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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 영역을 정복하면 풍성한 소득의 열매를 거두게 된다.
시편 128편 1~2절
신앙생활을 하며 이 세상의 사건을 경험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며 대처해야 한다.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분별하고 대처해야 한다. 특별히 지금 겪는 천재지변, 전쟁, 기근 등 미국에서는 인플레이션으로 어려운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 하나님은 열심히 일하는 자들에게 축복하신다. 명령이며 축복이다. 창세기 1장 28절에 보면 하나님의 축복은 열심히 일하므로 임한다. 그래서 노동은 신성한 하나님의 창조법칙이다. 창세기 1장에서도 엿세동 안 열심히 일하셨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열심히 일하신 것이다. 예수님도 목수로 일하시며 열심히 사역하셨다. 사도바울도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일을 하라는 사명을 주셨다. 그 일에 대해서 바로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통해서 잘못된 사상으로 잘못된다. 노동은 저주다. 창세기 3장 17절에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으므로서 일하는 것은 저주라는 생각이다. 철학자 플라톤은 "육체의 노동은 노예와 같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오래전에 선교사님들이 한국에 들어와 열심히 테니스를 쳤는데 양반들은 그것을 보고 노동하는 것처럼 보았다. 노동을 경시하는 나라치고 잘되는 나라가 없다. 미국은 노동을 중시하기 때문에 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다.
생존 지상설이 있다. 할 수 없이 일하는 것이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들이 지배되면 놀고먹는 사람들이 길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은 소명을 가지고 일하라는 것이다. 나한테 맡겨주신 소명감으로 일할 때 보람된 인생이 되는 것이며 능률이 올라가고 소득의 열매를 보는 것이다. 크리스천들은 성격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슨 일을 하는 것보다 왜 하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소명의식을 가져야 한다. 내가 지금 일하는 이 사업장은 하나님이 그 일을 맡겨주셔서 일한다는 소명감으로 일해야 한다. 내가 일하고 있는 현장이 바로 사역지이다. 일하는 것이 복인 것이다. 우리 성도는 부자가 되길 원한다. 그런데 왜 되어야 하는가?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영광과 사업을 위해서이다. 물질적으로 부유해야 한다. 아브라함은 물질적으로 부요했다면 우리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예수그리스도의 자녀들이 부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고린도후서 9장 8절에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모든 것이 넉넉하여 마음껏 감당할 수 있길 바란다. 시편 128편 2절에 우리 성도가 하는 모든 일에 형통하고 풍성한 열매가 맺길 바란다. 물질세계를 마귀가 사로잡고 있다. 그래서 이것을 정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수님이 40일 금식기도를 마친 것은 신앙적으로 절정을 맞은 것이다. 마귀가 나타나 돌이 떡이 돼라 하는 것이다. 말씀으로 살 것이라며 물리치셨다. 마귀는 꼭대기로 데려가서 시험한다. 주님은 "주 여호와를 시험치 말라"라고 하셨다. 마귀는 천하만국을 주겠다며 큰소리쳤다. 모든 세상의 명예를 주겠다고 한다. 이 물질 영역을 사탄이 사로잡고 있기 때문에 물질 영역을 정복해야 진정한 크리스천 부자가 되는 것이다. 마태복을 4장 10절에 "사탄아 물러가라" 끊임없이 시험하는 것이다. 지금도 미혹하고 유혹한다. 오직 예수 오직 말씀으로 경배해야 한다. 모든 하나님의 사역에 주의 일을 마음껏 하면서 세계선교를 감당해야 한다. 당당하게 크리스천 부자가 되시길 바란다.
첫째로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소득의 열매를 이런자에게 주신다. 디모데후서 2장 21절에 금 그릇과 질그릇이 큰 집에 있지만 깨끗한 그릇을 쓴다는 것이다. 성경을 보시면 돈 때문에 인생 망친사람도 많다. 그 심령이 더럽다. 정욕과 죄악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쓰임 받지 못하고 마귀에게 넘어진다.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성령에 강력한 역사가 일었지만 아나니아와 삿비라도 결국 넘어졌다. 마음에 시험이 오는 것이다. 헌금도 쉽지 않은 것이다. 사도행전 5장 2절에 보면 "아나니아야 네가 성령을 속였다"라고 베드로가 호통친다. 그 심령은 벌써 더럽혀진 것이다. 자기 자신과의 싸움인 것이다. 헌금은 하나님과의 관계인 것이다. 야고보서 4장 3절에 보면 정욕이 들어와 방해하는 것이다. 성도님들도 하나님께 큰 것을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만해지지 않게 신앙생활이 되고 있는지 마음을 점검해야 한다. 내 심령의 상태가 어떤지 살펴야 한다. 심령이 깨끗하고 정직하게 준비되어야 한다. 교회 물건을 보면 발이 달렸다는 느낌을 받는다. 여기 있던 게 저리 가있다. 화장실 휴지도 막 쓴다. 집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직장 물건도 마찬가지다. 아끼고 소중하게 써야 한다. 우리 은혜 교인들은 정직하고 깨끗하다는 소리를 듣자. 시편 24편 3~5절도 마찬가지다. 작은 일에서부터 정직하고 깨끗하자.
