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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으며
잠언 8장 12~21절
지난주 직원들을 면접했다. "자기소개하고 앉아보세요."라고 얘기한다. 자기소개를 제대로 못하면 별로 질문하고 싶지 않다. 교통비를 줘서 돌려 보낸다. 우리도 자기소개를 잘해야 한다. 만약 자기소개 기회가 오면 멋지게 소개할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지혜이다. 명철로 지혜를 삼으라는 말은 나는 명철과 산다는 말이다. 근신이란 분별하는 것을 말한다. 잠언에서 지혜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1장 7절에 나온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는 악을 미워하는 것이다. 악을 좋아하는 사람, 거만한 사람, 악한 행실을 하는 사람은 지혜 없는 사람인 것이다. 성경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는 다르다. 세상은 공부를 잘하면 다되는 것처럼 얘기한다. 공부 많이 해도 막말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이 지혜롭다고 하면서 교만한 사람이 많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악을 미워하고 교만한 것, 악한 행실, 패악한 말을 미워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복을 받는다. 이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지혜와 다르다.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려면 하나님 말씀 안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 성경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습득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다. 공부를 잘하기 이전에 성경적인 가치관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이 무엇을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나아가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시는지 배워야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하나님 없는 지식은 악으로 간다. 더 고등적인 도둑놈을 만든다. 하나님이 없으면 그렇게 된다. 물론 자녀들이 학교 공부도 잘해야 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하고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아가야만 지혜가 생기며 복을 받게 된다. 신앙적인 가치가 실리지 않은 지식은 마귀의 지식이 되기 십상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면 우월감과 오만에 빠지는 것이다. C.S.Lewis는 "도덕성이 결여된 성공은 안전하게 관리하지 못한 총기와 같다"고 하였다. 미국에서는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 총기를 놔두었는데 자신의 애가 그 총을 만져 스스로 죽거나 남에게 위해를 가하는 기사가 종종 나온다. 지혜의 가치관이 바로 형성되어야 한다. 지혜롭기는 한데 가치관이 결여되면 흉기처럼 되는 것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을 해롭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성경에서 얘기하신 가치관 안에서의 지혜로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14절 말씀을 보자. '나에게는 계략과 참 지식이 있으며 나는 명철이라 내게 능력이 있으므로'라고 되어 있다. 계략과 참 지식과 능력이 있는 것이다. 계략은 올바른 계획이다. 도달하기 위한 계획이다. 참 지식은 전략을 수행하기 위한 자원이다. 아이디어이다. 물론 계획도 있다. 더 중요한 것은 능력이다. 실행력도 있어야 한다. 좋은 계획도 있고 아이디어도 있는데 실행을 하지 않으면 자기 것이 안 되는 것이다. 만일 능력이 부족하면 투자를 받아서라도 성공시켜야 한다. 제 아들이 트위터 회사를 그만두었다. 자기 계획이 있는데 회사를 다니면 그것을 실행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실행하기 위해 샌프란시스코에 가서 설명하고 투자를 받았다. 이처럼 지혜안에는 아이디어가 들어있고 계획과 능력이 들어가 있다. 이것들이 잘 합해져야 실제 드러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생각을 구하고 계획을 세우고 능력이 뒷받침되면 이전에 모르던 것이 현실적으로 나타나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승리하는 모든 자원을 지혜가 공급해준다. 