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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그가 말했다. “항복하러 왔습니다.”
마더 커크(Mother Kirk)가 말했다. “잘했어요. 참 멀리도 돌아서 여기까지 왔군요. 내게 맡겼더라면 짧은 시간 안에 데려왔을 텐데, 그래도 잘 왔어요.”
존이 말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그녀가 말했다. “걸치고 있는 누더기를 벗어야 해요. 당신 친구는 벌써 그렇게 했어요. 그리고 이 강물 속으로 뛰어들어야 해요.”
그가 말했다. “맙소사, 저는 다이빙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배울 게 없어요. 다이빙 기술이란 새로운 것을 하는 게 아니라 하던 일을 그만두는 거니까요. 그냥 몸을 던지기만 하면 돼요.” <순례자의 귀향> 9권 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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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장 25 ~ 28
요즘 성도들은 종말에 관한 설교를 듣지 않으려 한다. 들어도 감각이 없다.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도 없다. 대단히 위험한 침묵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 세상의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은 항상 붙어 다닌다. 학자들은 66권 성경에서 30분의 1이 예수님의 종말과 관련이 있다고 보고 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 초림보다 재림에 대해서는 6배나 더 많다고 한다. 세상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것을 제자들에게 들려주었다. 교회는 이것에 대해 침묵하면 안 된다. 어려운 시대를 이길 수 없다. 대단히 위험한 행동이다. 어떻게 온 세상 사람들이 바다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날따라 특별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세상 종말은 바다에 의해 시작된다고 하였다. 보통 심각한 사건이 아닌 것이다. 그래서 조금 이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려 한다. 이 설교는 오랫동안 고심하였다. 왜냐하면 이것은 아직도 베일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오해에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해석이냐에 물음에는 확신이 없지만, 성령께서는 그 누구도 완전한 설교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부분적으로 깨달은 것만 전하면 된다는 확신을 주셨다. 말세를 성도들이 대비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확신을 주셨다. 25절에 내용은 재림 직전에 나타난 세상 종말과 징조를 보여준다. 하늘과 바다에서 나타난다. 순서적이지 않다. 우리는 먼저 나타나는 징조를 중요하게 여기면 된다. 언제가 이런 징조는 한순간에 나타날 것이다. "지구 상에 모든 백성들이 바다에 성난 소리로 인해서 곤고하리라." 심리적으로 바다 때문에 심리적으로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성난 파도소리도 옛날에 들었던 소리가 아닌 것이다. 공포인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과학자들이 먼저 일깨워주고 있다. 온통 바다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바다가 살아야 지구가 안전하다고 귀가 아프게 듣고 있다. 앞으로 70~80년 안에 전 세계 해안에 80%가 바다 밑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벌써 방글라데시는 국가 자체가 없어질 것이라고 하고 있다.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기상이변으로 선진국 후진국 가릴 것 없이 슈퍼태풍, 집중호우, 해일, 가뭄, 생태계가 파괴되고 있다. 그 규모가 너무 커서 핵무기와 같은 대량 살상 무기가 될 것이라고 하고 있다. 대량 살상 무기다. 이런 것들이 바다를 통해 일어날 것이다. 그린란드가 급속히 녹고 있다. 과학자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빠르다. 손쓸 수가 없는 것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것이다. 지구종말 5분 전이라고 공공연히 하고 있다.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주님의 예언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너무 어마어마한 내용이고 신비한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는 것인가? 마침 과학자들의 세밀한 연구와 증거가 이것을 입증하는 것이다.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전혀 손 놓고 있을 수 없다. 교회는 오히려 잠잠하고 있으면 안 된다.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이산화탄소를 줄여야 한다. 