두 번째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마태복음 6장 33절에 보면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고 원하는 것도 알고 계시며 구하기 전에도 있어야 할 것도 아신다. 마태복음 6장 8절에 하나님도 구할 것을 아시는 것이다. 먼저 나의 뜻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하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6장 39절에 자기가 원하시던 것을 말하셨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아버지께 먼저 순종하였을 때 부활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일을 먼저 구해야 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중요한 것과 급한 것 중에서 급한 것을 먼저 하기 때문에 안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을 먼저 해야 하는 것이다. 집에 불이 났는데 다른 거 챙기다가 아이를 못 챙기는 것이다. 초신자라면 조금 이해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구해야 하는 것이다. 아무리 먹고사는 것이 급해도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먼저 해야 한다. 이것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축복하시기 위해 성전건축을 시키셨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성전을 건축하라는 것이다. 예배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학개 1장 8절에 하나님의 문을 닫는 다면 아무것도 안 되는 것이다. 성전건축은 뒷전이고 예배도 뒷전인 것이다. 주님이 훅 불어버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지 알아야 한다. 우선순위가 무너지면 망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물질을 원하시는가? 능력을 원하시는가? 하나님은 주님과 교제하길 원하시는 것이다. 깊은 사귐을 원하시는 것이다. 영혼이 잘됨을 원하신다.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이것이 완전히 습관이 되어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먼저이다. 예배가 먼저이다. 이런 생각으로 충만하다면 하나님은 다 주시는 것이다.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자. 무엇이 그렇게 급한가? 세 번째는 물질로 하나님을 공경해야 하는 것이다. 첫 열매는 모든 소산물을 대표한다. 소산물의 소유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보람을 느낌며 불안감도 사라지는 것이다. 행복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절기를 허락하셨다. 감사의 시간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가 넘친다면 늘 행복할 것이다. 출애굽기 23장 14절에 모든 절기가 구원과 연관이 되는 것이다. 유월절은 구원에 대한 감격이며, 맥추절은 추수감사절이며, 장막절은 광야생활에 대해 지켜주심에 대한 감사이다. 아이들에게 용돈을 줬는데 아이들이 감사해하면 뿌듯한 것이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이 있는 그곳에 네 마음도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도 일천번제를 쓰는 것도 하나님을 위해서인 것이다. 물질로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 우리 자녀들에게 잘 가르쳐야 한다. 어린아이에게도 1불씩 준다. 이것을 1불씩 가져가는 버릇을 주는 것이다.
록펠러도 훈련받았다. 십일조 훈련이다. 록펠러가 회사에서 십 입조 계산하는 사람을 40명을 썼다. 아무리 많아도 시험에 들지 않았다. 말라기 3장 8절에 하나님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기분 내키는 대로 쓰는 것이다. 이것을 어려서부터 훈련시키면 저들이 물질 때문에 시험 들지 않는 것이다. 저도 두 아들이 다 목사가 되었지만 자신이 섬기는 곳에서 드리는 삶이 되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드리는 삶을 가르쳤다. 자라서도 마음껏 드리는 삶이 된 것이다. 사무엘상 2장 30절에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만큼 하나님은 나의 삶에 넘치도록 부어주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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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 - "My pride is only the cross,"
"열심히 살아가는 것," - "Living diligently,"
"세상의 자랑 위한 것 아닌지," - "Is it not for the world's praise,"
"나의 생각과 마음이," - "Are not my thoughts and heart,"
"나의 자랑에 있진 않은지," - "Not in my pride?"
"내 소망 내 신앙이," - "My hope, my faith,"
"나를 위한 것 아니길 원합니다." - "I pray they are not for myself."
"날마다 내가 죽고 날마다 나를 버리길 원합니다." - "Every day I die and every day I abandon myself."
"나의 자랑은 십자가, 나의 자랑은 오직 십자가." - "My pride is the cross, my pride is only the cross."
"예수의 십자가 밖에는 자랑할 것이 내게 없도다." - "Apart from Jesus' cross, I have nothing to boast about."
"나를 살리신 그 십자가에 세상 욕심 못 박으며," - "I pray that I may not be nailed to the world's desires on the cross that saved me,"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이 새겨지길 기도합니다." - "And that the marks of Jesus may be engraved on my body."