운을 바라는 사람들은 언제 그것이 자기에게 돌아올까? 운에 따라 살면 안 되고 자기가 주도해야 한다. 지혜 있는 사람은 그것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혜의 부산물이 많이 나온다. 사실 우리는 그 부산물을 좋아한다. 부귀와 명예, 재물, 권력이 그렇다. 그래도 지혜를 선택하면 이것이 따라 나온다. 혹시 우리가 부산물을 따라 가면 부산물을 얻을 수 있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혜까지는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솔로문은 지혜를 구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성공을 하게 되는데 실상은 그것이 목적이 아니다. 부산물로서 성공이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이것이 계속된다. 참된 지혜자는 다른 것들을 부산물로 얻어야 하는 것이다. 분별력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것이다. 그 당시 왕들은 판결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것을 얻기 원했다. 지혜는 분별력 있게 듣는 능력이다. 지도자는 모름지기 지혜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도 정치지도자, 교육지도자, 종교지도자, 경제지도자일 수도 있다. 모두가 지혜를 구해야 한다. 그러면 다른 것은 부산물로 따라온다. 지혜를 구해야 한다. 15절을 보자. 지혜와 관련된 것 가운데 공의를 세운다는 것은 우리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것이다. 정의로운 대통령이 되려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바르게 통치를 할 수 있다. 17절을 보자. 아주 중요해 보인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라고 되어있다. 우리는 지혜를 사랑하고 지혜를 찾아야 한다.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자. 지혜를 찾고 두드려야 한다. 이것을 사모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만나주시는 것이다. 기도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그래야 한다. 저도 시간만 나면 지혜를 구하는 기도와 책을 보면서 구하는 지혜를 놓지 않는다. 내가 이전에 알지 못하는 것들을 얻기 위한 영감을 얻는다. 책에 쓰여 있는 것일 수도 있으며 책을 봤기 때문에 떠오르는 생각일 수도 있다. 사모하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보이는 것이다. 사업에도 지혜를 찾을 수 있다. 지혜가 들려주는 것이다. 비상한 생각이 떠오르고 길을 터득하는 것이다. 마치 금, 은, 보화와 같은 것이다. 이번 주에는 지혜를 사모하고 지혜를 찾는 것을 해보자. 기도로 구해보기도 하고 생활하는 중에도 찾아보자. 또한 자기를 자주 소개하자. 장구한 재물은 오래가는 것이다. 돈이 떨어지면 장구한 재물이 아니다.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다. 생물에서 자주 솟아나는 것과 비슷하다. 지혜가 공의를 가져다준다. 지혜가 맺는 것들이 부산물이다. 금괴와 부산물보다 낫고 순은보다 낫다. 나를 사랑하는 자가 재물을 얻어서 그 곳간을 채우게 하려 함이니라. 사실 인격적으로 표현되어있지만 잠언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지혜로운 사람을 보면 그 사람과 가까이 있고 싶어 지는 것이다. 오늘 책이라도 뒤지며 지혜를 찾아보자. 지혜가 우리를 만나주고 사랑해주는 것이다. 지혜가 인격적으로 표현되어 있는 것이다. 인격적인 것은 소중하게 여기며 정성을 들이고 사모해야 한다. 그러면 알아서 오는 것이다. 앞으로 지혜로운 교우와 자녀들이 되셔서 부귀와 명예와 물질과 공의로운 삶이 펼쳐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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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부른다
잠언 8장 1~11절