지구를 살려야 한다. 이런 노력도 병행해야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분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한다. 이산화탄소를 줄이라는 말씀은 하시지 않고 있다. 궁극적인 사건은 예수님의 재림이다. 그러므로 모든 일을 보면서 잘못하면 우리가 이 시대를 분별하지 못해 영적으로 패하기 때문에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이 말씀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고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 하는 말씀인 것이다. 열 처녀 비유를 보면 50%가 잠자고 있지 않은가? 깨어 있다는 것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이다. 조심하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세상에 마음을 주지 않는 것이다. 방탕과 술 취함에 빠지기 쉽다. 세상사는 재미에 푹 빠지기 쉽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 성공하고 돈 벌면 그렇다. 칭찬받고 모든 것이 내 마음대로 하게 되었을 때 그렇다. 생각해보자. 나도 모르게 이것이 일어난다. 세상에 염려로 고달픈 이들은 헤어 나오지 못할 수 있다. 이것도 문제이다. 주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는데 염려의 종이 돼버리는 것이다. 잠자는 것이다. 누가복은 17장에는 노아 시대에 사람들이 홍수로 망했지 않은가? 정상적으로 날마다 열심히 해야 하는 일상생활에도 마음이 빼앗길 수 있음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재림 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장가가고 시집가고. 여기에 나도 모르게 빠지면 안 된다. 그래서 이런 것도 잠자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롯의 가족들은 피하라고 했을 때 "과연 그런 것이 일어날까?"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지진 화재 대피요령 같은 것이 있는데 우리는 읽어보지 않는다. 지진은 죽고 사는 문제이다. 누가 내 생명을 보장해 주는가? 그러나 귀에 안 들어온다. 다른데 푹 빠져있어서 그렇다. 조는 사람이다. 몇십 년 후에 바다에 침수된다는 보고를 듣고도 바다 앞에 무역센터를 짓고 있으니 정신없어서 그런 것이다. 너무나 무서운 일을 당할 수 있다. 깨어 있어야 한다. 위에 것을 찾아야 하며 땅에 것을 생각지 말아야 한다. 그냥 내버려 두면 공중에 마음이 떠 버린다. 세상 대신에 마음을 줄 곳이 필요하다. 위에 것이다. 하나님 나라. 주님에 재림. 영원한 천국에 축복이다. 거기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위에 있는 것에 갖다 놓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중생받고 거룩한 삶을 사는 목사도 힘들다. 마음은 물과 같다. 낮은 대로 흐른다. 세상적으로 즐기고 정욕을 찾는다. 온갖 욕심과 씨름한다. 흘러가버린다. 아래로 흘러가기 쉬운 마음을 위로 끌어야 한다. 훈련이 필요하다. 경건에 연습이 필요하다. 훈련 없이 되는 것은 없다. 공부, 체력 같이 훈련이 필요하다. 마음을 위에 것을 두자. 그래야 아래로 흐르는 것을 위로 올릴 수 있다. 아무리 아침에 기도 5 분해도 정신없다. 고독, 침묵, 묵상이 필요하다. 고독은 하나님과 독대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단 둘이 만나서 하나님 앞에서 마음과 마음을 통하는 것이다. 침묵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하는 기다림이다. 내 깊은 곳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음성을 들으려면 노력해야 한다. 침묵해야 한다. 너무 중요하다. 한국 성도들은 이것에 너무 서툴다.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하나님 앞에서 혼자 떠드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묵상 훈련이 필요하다. 말씀을 영혼에 새기는 것이다. 이것이 묵상이다. 꼭 필요한 훈련이다. 쉽게 하려면 고독, 침묵, 묵상도 한꺼번에 다 할 수 있는데 성경을 암송하는 것이다. 24시간 하나님 앞에서 함께 할 수 있다. 둘이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음성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은혜를 마음에 묵상하게 된다. 쓸데없는 잡동사니로 우리 생각에 넣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들로 채우자. 성경 암송하자. 싱싱하게 된다. 세상에 쓸려가지 않는다. 힘이 생긴다. 즐기는 것이다.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것이다. 그러면 내 생각이 하나님께 가 있게 된다. 우리의 마음에 중심이 하나님과 가까울수록 모자라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나 영적인 힘은 증대된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만 세상일이 재미있어 돌아갈지 모르지만 영적인 힘은 쇠퇴되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좁혀야 한다. 