 13장에 보면 제자들에 발을 씻기시고 제자들이 배반할 것을 얘기하신다.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시지만 다른 사람은 어떤 것인지 모른다. 하나님은 반드시 믿음의 크기를 누군가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셨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보여주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 사건 없이 아브라함이 죽었다면 그다음 태어난 자손들이 물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믿었던 큰 믿음이란 무엇입니까?"라고 물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사건을 통해 내보이셨던 것이다. 수 천년 동안 연인과의 대화에서 나오는 내용이 "나 얼마큼 사랑해?"이다. 하늘만큼 땅만큼? 너무 식상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증거는 우리이다. 신앙 간증을 통해 내보이시는 것이다. "하나님 그런 목적이라면 얘기 좀 해주시죠?"라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제가 2016년 9월을 잊지 못한다. 부산에서 100km 떨어진 곳에서 지진이 났다. 그날 홈플러스에 있었는데 지진이 느껴졌다. 돌아와 집에서 씻고 있는데 두 번째 지진이 났다. 정말 깜짝 놀랐다. 아이들을 데리고 급하게 아파트에서 나와 차에서 2시간 동안 있었다. 잠깐 흔들려도 이 난리가 나는 것이다. 혹시 지구가 계속 움직이는 것을 아는가? 전투기 속도로 돌고 있는 것이다. 지구가 공전도 한다.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 1초에 30km이다. 우리는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다. 우리가 이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하나님의 계획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로마서 34장 33~34절을 보자. 하나님의 계획은 알 수도 감당할 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아픔과 시험도 주시고 때로는 헌신도 요구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을 알 수 없지만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들려주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픔이 필요해서 받으시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어떤 것도 필요로 하시지는 않는다. 오직 믿음을 통하여 약속에 계획을 진행하신다. 그분에 놀라운 계획은 아브라함을 통해 그 큰 믿음이 우리에게도 필요함을 알려주시지만 지금도 우리를 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사랑을 알려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이삭을 찌르도록 놔두지 않으셨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죽으시는 것을 내버려 두셨다.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였다. 손과 발에 못을 내려쳐도 내버려 두시고 창으로 배를 찔러도 내버려 두셨다. 절대 멈추지 않으셨다. 우리를 너무 사랑하셨기에 구원하기 위해서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반드시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는 계획 때문이었다. 우리의 믿음은 환란과 시험에 시들고 넘어지지만 이처럼 그 큰 사랑을 깨닫게 하시는 것이다. 시험과 환란을 이겨낼 힘과 다시 시작할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믿음이면 조금 어려워도 아파도 이겨낼 수 있다. 다시 시작할 결정을 할 수 있으며 다시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하고 도울 수 없는 사람도 도울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사랑하신다. 지금 믿음을 시작하는 그 자리가 여러분의 자녀가 그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부모의 믿음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이다. 그 사랑을 믿음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주님의 사랑을 믿음으로 실천하는 8월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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