지혜는 의인화되어있다. 소리 높여서 부른다. 들리시는가? 성경은 지혜가 부른다고 분명히 얘기한다. 들려야 한다. 저는 지혜가 부르는 소리의 장소와 시간이 있다고 본다. 그 여건을 만들었다. 영감이 와야 한다. 책에서도 얻는 것이 많다. 학교에서도 배운다. 그런데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것이다. 개인지도이다. 정말 기가 막힌 위대한 생각들이다. 제가 신학교 다닐 때 학교 뒷산을 다니면 30분 동안 걸으며 새로운 생각들이 떠오른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메모하였다. 그것을 주제별로 분류도 하였다. 설교 재료로 삼았다. 설교가 자라는 것이다. 주제를 많이 잡고 들리는 것들을 기록하였다. 그러고 나서 설교로 전하였다. 제가 미국에서 목회할 때는 박사학위 논문 쓸 시간이 부족했다. 그런데 교회 가는 차 안에서 논문 내용이 들려왔다. 녹음기에 녹음했다. 그러고 나서 옮겨 썼다. 그리고 책장에 앉아 썼던 사람보다 더 빨리 썼다. "이것을 어디서 언제 썼지?" 교수가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해서 박사학위 논문을 써냈다. 그래서 진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이 들려주는 음성을 들어야 한다. 남들이 알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된다. 저희 아들은 이것을 스트리트 스마트라고 하였다. 책으로 스마트한 사람은 북 스마트이다. 일상생활에서 지혜로운 사람은 스트리트 스마트이다. 이 사람들은 발병가와 사업가도 될 수도 있고 새로운 일들을 만들어낸다. 우리가 북 스마트는 못되어도 학교 가서 공부를 많이 안 했어도 누구든지 스트리트 스마트가 될 수 있다. 공부한 이들보다 더 대단하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이 일상에서 지혜를 듣는 사람이다. 나아가 들은 것을 실행하는 사람이 이끄는 사람이 된다. 각 분야에 탁월한 사람들을 보면 나름대로 천재이다. 운동, 음악, 사업을 기가 막히게 하는 사람들이다. 오늘도 한 성도는 새벽에 기도하며 하나님 음성을 듣고 얘기하였다. 그래서 제가 "그 말씀이 기대가 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지혜는 발견하지 못한 것이 많다. 하나님이 직접 들려주시는 지혜를 구하여야 한다. 그래야 진짜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가 아닌 것을 구분할 줄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은 선한 것과 정직한 것과 의로운 것이다. 아닌 것은 악하고 구부러진 것과 패역한 것이다. 사기 치는 사람들도 머리가 좋아야 한다. 이것은 아닌 것에 속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따라야 복이 된다. 그래서 이것이 진리인 것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의 가치는 얼마나 귀한가? 10절을 보자. 은 보다 진주보다 정금보다 귀한 것이다. 지혜를 얻겠는가? 아니면 금 한 덩이를 얻겠는가? 솔로몬도 하나님 앞에서 일천번제를 드린 후 지혜를 달라고 구하였다. 그 지혜란 무엇인가? 지혜를 듣는 마음을 주셨다. 솔로몬이 구했던 지혜는 경청이다. 분별력이다. 이것을 지혜라고 표현한다. 잘 알아듣는 것이다. 분별할 수도 있는 것이다. 지혜를 얻고 나니까 자기가 구하지 않은 것이 따라왔다. 그래서 이것을 귀하다 여기는 것이다. 지혜를 잘 활용하면 덤으로 얼마든지 생기는 것이다. 지혜는 재물과 보석을 얻는 능력인 것이다. 생각해보자. 물을 1톤을 원하는 것 보다 물이 계속 흘러나오는 우물을 갖는 게 좋은 것이다. 지혜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재물을 얻는 것이다. 그래서 훨씬 귀하다는 것이다. 잠언은 계속 일깨워주는 것이다. 사실 잠언에서 나온 것이 탈무드이다. 탈무드에서는 재물 얻을 수 있는 세 가지를 보여준다. 지혜, 정보, 사명감이라 한다. 이것을 확실히 붙들면 얼마든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래서 유대인이 세계를 다스리는 것이다. 앞으로도 사실 맞다. 아이들도 공부만 잘한다고 잘 되는 것은 아니다. 모든 분야에 탁월한 사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노력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자기 노력만으로는 안된다. 하나님이 들려주는 것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설교도 들려주는 것을 받아서 전하면 영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것을 들으며 사업을 해야 한다. 작품을 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그 지혜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달라고 구하자. 듣는 것을 실행할 수 있는 능력도 달라고 구하자. 작은 것부터 실행을 해보자. 보이지 않는 지혜가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낸다. 지금 우리는 지식혁명의 시대에 살고 있다. 정보가 차고 넘친다. 매일 읽을거리도 너무 많다. 지식의 양이 폭발하니 필요 없는 지식도 넘친다. 그런데 어떤 것이 쓸모 있는지 그리고 어떤 것이 쓸모없는지 이것을 어디다 활용해서 적재적소에 써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것이 지혜이다. 지혜가 있어야 지식을 유익하게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을 발견하고 재구성해서 의미를 부여해 통찰이 나와야 한다. 지식이 깔려있는 이 시대에 골라 쓸 수 있는 능력이 지혜이다. 그래서 이것이 더 필요하다. 이러한 지혜로 가정과 사업과 교회와 나라를 이끌어가야 소망이 있으며 발전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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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상 17장 45~49절
