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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 가오니
주께 가오니 날 새롭게 하시고
주의 은혜를 부어주소서
내 안에 발견한 나의 연약함 모두
벗어지리라 주의 사랑으로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주 사랑 나를 붙드시고
주 곁에 날 이끄소서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가듯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나 주님과 함께 일어나 걸으리
주의 사랑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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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 국현 곡
주의 은혜 내 영혼에 임할 때 평안 얻네
참된 기쁨을 내게 주시네 내 영혼에
주의 은혜 내 마음에 거할 때 평화 있네
참된 소망을 내게 주시네 나의 맘속에
내 평안함 세상에 또 없네
평화 하나님 주셨네
참 평안함 내 영혼에 임하네
참 평화 내 맘에 임재하시네
내 평안함 세상에 또 없네
내 평화 하나님 주셨네
참 평안함이 내 영혼에 임하네
참 평화 내 맘에 임재하시네
참 평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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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6장 44~52절
반응하는 존재
에스겔을 통해 선포된 메시지들이 비타협적이고 모욕적이고 강경한 이유는 여호와의 백성들이 죄에 대한 임계선을 넘어섰고 거룩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우상을 향한 쾌락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가증한 일이었다. 가증하다는 것은 무례하고 혐오스럽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말이다. 16장은 음란한 아내에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종교적이고 사회적이며 정치적이고 도덕적인 제약들을 다 끄집어내고 있다. 이스라엘은 왕비였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옷과 음식을 먹여주신 왕비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신랑인 하나님을 부끄럽게 하였다. 영적 순결을 지키지 않으며 하나님을 부끄럽고 불쾌하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사랑은 깊었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헛된 욕망과 가증들을 쫓았다. 자녀들을 몰렉에게 바치는 인신 제사까지 서슴지 않았다. 음행 한 일은 말하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음녀라고 칭하셨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국가적으로 끌고 와서 시행했다. 자신의 나라에서 죄악을 동참하게 하였다. 16장 35~36절을 보자. 신부였던 이스라엘이 음녀가 된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강경하고 비타협적인 이유의 근거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에 대한 경건함이 사라진 국가를 상상해 보자. 하나님이 주신 인간성의 박탈과 상실이 현실이 된 것이다. 법이 사라지고 인간의 추악함이 만연한 사회였다. 그야말로 무법천지이다.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부정함과 불쾌함이 뒤덮는 것이다. "너희들이 흠모했던 이방 신랑들을 통하여 너희들을 칠 것이고 항거할 것이다."라고도 하였다. "너희가 하나님을 떠나 사랑했던 이방 신랑들이 너희를 처참하게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너희의 옷을 벗길 것이다."라고도 하였다. 이스라엘의 죄는 소돔과 고모라의 죄에 비유되었다. 차라리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이스라엘의 죄보다 절반도 미치지 않는다고 얘기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하나님을 따르고 섬겨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를 지켜 행할 때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죄에 대해 반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하여 반응하는 존재이다. 순간에 짜릿함은 허상이며 망상이며 거짓된 것이며 불의한 것들이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백성 다움이 생겨나 행복을 유지하고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반응하는 존재로 매일 살아갈 때 순례자의 길로 나아갈 때 이것이 행복한 일이고 좋은 일인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살아가신다. 그 아들을 죽이시기까지 하시며 드러내셨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경험하면 할수록 죄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대하여 반응하는 것이다. 거룩한 제사장 나라로 부름 받은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하셨다. 성도란 그리스도를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감사하는 것이다. 그래서 반응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존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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