"오직 십자가." - "Only the c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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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있는 생활
본문 / 데살로니가후서 3:6~12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사는 삶은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고 없이 갑자기 재림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옛날 한국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할머니들 중에는 한밤중에 예수님께서 오실까 생각하여 옷을 입은 채 버선도 벗지 않고 잤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오시든 달려 나가 예수님을 맞이하려는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항상 깨어 기도하고, 열심히 전도하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모이기를 힘쓰는 것은 참으로 귀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지나치게 한쪽에만 치우치다 보면. 직장생활을 소홀히 하게 되고, 사업도 소홀히 하게 되고, 먹고사는 일을 등한히 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직장을 잃을 수 있습니다. 사업도 점점 잘 되지 않습니다.
결국 사업을 그만두게 됩니다. 그러면 할 일이 없어져 규모 없이 살다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에는 이런 사람들이 많아 교회의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을 빙자해서 자기의 의무를 져버려서는 안 됩니다.
남편에게는 남편으로서의 의무가 있고, 아내에게는 아내로서의 의무가 있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로서의 의무가 있고, 어머니에게는 어머니로서의 의무가 있습니다.
한 집의 경제적인 책임을 져야 할 아버지가 집에 쌀이 없는데도, 기도원에 가서 기도하느라 돌아오지 않는다면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얼마나 무책임한 행동입니까.
디모데전서 5장 8절에 보면,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믿음을 배반한 사람입니다.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입니다.
하나님 앞에 건강을 달라고 기도하면서, 음식을 제대로 먹지도 않고,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을 먹고, 잠도 제대로 자지 않는다면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건강을 구한다면, 음식도 잘 먹어야 합니다.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은 먹지 말아야 합니다. 잠도 잘 자야 합니다.
대학교 입학을 위해서 기도하는 학생이라면, 공부를 열심히 하면서 기도해야지, 공부는 하지 않으면서 기도만 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입니다.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3장 6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는 ‘게으르게 행하고’라고 기록되어있지만, 개역한글 성경에는 ‘규모 없이 행하고’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규모 없는 행동은 책임감이 없는 사람, 매사에 성실하지 못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이 무단결근을 하거나 20~30분씩 지각하는 것이 규모 없는 행동에 속합니다. 학생이 무단결석을 하고, 20~30분씩 지각하고, 학교에 와서 공부는 하지 않고 친구와 함께 노는 것이 규모 없는 행동에 속합니다.
그런 사람은 가까이하지도 말고 사귀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사람을 닮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사귀지 말아야 할 사람은
첫째, 미련한 사람입니다.
잠언 13장 20절에 보면,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을 가까이하면 지혜를 얻습니다. 말하는 것도 지혜롭고, 행동하는 것도 지혜롭고, 배울 것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면 지혜를 얻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사람을 사귀면, 미련한 짓을 합니다. 잠언 14장 7절에 보면, “너는 미련한 자의 앞을 떠나라 그 입술에 지식 있음을 보지 못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미련한 사람의 가까이에 있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12절에 보면, “차라리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미련한 자를 만나지 말 것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둘째, 악한 사람입니다.
잠언 24장 1절에 보면,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악인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악인과 함께 있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악한 사람의 행동을 나도 모르게 본받기 때문입니다.
셋째, 반역행위를 하는 사람입니다.
잠언 24장 21~22절에 보면, “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 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그 둘의 멸망을 누가 알랴”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반역자와 친구하고 반역자를 가까이하면, 반역자로 몰립니다. 반역자와 어울리는 것을 사람들이 보았기 때문에 함께 반역자로 몰립니다. 그러므로 반역자와 어울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넷째, 타락한 사람, 방탕한 사람입니다.
잠언 23장 20절에 보면, “술을 즐겨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9~11절에 보면, “내가 너희에게 쓴 편지에 음행 하는 음행 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 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속여 빼앗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 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모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속여 빼앗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함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나쁜 짓만 골라하는 사람들과 사귀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섯째, 노를 품고 있는 사람입니다.
잠언 22장 24~25절에 보면,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성격이 과격한 사람, 화를 잘 내는 사람, 울분이 넘치는 사람과 함께하지 마십시오. 그의 행위를 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이단자입니다.
요한이서 10~11절에 보면,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여하는 자임이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당시에는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단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단자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영이 그 사람 속에 스며들어 있기에 영이 들어가는데, 가까이하다 보면 미혹의 영이 역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디도서 3장 10절에 보면,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일곱째, 말 많은 사람입니다.