말이 달라지면 인상이 달라진다. 얼굴을 보면 그 얼을 알 수가 있다. "좋습니다."라고 말했을 때 표정과 행동이 달라지고 습관이 달라지면 인생이 달라진다. 저는 한 동안 기러기 아빠 생활도 하였는데 아이들이 공부를 해야 하여서 혼자 국내로 들어왔다. 거울을 보고 "좋습니다."라고 외치며 연습을 하였더니 표정이 많이 달라졌다. 오늘 사실 할렐루야교회에 처음 와봤고 김상복 목사님도 미국에 있을 때 존경하던 분이었다. 교회가 너무 좋은 곳에 지어진 것 같다. 우리가 죄 씻음 받아 구원을 얻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은 적색 은총이다. 그것보다 먼저 주신 오리지널 블레싱은 녹색 은총이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만들었을 때의 은총이다. 회복하시기 위해서 주신 은총이 적색 은총이다. 여기서도 녹색 은총이 교회 주변에 있더라. 저는 빈더 벨트 대학교에서 목회 공부를 했는데 자연이 참 좋았다. 여기가 천당은 아니어도 700당은 되겠다고 생각했다. 분당도 한 500당은 되는 것 같다. 오늘 보니 찬양 연주도 훌륭하고 부르는 모습도 너무 좋더라. 나를 만져주시는 느낌이었다. 여기에 영적인 파동이 흐르고 있다. 영파라고 부른다. 찬양과 말씀을 전하거나 기도할 때 흐르는 것이다. 우리의 심령과 육체를 만져주신다. 건강도 좋아진다. 사울이 정신병에 시달릴 때 다윗이 하프를 연주하니 영적인 파동이 나와서 사울이 정신을 차렸다. 성경이 원래 음악치료의 근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이 성경에 나와있는 것들이다. 여기서 찬양과 기도를 열심히 하고 말씀을 들으면 영혼이 강건해진다. 제가 성도들을 배웅하는데 집사님이 "기적이 일어났어요."라고 외쳤다. 발이 너무 아파서 잠도 못 자고 뜬눈으로 지새웠는데 병원에 가야 하나 교외에 가야 하나 선택에 기로가 있을 때 교회에 왔다. 말씀 듣다가 자다 깨다 했는데 발에 부기가 빠져 있었다. 신발도 신어보니 맞는 것이었다. 어젯밤에는 부어서 아팠는데 감쪽같이 나은 것이었다. 그래서 제가 "집사님. 제 말씀이 마사지 효과가 되어서 나으신 겁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오늘도 말씀 터치를 해드릴 테니 조금 주무셔도 괜찮다. 앞에 오면 소낙비 은혜를 받을 것이다. 하여간 정말 잘 오셨다. 저는 기적을 많이 경험하였는데 군목 시절에 산에 가서 장병들과 기도하고 내려와 구역예배에 갔다. 그 집에 한약 냄새가 났다. 한약을 달여먹는 다고 얘기를 하였다.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제 마음속에 "그 집사를 위해 기도하거라."라고 얘기하셨다. 그래서 설교하기 전에 기도로 시작하였다. 가볍게 손을 얹었다. "주여, 우리 집사님이 하혈을 하고 그러는데 주님의 능력으로 고쳐주셔서 하혈이 멈추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였다. 그런데 예배드리고 왔는데 전화가 와 있었다. "목사님. 할렐루야! 이틀 전에 기도해 주셔서 머리에서부터 뜨거운 불이 제게 들어왔었어요. 그때부터 하혈이 멈추고 하루 이틀이 지나도 멈추었더라고요. 감사합니다."라고 얘기하였다. 너무 놀랐다. 저도 무릎이 안 좋았는데 관절염이 있었다. "하나님 저도 한번 고쳐주세요."라고 얘기하였다. 또 군인 아파트 2층에 부부가 있었는데 아이를 없었다. 그래서 올라가서 제가 기도했더니 후에 아이를 낳기도 하였다. 저는 주로 산부인과 쪽에 역사를 주셨다. 시카고 노스필드 장로교회에 부흥회를 인도하였는데 그때 피아노와 키보드 치는 두 부부가 태기가 없어서 저한테 안수를 받았는데 1년 후에 모두 태기가 생겼다. 할렐루야! 정말 놀라웠다. 얼마 전에 소망교회 다니시는 강귀희 권사님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분 남편이 국회에 있는데 폐암에 걸린 얘기를 들었다. 김장완 목사님이 기도를 부탁하셨다. 그래서 기도해드렸다. 삼성의료원에서 검사를 했는데 암이 멈추었다. 3개월 시한 부를 받았던 사람들이 암이 나아버렸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역사이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역사가 일어난다. 얼마 전에 어떤 자매가 부었는데 기도했더니 신기하게 가라앉았다.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것이다. 