마음을 드려야 한다. 노력해보자. 깨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외우자. 단 둘이 산책하는 즐거움을 얻자. 침묵을 즐겨보자. 하나님이 주시는 영혼의 양식을 묵상을 즐겨보자. 그러면 일상생활에 마음을 빼앗겨 불행한 자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노아 시대를 한 번 보자. 하나님이 시키는 대로 언덕 위에 방주를 만드는 대만 120년을 소모하였다. 미디어가 있었다면 바보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노아가 이겼다. 우리도 잘못하면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은혜 샘물교회에서 아프간으로 달려간 성도를 생각해보자. 휴가도 반납하고 달려간 사람도 있고, 결혼하여 신혼생활에 단꿈을 버리고 달려간 성도도 있었다. 오해하지 말자. 모두가 거룩한 제사인 것이다. 가족들과 오손도손 시간을 만들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깨어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런 일상생활에만 매달려 있으면 어려운 마음이 들 수 있다. 그래서 특별한 소명에 목숨을 거는 것이다. 달려가는 것이다. 아프간 형제들이 그렇게 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바보가 된 것이다. 모두가 잠자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바보가 될 것을 자처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바보 될 자격이 있는 것이다. 주님은 반드시 오실 것이다. 재림은 속히 오리라는 것은 사실이다. 예상치 않은 순간에 올 것이다. 구름을 타고 능력과 영광으로 보게 될 것이다. 거룩한 백성을 하늘에서 영접할 것이다. 그러므로 말세에 징조인 바다를 주목하자. 혹독한 재난이 있지만 그 모든 것이 재림을 예고하는 징조가 될 것이다. 세상에 마음을 주고 푹 빠져 있다가 주님이 재림할 때 패자가 되고 싶은가? 깨어 있다가 주님이 오셔서 만나는 승자가 될 것인가? 인생의 승리는 마지막에 누가 웃느냐에 달렸다. 영원히 웃는 축복을 맛본다면 이 사람이 승자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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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UN)이 이민자들의 거주지로는 부적합하다는 이유를 들어 리비아에 있는 모든 난민 구금시설들에 대한 폐쇄를 촉구하고 나섰다고 영국의 BBC 방송이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2일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에 있는 난민 구금시설이 두 차례에 걸친 공습을 받아, 이곳에 거주하던 50명 이상의 난민이 숨지는 사건이 있고서 2주가 지난 뒤 나온 요구라고 방송은 덧붙였다.
유엔 난민기구는 구금시설의 상태를 끔찍(awful)하다고 표현했다.
리비아 전역에 있는 정부 운영 구금시설에서 수천 명의 난민이 끔찍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방송은 전했다.
최근 내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구금시설 중 1곳에 대한 공습은 시설들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희생자들 대부분은 기아와 전쟁을 피해 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가려고 시도한 아프리카인들이었다.
유엔 난민기구는 즉시 이러한 구금시설들이 폐쇄돼야 한다고 밝혔으며 억류된 수용자들을 주변 지역사회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곳에서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준비도 이미 돼 있다고 강조했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행 3: 6-8)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 땅에서 전쟁과 테러, 기근과 가난 등으로 살 소망을 잃었던 아프리카인들이 리비아를 통하여 새로운 삶이 있는 유럽으로 밀항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처럼 여겨졌던 리비아에서 노예로 팔리거나 공습으로 죽는 등 모든 소망을 잃고 주저앉아 있는 난민들의 소식을 듣습니다.
이들의 발목에 힘을 주셔서 유일한 소망되신 예수님을 보게 하시고 기뻐 뛰며 일어나 살아계신 하나님만 찬송하게 하옵소서!
소망을 찾아 아프리카를 떠나려 했던 난민들이 자신들을 새롭게 하신 소망의 예수님을 만 천하에 증거 하는 자들로 서게 하옵소서!
또한 무정부 상태로 어떠한 보호도 통치도 없이 혼란한 리비아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게 하옵소서!
가장 혼란하고 불법이 성행하는 것 같았던 리비아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 아프리카 선교의 전초 기지로 거듭나는 부흥을 허락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Today's Prayer) > 열방을 향한 기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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