잠언 20장 19절에 보면,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쓸데없이 이런 얘기, 저런 얘기를 하고 다니는 사람은 비밀을 누설하고, 이간질을 하여 문제를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는 그런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여덟째, 규모 없이 행하는 사람입니다.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3장 6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게으르게 행하고 우리에게서 받은 전통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일도 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고 규모 없이 사는 사람으로부터 떠나라고 했습니다.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3장 7~9절에 보면,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지를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무질서하게 행하지 아니하며 누구에게서든지 음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보여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로 하여금 본받게 하기 위해 일하지 일하는 본을 보였습니다. 일하지 않고 양식을 값없이 먹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하지 않을 권리가 있었지만, 일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일하지 않고 먹으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 자신이 일하지 않아도 수하에 일을 시킬 사람이 많다 할지라도 일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사자요, 교역자입니다. 교회에서 사례비를 받으며 생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주는지 모릅니다.
유대 랍비의 글에 보면 ‘자녀에게 먹고사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 아니하면, 도둑질하는 것을 가르치게 된다.’라고 했습니다.
먹고사는 방법을 어렸을 때부터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일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먹고사는 방법을 어렸을 때부터 철저하게 가르쳤기 때문에 전 세계의 경제권을 가지고 세계를 지배하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에 보면,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공짜는 안 됩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구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있는 구제의 대상은 고아, 과부, 노인, 장애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구제 대상입니다.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도 일하지 않고 얻어먹기 좋아하는 사람은 구제의 대상이 아닙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거지근성이 생깁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 구실을 못합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도 일을 해야 하고, 남을 위해서도 일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8절에 보면,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나이가 60세가 넘은 분이 한 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그 사람은 일어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일을 해야 합니다. 움직여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머리도 많이 사용해야 합니다. 책을 읽고 성경공부도 하고 남에게 가르치기도 하고 머리를 써야 치매에 걸리지 않습니다.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3장 11절에 보면,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게으르게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을 만들기만 하는 자들이 있다 하니”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주 나쁜 사람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한 달란트를 받아 땅에 감추었던 사람에게 “악하고 게으른 종(마 25:26)”이라고 책망하셨습니다. 놀기만 좋아하고 게으름을 피우면,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 데살로니가후서 3장 12절 끝부분에 보면, “조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자기 양식을 먹지 못하면 남의 양식을 먹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이든지 있는 힘을 다해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도 온전해지고, 건강도 좋아지고, 편하게 살 수 있습니다.
미국의 산림 왕 심프슨은 산에 나무가 없으면 나무를 심고, 나무가 있으면 나무를 잘 가꾸어서 끝없이 울창한 산림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이런 숲이 너무 많아서, 이것을 모두 돈으로 계산하면 재산이 아주 많았습니다.
이렇게 부자가 된 심프슨은 고아원에서 자랐습니다. 그런데 고아원에서 함께 자란 친구가 거지처럼 초췌한 모습으로 그를 찾아왔습니다.
심프슨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았냐고 물었습니다. 고아원 친구는 초라한 행색처럼 살아왔습니다.
심프슨은 그에게 “지금 나에게는 우거져 있는 산림이 너무나 많고 재산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단다. 그런데 너는 어떻게 해서 그 모양으로 살고 있니?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어보지 않게니?”라고 물었습니다.
도저히 희망이 없는 친구는 “하루 벌어 간신히 하루를 살면서 술 마시고 싸움질이나 하며 사는데, 어떻게 돈을 벌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산림 왕 심프슨은 그에게 권면하는 말을 했습니다.
첫째, 주일을 꼭 지켜라. 둘째, 돈을 많이 벌든 적게 벌든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꼭 바쳐라. 셋째, 월급이 적고 힘든 일이라도 닥치는 대로 일을 해라. 넷째,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해도 부자가 되지 못하면 자기 재산의 절반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재산의 절반을 준다는 말에 친구는 기뻤습니다. 돌아가는 길에 철공소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았습니다. 찾아가서 취직했습니다. 닥치는 대로 일했습니다.
주일을 잘 지키고, 교회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십일조 생활을 철저히 하고,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3년, 5년, 10년을 변함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이 회사의 사장이 그를 보니 성실하고, 일도 잘하고, 술도 마시지 않고, 교회도 잘 다니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뉴욕에 큰 철공소 지점을 낼 때, 그 사람을 지점장으로 보냈습니다. 이
친구는 열심히 일해서 이윤을 많이 남겼습니다. 얼마 후 사장은 이 친구에게 뉴욕 지사를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람은 부자가 되어 친구에게 도움을 구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신앙생활도 잘해야 하지만, 직장생활도 잘해야 됩니다.
신앙생활을 핑계로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믿지 않는 자보다 더 부지런해야 합니다.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일하지 않고 먹어서도 안 됩니다.
부지런히 일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 덕을 세우는 일을 하여 세상 사람들에게도 본을 보이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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