기도와 찬양과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병이 나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치유하시는 것이다. 21세기로 넘어오면 크게 세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고 얘기한다. 큰 변화는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으로의 변화이다. 20세기까지는 보이는 것으로 부를 축적하였다. 현재 세계 부자 1위는 빌 게이츠이다. 제 아들이 마이크로소프트에 다닌다. 빌 게이츠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이뤄낸 것이다. 지식정보를 통해 창출하였다. 보이지 않는 것이 가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이다. 성경은 이미 이것을 하고 있었다. 원래 벤처의 창업자는 아브라함이다. 75세에 하나님이 부르셨다. 그때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말씀을 따라갔다. 제2의 인생이 정말 엄청났다. 인생도 다모작 시대가 되었다. 두 평생 세 평생을 산다. 아브라함은 둘째 평생이 났다. 나이가 들어도 보이지 않은 것을 따라간 것이 복되었다. 모세도 첫째 평생은 왕궁에서 살았고 둘째는 광야에서 살았고 셋째 평생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 끌어내서 인도하는 삶을 살았다. 모세는 셋째 평생이 제일이다. 그러니 연세가 있는 분들도 나이가 있다고 너무 낙심하지 말자. 자동차를 새로 사도 3년 후에 타이어가 닳는다. 바꿔야 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자식을 교육하며 살았다면 지금부터는 하나님을 위해 살자. 그렇다면 앞으로의 인생이 아름답고 복된 것이다. 인생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내 인생의 최고의 날은 아직 오지 않은 것이다. 믿음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힘을 끌어다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다. 솔로몬과 같은 기도로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이 원래 왕 서열이 아니었다. 형들이 싸우고 죽이고 할 때 어부지리로 왕이 되었다.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사자성어도 모른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도 드렸다. 왕이 될 때 겁이 났을 것이다. 하나님을 감동시켰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은 어마어마한 복을 받는다. "넌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물으셨다. 이때 말을 참 잘해야 한다. 무엇을 구 할 건지 미리 생각해두어야 한다. 솔로몬은 지혜를 구했다. 하나님이 기도를 마음에 들어하셨다. 하나님이 흥분하셨다.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지혜를 너에게 주마."라고 얘기하셨다. 이것은 너무 하나님이 좋아하신 것이다. 지혜만 주지도 않으셨다. 다른 것을 보너스로 얹어주셨다. 정말 경제적인 기도였다. 1개를 구했는데 10개가 따라온 것이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구했더니 보이는 것이 다 따라온 것이다. 성경은 증명한다. 어머니 둘이 얘 하나를 가지고 들어왔다. 요즘은 이것을 어떻게 할까? 솔로몬은 칼을 가져오더니 반절로 갈라서 나눠주려 하였다. 그랬더니 A 여자는 B 여자에게 양보하고 싶어 했다. B 여자는 자르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솔로몬은 A 여자가 어머니라고 결정했다. 솔직히 지금까지 누가 어머니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 그 판결을 잘했는지는 다 안다. 어머니가 애만 낳으면 어머니가 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이 아이를 위해 누가 어머니가 되면 좋겠는가? B 여자에게 애를 주면 안 되는 것이다. 과거는 모르지만 앞으로 이 아이를 위해 결정한 것이다. 지식보다 나은 결정인 것이다. 지혜이다. 솔로몬이 증명한 것이다. 21세기형 기도는 무엇일까? 엘리사를 아시는가? 엘리야의 제자이다. 엘리야가 승천하기 전에 따라다녔다. 막판에 엘시사의 이름이 부각되었다. 다른 제자들은 부각되지 못하였다. 엘리사는 계속 따라다녔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우리도 여기서 배워야 한다. 젊을 때도 잘 섬겨야 하는 것이다. 끝까지 잘 모셔야 하는 것이다. 결국 요단강에서 승천할 때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얘기해보라."라고 물었다. 엘리사는 갑절의 영광을 구했다. 정보보다 한 단계 높은 것이 지식이며 지식보다 높은 것이 지혜이다. 그래서 보이지 않는 것이 영감인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기도의 힘이다. 엘리야는 그것은 내가 못준다고 하고는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고 하였다. 엘리야는 승천하였다. 엘리사는 엘리야를 향하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마병과 군대여~."라고 불렀다. 그것이 영감이다. 기도의 힘이다. 여호수아가 아멜렉과 대결할 때도 모세가 얘기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마병과 군대여~."라고 하는 것이다. 엘리야의 영감이 엘리사에게 임한 것이다. 우리의 믿음은 위대한 힘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의 터널이다. 그래서 21세기는 영성의 시대이다. 그다음 외면에서 내면으로의 변화이다. 안에서 밖으로 경영해야 한다. 파문형 경영이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 사마리아 땅 끝까지 나가야 한다. 속 사람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충분해야 한다. 세 번째는 강한 것에서 부드러운 것으로 넘어감이다. 사울에서 다윗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21세기는 여생의 시대이다. 남자가 존재하려면 여자한테 비벼야 하는 것이다. 21세기에 사는 여성이 행복자이다. 여성이 일어서는 시대인 것이다. 여성성을 본받아야 살아남는다. 꽃미남들이다. 21세기 리더십은 부드러워야 한다. 권위와 수직적인 것에서 탈피해야 한다. 엄마형 리더가 뜨는 것이다. 시대적인 트렌드를 읽어야 한다. 앞으로 5~10년 후에는 여성들이 이끌 것이다. 여성들은 남을 배려하며 협력할 줄 안다. 돌고래형이다. 대체로 여성들이 부드럽다. 그래서 골리앗에서 다윗으로 넘어가는 것이다. 성경에 전쟁 얘기가 많다. 저는 50년도에 태어나서 전쟁은 보지 못했다. 성경에서도 인생이 영적 싸움이라고 얘기한다. 상대인 적은 내 육신과 풍조와 마귀인 것이다. 성경은 이것으로부터 승리하는 비법이 있다고 얘기한다. 혹시 골리앗의 편이 있는가? 성경은 자기편을 정해야 재미있다. 월드컵도 우리나라가 들어가면 재미있다. 다른 나라는 재미가 없다. 관심도 없다. 성경을 재미있게 읽으려면 자신을 넣어야 재미있는 것이다. 요나를 알 것이다. 신학교에 들어가 "요나 같이 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다. 미국에서도 성경 이름으로 짓고 싶었다. 요나와 나단을 합쳐서 지었다. 요나단이라고 지었다. 게가 조나단이라고 불렸다. 한국에서는 교수와 목사를 같이 했다. 그래서 성경을 거의 다 읽게 되었다. 우리에게 골리앗은 무엇인가? 무엇이 큰 문제인가? 무엇이 큰 꿈인가? 그것이 골리앗인 것이다. 가정, 사업, 자녀도 좋다. 큰 문제라면 골리앗이라 붙이자. 젊은 사람도 꿈과 비전이 크다. 골리앗이라고 붙이자. 이것을 어떻게 이루는지 알려드리겠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권투경기가 열렸다. 링 아나운서가 골리앗을 소개한다. "100전 100승 100KO승."이라고 소개한다. 다윗은 "0전 0승 0승."이라고 소개한다. 다윗이 골리앗 앞에 선 것은 체급도 말이 안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믿어지는가? 그런데 성경은 이겼다고 하였다. 첫째는 다윗은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였다. 우리는 큰 일에 질려한다. 지례 겁을 먹고 아무것도 못한다. 지금 골리앗은 소리를 지르며 서 있다. 사울도 벌벌 떤다. 사울과 장수들도 두려워하는 것이다. 믿음의 반대가 무엇인가? 불신앙이 아니다. 믿음에도 불신앙이 섞였다. 믿음이 밤하늘의 별과 같은 것이다. 믿음의 반대는 두려움이다. 예수 믿으며 두려워하는가? 이것은 문제이다.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라."라고 하였다. 창세기에 하나님의 역사는 작은 것을 통하여 큰 것을 이루시는 것이다. 사람은 큰 것을 통하여 큰 것을 이루고 싶어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방법이다. 이집트 군대가 보통이 아닌데 얼마나 많은 군사력이 필요한가? 이것은 사람의 방법이며 생각인 것이다. 모세가 아무것도 없었는데 하나님이 찾아오셨다. "지금이 이룰 시간이다."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드러나 길 원하신다. 우리가 할 수 있으면 우리가 드러난다. 기드온이 전쟁할 때도 "병사가 너무 많다 보내라."라고 하셨다. 달랑 300명으로 싸웠다. 더 모아야 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다. 우리 능력만큼 하나님을 믿으면 안 된다. 인류를 구원하는데 얼마나 필요할까?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마구간에 태어나게 하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셨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시라. 하나님의 방법은 작은 것을 통해 남기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보길 원한다면 문제가 크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책임을 지시는 것이다. 다윗도 목동 일과 심부름에 최선을 다했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한 것이다. 하나님이 역사를 하시는 것이다. 다윗은 빛을 볼 수 없는 서열이지만 위기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목자로 삶으신 것이다. 위기가 위대한 기회로 변하였다. 다른 사람이 벌벌 떤다고 나까지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연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이다. 우리도 여기 우연히 있지 않은 것이다. 하나님이 다 필요하기에 만드신 것이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면 큰 일을 해내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작은 것이다. 두 번째는 새로운 안목으로 보아야 한다. 새 역사는 새로운 안목으로 보아야지 해결되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만이 극복하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것은 새로운 안목이며 새로운 생각인 것이다. 구약에서는 예수 믿고 눈을 뜨는 기적이 많은 것이다. "에바다~"라고 들어보았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점진 적으로 어떤 사람은 순간적으로 안목이 바뀐다. 신앙은 새로운 안목으로 보는 것이다.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들도 체감적으로는 느끼기에는 문제가 비슷하다. 그 사실은 별로 다르지 않다. 사실보다도 해석이다. 그 해석이 인생을 결정한다. 그렇기에 새로운 해석을 해야 한다. 해석은 안목에서 나오며 어떤 해석학과 세계관이 어떠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가나안에 정찰 나간 사람들이 40일 동안 세 가지를 보았다. 첫째로 비옥하였고, 둘째로 그 과실이 어마어마하였다. 셋째로 그 기골이 너무 장대하였다. 이것은 사실이다. 열 사람은 다 죽었다고 포기하였다. 자기들이 메뚜기 같이 보였다. 열 사람이 그렇게 달려들었다. 모세를 원망하며 돌로 치려고 하였다. 두 사람이 달랐다. "저들은 우리에 밥 덩이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먹을 것이 있는 게 더 좋잖아요. 갑시다."라고 얘기하였다. 그 두 사람은 그 땅의 주인이 되었다. 사실이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운명을 가르는 것이다. 다윗은 골리앗을 보고 타깃이 너무 커서 잘 맞출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밥도 먹을 게 많은 것이 좋은 것이다. 죽을 생각만 하면 죽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런 인생을 사는 것이다. 할 수 있다고 말해야 한다. 다윗은 그것을 놓치면 바보 멍청이라고 하였다. 신앙이 안 생기면 성경을 읽어야 한다. 어느 사이에 성경이 나를 읽어줄 것이다. 성경이 나를 해석해준다. 성경적인 안목이 생긴다. 성경의 눈으로 세상과 삶을 보아야 한다. 그다음 세 번째는 자기만의 전문분야를 개발해야 한다. 다윗은 사울에게 갔다. 사울이 보니 장수가 없어도 이건 아니었다. 그 당시에는 자기 무기를 들고 군대에 갔다. 목동 차림이었으니 얼마나 한심 했겠는가? 사울의 갑옷을 입혔는데도 걸을 수가 없었다. 사울의 무기가 최고였을 것이다. 왕권을 넘겨준 것이다. 그런데도 안 맞는다. 최고의 것이라도 나의 것이 아닌 것이다. 남의 것을 부러워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방식대로 해야 하는 것이다. 중세시대에 왜 무사가 망했는가? 갑옷 체계로 나가다 보니 너무 무거웠기에 다 죽은 것이다. 하나님이 방패인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에게 모두 걸고 자기 방식대로 하였다. 칼 방패 모두 하드웨어이다. 골리앗의 싸움으로 들어가면 다윗이 죽을 것이다. 골리앗의 방식으로 싸우면 죽는 것이다. 기존의 싸움 방식이 아닌 새로운 싸움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골리앗을 불러들여서 자기 방식으로 싸워야 하는 것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공부도 잘할 수 있는 것을 시켜야 한다. 공만 잘 치거나 집어넣으면 되는 것이다. 돌 잘 던져서 왕 된 것이 누구인가? 공부만 잘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재미있게 하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이 기준이 되면 안 된다. 애를 달달 볶으면 안 되는 것이다. 사울이 물었다. "무엇을 할 줄 아느냐?" 물었다. 다윗은 목동을 한다고 얘기하였다. 곰 같이 사나운 무리가 오면 맞서 싸웠는데 하나님이 힘을 주셨다고 얘기했다. 오늘도 하나님이 힘을 주시면 저 골리앗을 물리칠 수 있다고 하였다. 골리앗을 생각하다 보면 자꾸 커지는 것이다. 문제를 굴리면 더 커진다. 숨을 못 쉴 정도이다. 하나님을 묵상하여야 한다. 하나님이 과거에 일으켰던 역사를 기억해야 한다. 기억을 해내야 한다. 옛날에 곰이 왔었어도 물리친 기억을 기억하는 것이다. 우리도 기억해야 한다. 전에 얘기한 병 고침 얘기도 마찬가지다. 그런 기억이 있다. 오늘 문제를 키우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문제 이전에 도와줬던 역사는 잊어버린다. 신앙의 건망증이다. 아프리카에도 뱀잡이 수리가 있다. 뱀이나 두더지가 튀어나오면 낚아채서 쪼아 먹는다. 약점이 있는데 표범이 달려들면 당황해서 날개를 까먹고 달리는 것이다. 그러다 잡혀 먹힌다. 날개를 잊어서 먹히는 것이다. 우리도 평소에 믿음이 있으면서 까먹는다. 그럴 때 믿음이 나와야 하는데 안 나온다. 문제에 잡혀 먹히는 것이다. 사울도 과거에 하나님이 도와주신 기억이 많은 것이다. 그런데 믿음이 안 나온다. 다윗은 기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은 위대하고 해결 못하는 문제가 없다. 우리에게도 나와야 한다. 마지막으로 다윗은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왜 싸우는지를 분명히 하였다. 사람의 힘이 아니다. 하나님의 종이 되었음을 선포하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 꿈을 이루어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자녀인 것을 하나님의 능력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시는 것이다. 목적이 너무도 분명하다. 다윗은 돌팔매질을 하였다. 목동을 하며 연습하였다. 골리앗을 그려놓고 던지는 것이다. 소프트웨어이다. 부드러움이다. 물매는 가지고 있느니 돌을 주워서 날리는 것이다. 5개를 주웠다. 한국에 들어와서 서울 신학대학교수를 하였다. 부흥회를 하면 학생 3000명쯤 앉아있다. 부흥회를 실시하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이 강연을 한 번씩 하였다. 2000년도에 창립 90주년을 맞았다. 교내 교수 중에서 부흥회를 할 사람을 뽑았다. 제가 뽑혔다. 처음에 그것을 듣고는 "고맙구나."라고 생각했지만 떨렸다. 후배와 선배들이 생각났다. 도마 위에 오를 생각을 하니 그것이 문제로 보였다. 그날따라 아프지도 않았다. 연구실에 앉았다. 집회 날 오전 10시에 1층 계단을 오를 때 3층까지 가기가 너무 어려웠다. 발이 떨려왔다. 흘러나오는 찬양 소리에 기가 막혔다. 겁이 나기도 하였다. 계단에 주저앉았다. 저는 부흥회를 해 본 적이 없었다. 그 당시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주여 믿습니다."라고 외쳤다. 그랬더니 제 마음속에 "나도 너를 믿는다."라고 해주셨다. 그때부터는 힘이 생겼다. 일어나서 계단을 두세 개씩 뛰어갔다. 그 친구들이 울면서 찬양하였다. 가슴이 불타올랐다. 우리의 믿음보다 하나님의 믿음이 더 좋다. 하나님이 더 우리를 믿으시는 것이다. 우리가 내려놓고 하나님의 믿음을 믿어야 한다. 다윗이 왜 5개를 집었는지 그제야 알았다. 1개만 있으면 되는데 5개를 집은 이유이다. 다윗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다. 듣지 못하였다면 돌을 10개, 30개도 주웠을 것이다. 그때 다윗이 "너는 방패와 칼과 갑옷을 차고 나오지만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가 나왔노라."라고 외쳤다. 하나님의 싸움으로 바꾸는 것이 기도이다. 다윗과 골리앗이 싸우면 사실은 지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싸움으로 바뀌면 달라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문제를 하나님의 싸움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소원을 하나님의 싸움으로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던졌다. 골리앗은 피하지 않았다. 원래는 빗나갈 뻔하던 것이 꺾더니 골리앗에게 달려들었다. 하나님이 돌린 것이다. 이것이 락 앤 롤이다. 그다음 골리앗의 칼로 목을 내리 쳤다. 블레셋 군대가 뒷걸음을 치려고 하였지만 얼어버렸다. 이스라엘 군대가 승리하였다. 골리앗의 시대가 가고 사울의 시대가 간 것이다. 우리도 큰 일을 행할 것이고 승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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